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1-30 07:18:11

신재봉(독립운동가)

성명 신재봉(申在鳳)
이명 신군일(申君一)
생몰 1861년 1월 5일 ~ 1907년 9월 12일
출생지 황해도 연백군 해룡면 금천리
사망지 황해도 재령군
추서 건국훈장 애국장

1. 개요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신재봉은 1861년 1월 5일 황해도 연백군 해룡면 금천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895년 을미사변 소식을 듣고 연안의 유지 유치경, 평산의 신석원(申錫元)[1]·변석현(邊錫玄)·채홍두(蔡洪斗)·신혁희·조종익(趙鍾益)·우종하(禹鍾夏)·채상열(蔡相烈) 등과 함께 의병을 일으킬 것을 결의하였다. 그러나 아직 구체적으로 거사계획을 확정짓기 전에 유인석을 의병장으로 세운 제천 의진이 결성되어 크게 활약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이에 그는 여러 동지들과 함께 제천 의진에 가담하여 활동했다.

이후 유인석이 서간도로 이동할 때 함께 하지 않고 고향으로 돌아간 그는 1907년 고종이 퇴위하고 대한제국군이 해산되자 동지들을 재규합한 뒤 전 목천부사(木川府使) 박정빈을 의병대장으로 추대하였다. 이때 그는 소모장(召募將)에 임명되었다. 그는 평산으로 가서 도평산에 의진을 정하고 박정빈·이진룡·조맹선 등과 함께 창의의 기치를 걸고 소모활동을 하는 한편 각 지방에 격문(檄文)을 살포하여 장정 4천여 명을 모았다.

그러나 1907년 9월 재령군에서 의병을 모집하다 일본군에게 체포되었고, 일본군의 회유를 끝까지 거부하다 1907년 9월 12일에 피살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2년 신재봉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1] 독립유공자로 지정된 신석원과 동명이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