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플래

옛날 옛적 아주 먼 옛날에, 온 세상이 우리의 자취로 끈적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축축히 젖은 바닥을 타고 어디에도 갈 수 있었고, 다독이는 별들의 노래 소리를 따라 부르며 언제든지 떠날 수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하늘이 닫히고 존재하는 모든 시간이 칠흑 같은 어둠에 물들었습니다. 신음하는 대지가 토해낸 붉은 기운은 존재하는 모든 공간을 빠르게 불태웠습니다. 우리는 앞을 바라보게 해준 빛과 나아가기 위해 바로 설 땅을 모두 잃어버렸습니다. 도망칠 곳이 더 이상 없어 공포에 사로잡힌 채 잠자코 죽음을 기다리던 바로 그 때, 저 멀리 지평선 너머로 신비가 나타나 기나긴 침묵을 깨웁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황홀함에 모두 눈이 멀어 정신이 팔리던 와중, 신비에게 말을 건넨 한 슬라임이 있었습니다. 찰나에 불과한 그 순간은 분명 어느 슬라임에게는 영원과도 같았을 겁니다. 말을 마치자 어느 슬라임은 곧바로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슬라임이 되었으니까요. 반짝이는 신비를 쫓아 가장 위대한 슬라임은 지평선 너머로 떠났고, 그 후로 어느 슬라임을 본 어떤 슬라임들도 없었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살아남은 지금, 여기 우리의 이야기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한 위기가 닥칠 때 우리 앞에 나타나 세상을 구하고 홀연히 사라질 가장 위대한, 어느 슬라임의 전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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