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1-10-12 20:26:48

송주면

<colcolor=#fff><colbgcolor=#0047a0> 자 / 호 정여(正汝) / 규사(圭沙)
본관 여산 송씨[1]
출생 1856년 7월 26일
전라도 동복현 외남면 하사리
(현 전라남도 화순군 사평면 사평리 하사마을)[2]
사망 1910년 8월 15일
전라남도 동복군 외남면 하사리 사평천
묘소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2묘역-99호
상훈 건국훈장 독립장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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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송주면은 1856년 7월 26일 전라도 동복현 외남면 하사리(현 전라남도 화순군 사평면 사평리 하사마을)에서 아버지 송치만(宋致萬)과 어머니 성주 이씨 사이의 아들로 태어났다.# 이후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의 문하에서 한문을 수학하였다.

1901년 6월 21일 통신사(通信司) 전화과주사(電話課主事)에 임명되어 판임관(判任官) 8등(八等)에 올랐으나#, 다음날 22일 사직하였다.# 1902년에는 향약장(鄕約長)이 되었다. 1903년 6월 20일 중추원의관에 임명되었으나#, 이틀 후인 22일 사직하였다.#

이후 중추원의관에 재차 임명되었으나 1905년 10월 일제의 침략기세가 더욱 강화되자 이에 항의하여 사직하였다.

1910년 8월 15일, 경술국치의 소식을 듣자 「우리의 옛 강토를 내놓아라」는 요지의 혈서를 일제 통감부에 보내고 절명시 5수를 남긴 다음 독약을 마시고 자결하려다가 집안 사람들에게 발견되어 구출되었다. 이에 그 날밤 마을 앞 사평천(沙平川)에 투신하여 순절하였다.#

1977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4년 3월 9일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2묘역에 이장했다.


[1] #[2] 여산 송씨 집성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