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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안드리 셰브첸코의 플레이 스타일을 소개하는 문서2. 장점
2.1. 돌파력
젊은 시절에는 탁월한 운동 능력을 활용한 폭발적인 돌파가 돋보였다. 다만 이 점이 잘못 전해져 투박하다고 표현되기도 하나, 투박하다고 하면 떠오를 '우당탕탕' 스타일은 절대 아니었다. 다만 보폭이 크고 볼터치가 호나우두나 호나우지뉴처럼 섬세하진 않아 투박해 보이는 것이고, 자신의 신체를 믿고 스피드와 에너지를 앞세운 플레이를 펼쳤던 선수였을 뿐. 요즘으로 비교하자면 전성기의 루이스 수아레스처럼 테크닉도 훌륭하지만 뛰어난 신체 능력으로 극대화시키는 타입이었다.[1][2][3]2.2. 골 결정력
특히 그의 강점 중 하나는 바로 다재다능한 득점 도구들이다. 우선 슈팅에 있어서 왼발 오른발을 가리지 않고, 골대 바로 앞부터 페널티 박스 바깥에서까지 득점 가능한 범위도 넓다. 그의 100골 비디오 클립을 보면 머리로만 정확히 25골을 득점하기도 한다. SS 라치오와 경기에선 머리, 오른발, 왼발의 퍼펙트 해트트릭을 기록하기도 했다. 즉, 어느 부위로든 골로 넣을 수 있었고 동유럽의 호나우두라 불릴만큼 단독 돌파력도 뛰어났으며 여기에 준수한 프리킥 능력까지 보유하고 있어서 중장거리 프리킥을 맡아 차기도 했다.[4]이러한 다양한 무기들을 바탕으로 난전 상황에서 우당탕탕 골, 세트피스에서 헤딩, 중장거리슛, 주워먹기, 열린 공간에서 치달, 좁은 공간에서 밀집수비 깨기 등등 거의 모든 상황에서 온갖 방식으로 득점을 해냈고 때문에 무결점의 스트라이커라는 영광스런 칭호로 불리었다. 중앙 공격수 항목에서 컴플리트 포워드 부분을 보면 사실 컴플리트 포워드의 요소 중에 1~2개가 부족하거나, 육각형이긴 한데 월클 기준에서는 작은 육각형(...)인 이들이 많이 섞여 있는 걸 알 수 있다. 노골적으로 말해 나무위키 특성상 약간 아무나 컴플리트 포워드라고 적혀있는 면이 있는데, 세브첸코 만큼은 컴플리트 포워드의 요소를 진정으로 충족시키는 몇 안되는 선수였다.
2.3. 적은 골 욕심
이런 능력에도 불구하고 그의 플레이가 가장 두드러지는 점은 이기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동료와 협업 플레이를 중시했던 그는 위치를 가리지 않고 뛰었으며 골 욕심이 크지도 않았다. 실제 1:1 찬스를 동료인 인자기에 넘기는 장면을 보이기도 했는데, 당시 그의 인터뷰는 "인자기가 컨디션이 좋아서"였다.2.4. 포지션 이해도
무결점 스트라이커라 불리게 된 또 다른 이유는 멀티 포지션 능력과 포지션에 대한 이해도다. 소련 축구계의 명장인 발레리 로바노브스키 감독에 의해 육성된 셰브첸코는 10대 시절부터 다양한 위치에서 포지션 소화하는 법을 배웠고, 그 결과 공격수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플레이를 수준급으로 해낼 수 있는 선수로 성장했다.원톱과 투톱 모두 능숙하게 뛸 수 있었고, 최전방에서 득점을 노리는 플레이와 보다 공격적인 파트너를 뒤에서 지원하는 처진 스트라이커 모두 가능했으며, 심지어 준수한 수비력까지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고속 스피드를 이용한 선수들이 종종 당하는 무릎 부상은 그도 피해갈 수 없었다.
3. 몰락
밀란은 멤버 서로가 서로의 특성을 잘 알아 손발이 맞고, 리그 적응도 필요 없겠다, 선수 본인이 팀 내에서 확고한 위치에 있는 만큼 주전 경쟁에 대한 스트레스도 없었다. 그러나 첼시는 당장 성과를 내야 할 뿐만 아니라, 주전 경쟁이 기본이었다. 젊었을 때라면 몰라도 부상을 당하고 나이를 먹으며 과거처럼 폭발적인 움직임을 보일 수 없게 된 셰브첸코에게 과격한 몸싸움이 난무하는 프리미어리그의 벽은 너무나도 높았다. 더군다나 그는 당시에 영어가 서툴렀기 때문에 동료들과 제대로 된 의사소통을 할 수 없었다. 부진과 부상, 적응 실패. 그리고 자신감 상실. 그의 이름과 명성에 어울리지 않는 단어로 그의 플레이가 수식되었고, 그는 잉글랜드에서 침몰했다.4. 총평
2001-02 시즌 리그 14골, 부상의 여파로 컨디션이 좋지 못했던 2002-03 시즌 리그 5골은 많은 팬들의 우려를 낳는 결과였다.[5] 그러나 2002-03 시즌 챔스 4강에서 만난 밀라노 더비에서 과거의 역동적인 모습을 보이며 골을 성공시켰고, 다음 해인 2003-04 시즌 세리에 A 득점왕과 발롱도르를 수상해 팬들의 불안을 불식시켰다.그는 플레이 스타일의 변화를 통해 득점을 양산했는데, 이는 과거처럼 뛰어난 신체 능력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1선과 2선을 오가며 패스를 유도하는 방식이었다. 아울러 이쯤 영입된 카카가 역습시 팀 스피드를 더해 과거보다 셰브첸코의 스피드 부담이 줄었다.
종합적으로 전성기의 셰브첸코는 폭발적인 스피드와 어느 위치든 골을 넣을 수 있는 결정력, 동료들에게 기회를 만들어주는 연계 능력과 포지션 이해도로 별명인 무결점 스트라이커의 이름값을 톡톡히 하며 2000년대 최고의 공격수 중 한 명이었다.
[1] 굳이 둘을 비교하자면 셰브첸코가 수아레스보다 신체 능력에 더 많이 의존한 편이었다. 그래서인지 수아레스는 33세~34세 시즌에도 아틀레티코의 리그 우승을 이끌고 리그 MVP를 수상할만큼 상대적으로 기량 유지를 잘했지만 셰브첸코는 30세가 채 되기 전에 첼시로 이적했는데도 그대로 몰락해버렸다.[2] 셰브첸코와 비슷하게 운동 능력을 활용한 테크니션이었으나 운동 능력을 잃고 기량이 급격히 하락하며 전성기 시절의 절륜한 테크닉조차 투박했던 것으로 절하되는 케이스가 밀란 시절 동료였던 카카다. 다만 테크닉 대 테크닉으로 비교하자면 카카가 훨씬 화려하고 정교하기는 했다.[3] 요약하자면 세브첸코의 단독 돌파 능력은 테크닉은 적당히 준수하되 21세기 탑티어 테크니션들에 비하면 부족하지만 대신 엄청난 피지컬의 힘으로 동유럽의 호나우두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뛰어난 돌파력을 보여줬다.[4] 단거리는 안드레아 피를로가 찼다.[5] 이 때 당시 그는 매우 힘든 시기를 겪고 있었는데 부상도 그를 괴롭혔지만 그의 은사이자 정신적 지주인 발레리 로바노브스키가 사망하였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