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아투아가흘리우티트/그뢴란스포스텐(Atuagagdliutit/Grønlandsposten)은 세르미치아크와 함께 그린란드의 두 주요 신문 가운데 하나이다. 이름이 길기 때문에 흔히 AG라고도 줄여 부른다.주로 정치, 경제, 산업 등의 주제를 다루는 세르미치아크와 달리 아투아가흘리우티트는 주로 인물, 스포츠, 문화 등을 다룬다.
1.1. 이름
본래 그린란드 신문 아투아가흘리우티트(Atuagagdliutit)와 덴마크 신문 그뢴란스포스텐(Grønlandsposten)이 따로따로 있었으며, 이 둘이 합쳐지게 됨에 따라 현재의 이름이 되었다.아투아가흘리우티트(Atuagagdliutit)는 그냥 '읽을거리(를 제공하는 글)'라는 뜻으로, '역사' 문단에서 후술하는 바와 같이 본래 그린란드인의 문화와 생활상을 보전하기 위한 방편으로서 창간된 점과 관련이 깊다.
그린란드어 명칭인 Atuagagdliutit는 개정 전의 철자법으로 된 명칭으로서, 여타 그린란드 관련 문서와 같이 그린란드어 문서에서 제시하는 한글 표기 방식을 따라 현재의 철자법으로 옮겨 적었을 때의 표기(Atuagalliutit)를 좇아 '아투아가흘리우티트'라 표기하고 있다.
2. 역사
1861년 덴마크인 지질학자 힌리크 요하네스 링크(Hinrich Johannes Rink)에 의해 1861년 창간되었다. 링크는 그린란드인들의 문화적 정체성이 덴마크에 동화되면서 사라지는 중이라고 보았으며, 신문을 발행하여 그린란드인의 생활상과 문화에 대해 글로써 출판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하였다.때문에 아투아가흘리우티트는 오로지 그린란드어만으로 출판되었으며, 다루는 내용 또한 초기에는 시사라기보다는 그린란드 각지에서 전승되는 이야깃거리나 생활상, 소소한 소식 등이 주를 이루었다. 이러한 경향은 1930년대를 거치며 점차 사회 문제를 비롯한 시사지로 바뀌게 된다.
원칙적으로 아투아가흘리우티트는 매월 한 번 발행되어야 했지만, 당시 그린란드의 열악한 물류 환경 탓에 실질적으로는 매년 1년치 기사가 한번에 도착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때문에 각지에 신문이 도달할 때쯤에는 신문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도 기사 대부분이 이미 철 지난 소식을 다루는 경우가 잦았지만, 그럼에도 당시로서는 그린란드인들에게 있어 외지의 소식을 들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경로였고, 따라서 빠르게 대중화되었다.
일설에 의하면 1861년 당시 발간된 신문에는 세계 최초로 채색된 삽화가 삽입되었다고도 한다.
아투아가흘리우티트는 점차 독자 투고에 많은 지면을 할애하였는데, 때문에 일종의 그린란드 국내 포럼으로도 기능하게 되었다. 물론 앞서 언급한 대로 열악한 물류 환경 탓에 한 가지 토론을 시작하면 몇 년씩 질질 끌리기 일쑤였음은 감안할 만하다.
이후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며 그린란드는 외부 세계와 거의 완전히 단절된 상태가 되었는데, 이것은 당시 그린란드에 있던 덴마크인들 역시 그다지 예외가 아니었다. 이에 고트호프(현 누크)에서 '그뢴란스포스텐'이라는 이름의 덴마크어 신문이 발간되었다. 이 신문 또한 당대 그린란드에서 유행하였으며, 1952년부로 아투아가흘리우티트와 합쳐졌다. 이때부터 아투아가흘리우티트/그뢴란스포스텐이라는 현재의 이름으로 정착하게 된다.
당시까지만 하여도 아투아가흘리우티트는 월간지의 형태로 발간되었지만, 1960년대 들어 발행 주기가 점점 더 단축되어 격주로 발행하다가, 곧 주 1회, 주 2회, 주 3회의 순서로 짧아지게 되었다.
20세기 후반 들어 점차 신문 발행으로 인한 수익이 감소하는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고, 때문에 1993년부로 다시 주 2회로 발행 주기가 연장되었으며, 이후 다시 주 1회로 연장되었다.
2010년, 마찬가지로 수익 감소 문제에 직면한 세르미치아크와 아투아가흘리우티트가 합병되었다. 현재는 Sermitsiaq.AG라는 단일한 신문사에서 두 신문을 발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