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2-12-13 20:29:48

시어도어 위트모어

자메이카의 축구감독
파일:시어도어위트모어.jpg
<colbgcolor=#eeeeee,#191919> 이름 시어도어 위트모어
Theodore Whitmore
본명 시어도어 에클스턴 위트모어
Theodore Eccleston Whitmore, OD[1]
출생 1972년 8월 5일 ([age(1972-08-05)]세)
자메이카 세인트제임스주 몬테고베이
국적
[[자메이카|]][[틀:국기|]][[틀:국기|]]
신체 188cm
포지션 중앙 미드필더
소속 <colbgcolor=#eeeeee,#191919> 유스 몬테고베이 보이즈 클럽 (1990~1994)
선수 몬테고베이 보이즈 클럽 (1992~1995)
바이올렛 키커스 (1996~1997)
세바 유나이티드 (1997~1999)
헐 시티 AFC (1999~2002)
세바 유나이티드 (2002~2003)
리빙스턴 FC (2003)
세바 유나이티드 (2003~2004)
트란메어 로버스 FC (2004~2006)
세바 유나이티드 (2006)
감독 세바 유나이티드 (2006 / 감독 겸 선수)
세바 유나이티드 (2006~2008)
자메이카 대표팀 (2007 / 감독 대행)
자메이카 대표팀 (2008 / 수석 코치)
자메이카 대표팀 (2008 / 감독 대행)
자메이카 대표팀 (2009~2013)
자메이카 U-20 대표팀 (2014~2015)
자메이카 대표팀 (2016~2021)
국가대표 파일:Jamaica JFF.png 120경기 24골 (자메이카 / 1993~2004)

1. 개요2. 클럽 경력3. 국가대표 경력4. 플레이 스타일5. 감독 경력6.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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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자메이카의 축구감독. 오랜 기간동안 자메이카 국가대표팀 감독을 역임했다.

또한 선수 시절,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대회에서 자메이카 대표팀의 월드컵 본선 유일한 승리를 이끈 축구영웅이다.

2. 클럽 경력

10대때까지 식품 배달일을 병행하며 축구를 했고, 1992년이 되어서야 고향 몬테고베이에 있는 몬테고베이 보이스 클럽에 입단해 축구선수의 길을 가기 시작했다. 1996년 자국 리그 팀인 바이올렛 키커스에 입단해 처음 성인 무대에 데뷔했고, 1997년에는 자국 명문팀 중 하나인 세바 유나이티드에 입단했다.

월드컵에서 활약한 덕에 1999년 헐 시티 AFC에 진출하며 처음 해외 무대를 밟게 되었다. 2000-2001 시즌 중반까지 헐 시티에서 주전급으로 뛰며 잘나갔으나 2001년 A매치 소집기간 중 자국에서 국가대표 동료 스티븐 말콤과 같이 차로 이동하다가 교통사고를 당하고 만다. 이로 인해 위트모어는 심각한 부상을, 동승한 스티븐 말콤은 심지어 사망하기에 이른다. 위트모어는 이후 커리어 단절을 겪은 뒤 소속팀에 복귀했으나 그의 자리가 있을리 만무했다. 결국 2002년 친정팀 세바 유나이티드로 복귀한다.

이후에도 2003-04 시즌 스코틀랜드의 리빙스턴 FC, 2004-2005 시즌 트란메어 로버스 FC와 계약을 맺으며 다시 영국무대에 도전했지만 실패를 거듭하며 자국으로 돌아오게 된다. 이후 2006년부터 2008년까지 세바 유나이티드에서 뛰고 선수생활을 마무리했다.

3. 국가대표 경력

1993년 미국과의 친선전에서 A매치에 데뷔했다. 1990년대 전성기를 구가한 자메이카 레게보이즈의 핵심 멤버로써 이언 구디슨, 로비 얼 등과 함께 활약했다.

특히 자메이카의 유일한 월드컵 승리의 1등공신으로 유명하다. 자메이카는 1차전 크로아티아전 1-3 패배, 2차전 아르헨티나전 0-5 패배로 첫 출전의 한계를 보이며 조기 탈락을 맛봤는데, 그나마 3차전 일본과의 경기에서 2-1로 역전승을 하며 의미 있는 1승을 거둔다. 이 때 2골을 넣은 선수가 바로 시어도어 위트모어로, 그는 이 경기를 통해 일약 자메이카 대표팀 월드컵 통산 최다골 기록의 주인공이 된다. 조별리그 3경기에 모두 출전하며 인상적인 활약을 펼쳐 대회 이후 잉글랜드 진출에도 성공하게 된다.

이후 2002, 2006 월드컵 지역예선에도 활약했고, 2003년 골드컵까지 출전했다. 통산 A매치 105경기 24골로 센추리클럽 가입자기도 하다.

4. 플레이 스타일

큰 키에도 불구하고 매우 유연한 방향전환과 발밑 기술을 가지고 있어 중앙 미드필더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많은 득점을 올린 선수다. 주로 경기를 뒤에서 지휘하는 스타일이라기보단 직접 해결하는 식의 플레이를 구사하며, 1998년 일본과의 월드컵 경기에서도 이런 식으로 혼자 2골을 넣으며 자메이카의 사상 첫 월드컵 승리를 이끌었다.

5. 감독 경력

트란메어 로버스에서 계약 해지를 하고 2006년 세바 유나이티드로 돌아올 때 선수 겸 감독으로 돌아온다. 2005-2006 시즌 중반부터 세바 유나이티드의 지휘봉을 잡게 된 위트모어는, 팀의 안정적인 중위권 사수에 성공하며 괜찮은 감독직 경력을 시작했고, 2006-07 시즌과 2007-08 시즌 세바 유나이티드 감독직에만 전념하며 두 시즌을 이끈다.

2007년 11월 보라 밀루티노비치 감독의 경질로 공석이 된 자메이카 대표팀의 임시 감독직을 맡아 11월 A매치 2경기를 모두 승리로 이끌었고, 이후 과거 1998년 월드컵 본선을 이끌었던 헤네 시몽이스 감독이 선임되자 수석코치로 임명되었다. 세바 유나이티드 감독과 자메이카 대표팀 수석코치를 겸임하다가 2010 남아공 월드컵 북중미카리브 지역 최종예선 진출에 실패한 헤네 시몽이스 감독이 경질되었고, 또 다시 9월 A매치를 감독 대행으로 이끌게 되었다. 그는 월드컵 최종예선 희망이 거의 없던 자메이카를 이끌고 멕시코, 온두라스를 모두 1-0으로 잡는 이변을 일으키며 주목을 받게 되고, 그를 대표팀 감독으로 그냥 임명하자는 여론이 형성되었다. 그러나 이미 존 반스 신임 감독이 내정되어있었기에 실현되지는 못했다.

하지만 존 반스 체제가 1년만에 무너지며 드디어 시어도어 위트모어가 자메이카 대표팀 감독에 정식 임명되었다. 4년간 대대적으로 리빌딩을 벌였지만 결국 이번에도 2014 월드컵 최종예선 진출에 실패하며 위트모어는 경질되었다. 2014년부터 2015년 동안 U-20 대표팀을 잠시 맡았던 그는 다시 2016년 세 번째 대표팀 감독대행을 하며 다시 대표팀 전면에 등장했고, 2017년 CONCACAF 골드컵 준우승을 거두는 등 이번에는 좋은 성과를 낸 끝에 결국 2018년 정식 계약을 맺고 다시 대표팀 감독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2022 카타르 월드컵 최종에선 진출에는 성공했으나 본선 진출 좌절이 확정되면서 결국 2021년 12월 대표팀 감독직에서 다시 물러났다.

6. 여담

  • 2018년 1월 신태용호의 튀르키예 전지훈련 당시 자메이카 대표팀을 이끌었던 감독이 바로 시어도어 위트모어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인상적인 한국 선수로 김신욱장현수를 뽑기도 했다. #
  • 자동차와의 악연이 깊은 사람이다. 현역 시절 상술했듯, 큰 차 사고를 당해 동승자였던 동료 선수가 아예 사망하는 비극도 겪었고, 이 사건으로 인해 전성기였던 본인의 커리어도 크게 꺾여버리고 만다. 또한 2013년 11월에는 첫째 아들이 자전거를 타다가 자동차에 치여 숨지는 일까지 일어났다. 14살에 운명을 달리한 첫째 아들은 아버지를 따라 축구를 시작하던 유망주여서 안타까움을 더했다.

[1] Order of Distriction, 자메이카의 사회 저명인사들에게 수여하는 훈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