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니움 전쟁의 전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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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기원전 343년, 삼니움인과 로마군간의 캄파니아 일대의 패권을 둘러싼 전투.2. 상세
삼니움인들은 가우루스 산 전투와 사티쿨라 전투에서 로마군에게 패배했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캄파니아에서 로마군을 몰아내기 위해 대규모 병력을 파견했다. 당시 카푸아에서 장기 주둔하기 위해 보급품 마련에 분주하던 집정관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코르부스는 적군이 다가오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자 숙영지와 보급품을 보호하기 위해 상당 규모의 병력을 남겨놓고 나머지 병력을 이끌고 수에술라로 행진했다. 이후 적과 가까운 곳에 숙영지를 세우고 대치했다.상당한 병력을 카푸아에 남겨둔 채 이동했기 때문에, 로마군 진영은 평소보다 훨씬 작았다. 삼니움 병사들은 이를 보고 지휘관들에게 즉시 공격하자고 주장했지만, 장군들은 뭔가 함정이 있는 게 분명하다고 여겨 섣불리 공격하지 않았다. 그렇게 한동안 대치하던 중 식량이 부족해지자, 삼니움인들은 로마인들이 수적으로 열세하니 섣불리 진영 바깥으로 나오지 못하리라 여기고 식량 수집병들을 들판으로 보내기로 했다.
그렇게 적이 식량 수집에 열중하느라 진영 수비에 큰 신경을 쓰지 않자, 발레리우스는 부하들을 이끌고 삼니움 진영을 급습해 단숨에 점령했다. 그 후 적 진영 다수의 병력을 배치하고 발빠르고 용맹한 병사들을 엄선한 뒤 삼니움의 식량 수집병들을 습격하게 했다. 갑작스런 공격을 받은 삼니움인들은 살해당하거나 뿔뿔이 흩어졌다. 리비우스에 따르면, 40,000개의 방패와 170개의 군기가 로마군에 노획되었다고 한다.
그 후 발레리우스는 동료 집정관 아울루스 코르넬리우스 코수스와 함께 로마로 귀환해 개선식을 거행했다. 파스티 카피톨리니의 <개선장군 목록>에는 발레리우스와 코르넬리우스가 각각 기원전 343년 9월 21일과 9월 22일에 삼니움족에 대한 승리를 축하했다고 밝혔다. 이후 로마는 기원전 342년 캄파니아에 주둔했던 로마군의 반란으로 인해 전쟁을 더 지속하기 힘들었고, 삼니움 역시 일전의 패배로 인해 큰 손실을 입어서 전쟁을 벌이기 힘들었다. 이에 기원전 341년 삼니움이 캄파니아와 로마의 동맹을 받아들이고 로마와 삼니움간의 조약을 갱신하기로 하면서 제1차 삼니움 전쟁은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