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olbgcolor=#666633><colcolor=#fff> 아나톨리 스테셀 Анатолий Стессель Anatoly Stessel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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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아나톨리 미하일로비치 스테셀 Анатолий Михайлович Стессель Anatoly Mikhaylovich Stessel | |
| 출생 | 1848년 6월 28일 | |
| 러시아 제국 상트페테르부르크 | ||
| 사망 | 1915년 1월 18일 (향년 66세) | |
| 러시아 제국 포돌라현 흐멜리크 | ||
| 복무 | 러시아 제국 육군 | |
| 복무 기간 | 1866년 ~ 1906년 | |
| 최종 계급 | 대장 | |
| 주요 참전 | 러시아-튀르크 전쟁 의화단 운동 러일전쟁 | |
| 주요 서훈 | 성 게오르기 훈장 3, 4등급 성 블라디미르 훈장 4등급 성녀 안 훈장 2, 3등급 성 스타니슬라프 훈장 2, 3등급 | |
1. 개요
러시아 제국의 군인.2. 생애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독일계 러시아 제국군 중장까지 올라간 이반 마베예노비치 스테셀의 아들로 태어났다. 파벨 군사학교를 졸업하고 1866년 보병 소위로 임관했으며 튀르크 전쟁에 참가했다. 1897년 제16라도가보병연대장, 제44캄차카보병연대장을 역임하고 제3동시베리아여단장을 지내며 의화단 운동 8개국 연합군의 일원으로 참가했다. 톈진 전투에서 부상을 입었으나 공을 세워 성 게오르기 훈장 4등급을 수여받았다.1903년 관동군 사령관으로 부임했고 뤼순에 있는 아르투르 요새로 이동했다. 제7동시베리아저격사단장인 로만 콘드라첸코의 방어 계획을 받아들이고 요새를 강화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요새 사령관인 콘스탄틴 스미르노프와의 지휘권으로 갈등을 빚어 혼선을 가져왔다. 결국 해임되었으나 명령서를 숨기고 명령을 행사했다.
러일전쟁이 발발하고 콘드라첸코과 저격사단의 분전으로 일본군에게 큰 피해를 입혔으나 203고지의 함락, 콘드라첸코가 포격으로 전사하고 후임인 알렉산드르 포크의 실책으로 결국 일본군에게 투항했다.
전후 스미르노프의 고발로 명령불복종과 조기항복죄로 군사재판에서 사형을 구형받았으나 뤼순 공방전 당시 일본군 제3군사령관 노기 마레스케의 구명으로 금고 10년형으로 감형되었다. 석방되고 차 상인으로 여생을 보내다가 1915년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