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3-19 03:42:47

아르투로 아라우호

파일:엘살바도르 대통령 문장.svg
엘살바도르 공화국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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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살바도르 공화국 제26대 대통령
아르투로 아라우호
Arturo Araujo
파일:Arturo_Araujo_Fajardo.jpg
<colbgcolor=#0f47af><colcolor=#ffffff> 본명 아르투로 아라우호 파하르도
Arturo Araujo Fajardo
출생 1878년 3월 6일[1]
엘살바도르 산타테클라
사망 1967년 12월 1일
엘살바도르 산살바도르
재임기간 엘살바도르 제26대 대통령
1931년 3월 1일 ~ 1931년 12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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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f47af><colcolor=#ffffff> 부모 <colcolor=#373a3c,#ddd>아버지 에우헤니오 아라우호
어머니 엔리케타 파하르도
배우자 도라 모턴[2]
로사 아멜리아 구스만
자녀 엘렌
아르만도
학력 런던 대학교
취리히 대학교
정당 노동당 }}}}}}}}}
1. 개요2. 생애3. 대통령 재임기

1. 개요

엘살바도르의 26대 대통령(1931)이다. 엘살바도르 최초로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통해 당선된 대통령이었으나 법정 임기를 1년도 채우지 못하고 1931년 12월 군사쿠데타로 무너졌다.[3]

2. 생애

1878년 3월 6일 라리베르타드 주(Departamento de La Libertad) 산타테클라(Santa Tecla)에서 태어났다. 부친 에우헤니오 아라우호는 토마스 레갈라도(Tomás Regalado) 정권에서 재정장관을 지냈다. 영국 유학 시절 영국 노동당의 이념에 감화되어 사회민주주의 신념을 갖게 되었다. 1917년 대지진으로 파괴된 아르메니아 시[4]의 재건에 참여했다. 노동당(Partido Laborista)을 창당하여 1919년 대선에 출마했는데 국민민주당(Partido Nacional Democrático)을 이끄는 알폰소 키뇨네스 몰리나(Alfonso Quiñónez Molina)가 주도한 부정선거로 낙선하자[5] 쿠데타를 시도했다가 온두라스로 망명했다. 그곳에서 지지자를 모아 1920년 5월 엘살바도르를 침공했고 곧 패배하여 다시 온두라스로 도망쳤다. 그는 1923년이 되어서야 귀국이 허락되었다.

1927년 피오 로메로 보스케(Pío Romero Bosque)가 대통령이 되었는데 그는 1919년 대선에서 국민민주당이 아라우호 견제용으로 따로 낸 국민민주당 후보였다.[6] 로메로는 국민민주당의 의도와 달리 정치개혁에 착수하여 공정하고 자유로운 선거를 추진했다. 1931년 대선에서 아라우호는 막시밀리아노 에르난데스 마르티네스를 러닝메이트로 하여 출마, 46.65%를 득표하여 비록 과반 득표에는 미치지 못했으나 의회 대부분을 차지한 동료 의원들의 지지에 힘입어 각각 대통령과 부통령에 선출되었다.

3. 대통령 재임기

아라우호는 1931년 3월 1일 대통령에 취임했다. 아라우호는 대공황을 계기로 급격히 확산된 사회적 혼란에 대처할 능력이 없었다. 1931년 7월 헌병대와 대학생 간의 대치에서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1931년 8월 커피 가격이 하락하자 정부는 금의 수출을 금지시켰다. 그 후 12월의 지방의회 선거에서 공산당의 참여를 허용하자 쿠데타가 발생하였다. 쿠데타 세력은 시민 총재정부(Directorio cívico)를 자칭하고 부통령 마르티네스를 대통령으로 추대했다. 아라우호는 과테말라로 망명했고, 후일 귀국하여 1967년 12월 1일 산살바도르에서 죽었다.


[1] 영국 외무부 문서(British Documents on Foreign Affairs: Reports and Papers from the Foreign Office Confidential Print. Part II, from the First to the Second World War. Series D, Latin America, 1914-1939). 스페인어 위키백과는 연도만 제시하였음.[2] 영국 유학 시절 만난 영국인 여성이다.[3] 엘살바도르 사상 2번째로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로 당선된 대통령은 53년 후 선출된 호세 나폴레온 두아르테(1984~1989)이다.[4] 엘살바도르 서부 손소나테 주(Departamento de Sonsonate)의 소도시이다.[5] 1919년 대선 승자는 몰리나가 국민민주당 후보로 내세운 호르헤 멘델레스(Jorge Meléndez)였다.[6] 그러니까 당시 국민민주당은 후보를 2명이나 낸 것이다. 어차피 멘델레스를 1위로, 로메로를 2위로, 아라우호를 3위로 하기로 미리 정해놓은 부정선거였으므로 실제로는 의미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