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24 03:34:48

악송

樂松

생몰년도 미상

1. 개요2. 생애

1. 개요

후한 말의 인물.

2. 생애

미천한 집안의 출신으로 영제가 학문을 좋아해 스스로 황희편 50장을 지을 정도였고, 문부에 능한 자라면 모두 천거하라고 했는데, 본래는 경학에 바탕을 둔 자를 구했지만 후에는 척독, 공서, 조전을 쓸 줄 아는 자까지도 모두 추천해 불어들이면서 수십 명이 천거되어 영제가 178년 2월에 홍도문학을 설치했다.

악송은 홍도문학에 들었고 이렇게 홍도문학에 든 무리들은 행실이 좋지 않았으며, 권세에 빌붙어 무리를 이뤄 홍도문 아래에서 기다리다가 지방의 작은 희소식만 늘어놓아 영제가 기뻐하며 직위에 맞지 않게 우대했다. 양구가 홍도문학을 폐지할 것을 상주하면서 중상방에서 악송과 강람을 비롯한 32명을 위해 그림을 그리고 찬사를 쓰게 한 것이 이는 학문을 권하기 위함이었다고 하면서도 악송을 강람과 함께 친척에 의지해 권세가에 빌붙어 임금의 안색을 살피며 관직을 했다고 비판했다.

악송은 시중제주, 시중, 봉거도위를 지냈고 180년에 영제가 필규원과 영곤원을 짓고자 했다가 양사가 글을 올려 반대해 중단하려 했다가 악송은 공사를 계속할 것을 권유하는 상주를 올려 공사가 진행되었다.

장각이 태평도를 전파하자 태위 양사가 장각을 체포하라는 상소를 올렸는데, 악송은 유도, 원공 등과 함께 상소해 작위를 주는 조건으로 장각을 토벌할 사람을 모집하자고 했지만 영제는 마음에 두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