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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수문장 교대의식의 부대 행사로서, 조선 시대 궁성과 도성 또는 도시 주변의 치안 유지를 위해 장교와 군사가 순찰하는 것을 재현한 행사이다. 이와 비슷한 성격의 일정 규모의 조선 시대 군사 행렬 재현을 두고 전국 각지 여러 곳에서 순라 의식 또는 순라 행렬이라는 제목으로 행사를 시행하고 있다.2. 행사 시간
행사 제목 | 주관 | 운영 시간 | 횟수 | 행사 장소 | 소요시간 |
경복궁 수문장 순라의식 | 국가유산진흥원 | 15:00~16:00 (주말, 공휴일에만 시행) | 1일 1회 | 경복궁 | 60분 |
덕수궁 수문장 순라의식 | 서울특별시 | 09:50~10:30, 15:00~15:40 | 1일 3회 | 숭례문 | 40분 |
행사는 야외 행사인만큼 변수가 많은 관계로 주관사의 사정에 의해 변경 또는 취소 되기도 한다. 특히 경복궁의 경우 수문장 임명의식이나 궁궐 호위군 사열의식 첩종과 같은 특별 행사가 진행되면 3시 30분으로 30분 늦춰서 행사를 진행하며, 우천시 또는 폭염이나 혹한기에는 취소 되는데 광화문 앞 광장, 시청 앞 광장에서 진행되는 각종 시위도 행사 취소의 사유 중 하나다.
3. 직책
3.1. 경복궁 수문장 순라의식
경복궁 수문장 교대의식에서 등장하는 배역들이 그대로 등장한다. 수문장, 종사관, 전루군, 갑사, 대졸, 정병, 총통군, 기수, 취라치가 등장하며, 인원 규모는 유동적이다.3.2. 덕수궁 수문장 순라의식
덕수궁 역시 수문장 교대의식에 출연했던 배역들이 그대로 등장한다. 수문장, 참하, 수문군, 취라치, 취타 집사로 구성되며 경우에 따라서는 승정원 주서, 액정서 사약, 엄고수와 같은 역할들도 순라에 참여하기도 한다.배역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수문장 교대의식 문서를 참조하기 바란다.
4. 동선
4.1. 경복궁 수문장 순라의식
건춘문 안 공터 (출발) → 향원정 (포토타임) → 경회루 (포토타임) → 비현각 앞 (퇴장)경복궁 안을 돌되 국가 유산인 옛 건물이나 나무나 꽃, 잔디 등을 훼손하지 않기 위하여 궁궐 안을 샅샅이 다니는 것이 아니라 궁궐 안에서도 바깥쪽 위주로 행렬한다. 의장물 역시 수문장 교대의식에 사용되는 의장물을 그대로 사용하는만큼 큰 깃발과 무기를 사용하기 때문에 행렬 할 때 깃발이나 무기를 자주 내리고 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4.2. 덕수궁 수문장 순라의식
대한문 앞 (출발) → 숭례문 (도착) → 숭례문 개·폐 의식 → 대한문 앞 (퇴장)숭례문 개·폐의식을 위하여 수문장과 수문군이 행렬하는 모습을 볼 수 있으며, 궁궐 안이 아니라 바깥이기 때문에 서울 도심에서 한복을 입은 수십명의 군인들이 인도로 행렬하는 모습을 볼 수 있어 이색적이라고 평가 받는다. 다만 마찬가지로 긴 기치와 무기로 인해 도심 자연 경관이 훼손될 우려가 있어 의장물을 내리고 편하게 가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5. 고증
도성의 치안 유지와 궁성 수비를 위하여 순찰하는 것은 조선 이전부터 시행되어오던 제도였다. 조선 시대에는 순작(巡綽)이라는 말로도 등장하며, 《경국대전》에서는 행순(行巡)이라는 기록으로 나타난다. 조금 더 깊게 들어가자면, 해가 지고 인경을 알리는 종이 28번 울린다. 이때부터 통행 금지가 발동되는데, 별도의 허가증 없이 도성 안을 배회하는 자는 경수소(警守所)에 체포하였다가 날이 밝으면 군영에서 곤장을 맞게 하였다. 이는 곧 야밤에 단체 활동이나 도둑, 화재를 막기 위함이었다.
도성이나 도시의 치안 유지를 위하여 순라군을 편성하는 것은 주간에도 마찬가지지만, 야간에는 별도의 규정을 두어 순찰하게 하였는데, 경국대전에 보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행순(行巡)】 궁궐 내에서는 위장(衛將)과 부장(部將)이 군사(軍士) 10인을 거느리고 야간 시간을 배분하여 순찰한 다음에 무사(無事) 여부를 왕에게 직접 아뢴다[直啓] . ○ 도성 내외의 순찰은 본조(本曹)에서 출직군사(出直軍士)를 충의위(忠義衛)·충찬위(忠贊衛)·충순위(忠順衛)·족친위(族親衛)·내금위(內禁衛) 이외에 오위(五衛)의 각 1부(部). 2개 소로 나누어 맡겨서 순찰시킨다. 또 왕의 낙점(落點)을 받은 순장(巡將) 및 감군(監軍)과 순장(巡將)은 중추부(中樞府)의 지사(知事) 이하 첨지(僉知) 이상을 왕에게 추천하여 임명하고, 부족하면 행직(行職) 당상군(堂上軍)을 왕에게 추천하여 임명한다. 각 운령관(運領官)은 상호군(上護軍)·대호군(大護軍)·호군(護軍)으로써 임명하고, 부족하면 별시위(別侍衛) 6품(品) 이상으로 임명한다. ○ 감군(監軍)은 선전관(宣傳官)과 본조(本曹)·도총부(都府) 당하관(堂下官)을 왕에게 추천하여 임명한다. 출·입번장(出入番將)은 대궐에 들어가 숙배(肅排)하고, 대궐 안에서 납패(納牌) 수패(受牌)한다. 각 운령관(運領官)이 받는 패(牌)는 순장(巡將)이 한꺼번에 받아서 나누어 준다. 행재시(行在時)에는 승정원(承政院)에서 패(牌)를 수납한다. ○ 본조(本曹)는 궁성 4문(宮城四門)밖의 직숙(直宿)에 각기 상호군(上護軍)·대호군(大護軍)·호군(護軍) 중에서 1인과 부족하면 행직인(行職人)으로 임명한다. 정병(正兵) 5인을 배정한다. 도성 내외의 여러 경수소(警守所)는 보병(步兵)2인이 부근의 방리인(坊里人) 5명을 거느리고, 그들이 지닌바 궁(弓), 검(劒), 장(杖) 등을 갖고 경첨(更籤)을 <첨(籤)은 나무를 깍아서 만들며, 모(某) 경수첨(警守籤)이라고 쓴다.> 수령(受領)하며 직숙(直宿)한다. 오직 노인, 질병자, 과부로서 시양자(侍養者)가 없는 경우에 직숙(直宿)을 면제한다. ○ 산곡(山谷)의 경수소(警守所)는 정병(正兵) 5인이 직숙(直宿)한다. 광화문(光化門)의 호군(護軍)은 초저녁에 본조(本曹)에서 탁(鐸)을 받고, 아울러 군호(軍號)를 받아 각처(各處)에서 군호(軍號)를 받는 것도 같다. <군호(軍號)는 속칭 언적(言的)이라 한다.> 인정(人定)후에 정병(正兵) 2인으로 하여금 탁(鐸)을 흔들며 궁성을 순찰하여 4면(面)의 경수소(警守所) 및 각문(各問)에 차례로 전하여 주게 하고, 순환(循環)이 그치지 않도록 하다가 파루(罷漏)에 이르러 그친다. 순관(巡官)은 곧 각 운령관(運領官)이다. 매경(每更)에 궁성을 돌며 4면(面)의 경수소(警守所) 및 각문(各門)에 가서 경첨(更籤)을 거두어 날이 밝으면 본조(本曹)에 납입(納入)한다. 제처(諸處) 경수소(警守所)는 순장(巡將)이 불의(不意)에 순관(巡官)을 보내어 경첨(更籤)을 회수해서 본조(本曹)에 납입(納入)한다. 순장(巡將)도 역시 무시(無時)로 친히 가서 조사하고 살핀다. ○ 2경(更) 후부터 5경(更) 전까지 대소원인(大小員人)은 나와 다니지 못한다. 만약 급한 공무, 질병, 사상(死喪), 출생 등의 부득이한 일로 통행할 자는 스스로 순관(巡官)이나 경수소(警守所)에 고(告)하여 대소원인(大小員人)이 순장(巡將)이나 순관(巡官)을 만나면 모두 하마(下馬)하고, 순장(巡將)·순관(巡官)·대소원인(大小員人)이 어압표신(御押標信)(401) 을 만나면 모두 하마(下馬)하여야 한다. 순관(巡官)이나 경수소(警守所)가 사람을 시켜 경첨(更籤)을 갖고 연행(連行)하여, 가야할 집까지 책임지고 데려다 주게 하고[保授] 순관(巡官)은 이웃 가까이에 있는 경수소(警守所)의 경첨(更籤)을 사용한다. 다음날 본조(本曹)에 보고하여 그 사실을 확인하도록 한다. 순관(巡官) 및 경수소(警守所)는 사유없이 통행하는 자를 체포하여, 차례로 이웃 경수소(警守所)에 이관(移管)하여 순청(巡廳)(402) 에 가두고 3품(品) 이하는 곧바로 가두고, 당상관(堂上官) 및 사헌부(司憲府)·사간원(司諫院) 관원(官員)은 그 근수(根隨)를 가둔다. 도성 밖에서는 경수소(警守所)에 가두어 두었다가 새벽에 순장(巡將)에게 보고한다. 다음날 본조(本曹)에 보고한다. 만약 범금(犯禁)을 사칭하거나, 혹은 증물(贈物)을 받고 고의로 석방해 주는 자는 군령(軍令)으로 논죄한다. ○ 통소기(通宵旗)를 순청(巡廳)에 세우면, 비록 표신(標信)이 없더라도 밤새도록 통행금지가 없다. ○ 도성 내외를 순찰하는 군사(軍士)는 순장(巡將)이 초저녁에 성명을 대조 점고(點考)하고, 파루(罷漏) 후에 또 점고(點考)하고 해산시킨다. ○ 실화(失火)가 생기면 순관(巡官)은 달려가서 구화(救火)하되 도적을 살핀다. ○ 군사(軍士)의 출결(出缺)과 각경(各更)의 무사(無事) 여부는 순장(巡將)이 본조(本曹)에 보고하여 왕에게 알린다[啓達] . ○ 본조(本曹)·형조(形曹)·의금부(義禁府)·한성부(漢城府)·수성금화사(修城禁火司)·오부(五部)의 직숙원(直宿員)은 통행표신(通行標信)을 모양은 원형(圓形)인데, 1면(面)에는 통행(通行)이라 쓰고, 다른 1면(面)에는 통행(通行)이라고 전자(篆字)로 낙인(烙印)한다. ○ 야간통행(夜間通行) 및 진중(陣中)에서 사용한다. 승정원(承政院)에서 받고 다음날 아침에 반납한다. 군호(軍號)를 본조(本曹)에서 받아 각기 그 관사(官司)의 아전(衙前)과 사령(使令)을 거느리고 무시(無時)로 순찰한다. 행재시(行在時)에도 같다. ○ 행재시(行在時)에 유도삼대장(留都三大將)은 각기 군사(軍士) 30인을 내어 본조(本曹)에 보내면, 본조(本曹)에서 그 담당지역을 분정(分定)하여 맡기고, 또 순장(巡將)과 순관(巡官)도 뽑아 맡긴다. ○ 행재소(行在所) 내진(內陣)의 순찰은 도총관(都管) 이하 제장(諸將) 중에서 본조(本曹)가 왕에게 아뢰어 낙점(落點)을 받은 장수(將帥)가 군사(軍士) 5인을 거느리고 무시(無時)로 순찰한 후 직접 왕에게 보고한다. 외진(外陣)의 순찰 및 특별순찰(特別巡察)은 대장(大將)이 아장(衙將)이나 부장(部將)을 정하여 군사(軍士) 10인을 거느리고 순찰하도록 한다. |
위의 기록대로 한다면 실제 조선 시대 순라의 경우 지금의 순라 의식과 달리 많은 군사와 취타대까지 동원한 대규모 퍼레이드가 아니라 소수의 인원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현재 행해지고 있는 순라 의식은 과거의 기록을 바탕으로 하여 재창작한 퍼레이드 행사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다만 경복궁의 경우 순라를 할 때 정병이 탁(鐸)[1]을 흔들면서 돌아다닌다는 기록을 근거로 하여 취라치가 탁을 흔들면서 행사에 참여하게 함으로서 역사적 기록에 있는 것을 최대한 존중하며 따르려는 모습을 볼 수 있다.
6. 여담
- 순라 의식은 덕수궁 왕궁 수문장 교대의식의 부대행사로 먼저 행해졌으며, 초창기에는 덕수궁 왕궁 수문장 교대의식의 부대 행사와 같은 부서인 서울특별시에서 주관하는 보신각 타종의식, 숭례문 파수의식 행사를 더욱 더 위엄있고 풍성하게 보여주기 위하여 활용 되곤 하였다. 그러나 현재는 숭례문에서만 순라가 행해지고 있다. 이는 왕궁 수문장 교대의식, 숭례문 파수의식, 보신각 타종의식 행사를 운영하는 대행사[2]가 다르거나 혹은 서울시 내부에서의 결정으로 짐작된다.- 경복궁 수문장 교대의식의 경우 순라 의식이 2010년대에도 한번 행해졌으며, 이 때는 궁궐 내,외곽 지역을 행렬하는 것으로 연출하였으며, 2022년 8월에는 광화문 광장을 재개장을 축하하기 위하여 약 1달간 행해진 적 있다. 이후 2024년에 들어서 인사동에 행차하는 것으로 상설화 되었고, 2024년 12월에는 경복궁 안을 행렬하는 것으로 행사가 변화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