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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계월

파일:송계월.jpg
<colbgcolor=#0047a0><colcolor=#fff> 출생 1912년 12월 10일[1]
함경남도 북청
사망 1933년 5월 31일 (향년 20세)
함경남도 북청
서훈 건국포장

1. 개요2. 생애

1. 개요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여성운동가, 기자.

2. 생애

1928년 2월부터 경성여자상업학교 학생들은 민족적 교사의 유임 등을 요구하며 동맹휴학을 벌였다. 송계월은 당시 2학년에 재학 중이었다. 그는 동맹휴학에 참여했으며, 5월 동맹휴학 반대 학생 구타한 일에 연루되어 체포되었다.

1929년 11월 3일 전라남도 광주에서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났으며, 이를 지지하는 동조시위가 전국으로 확산되어 갔다. 1930년 1월 서울에서도 20여 개교에 달하는 각급 여학교와 남학교의 연합시위운동이 추진되었다.

당초 여학생과 남학생이 각각 시위운동을 계획했으나, 그가 1월 13일 휘문고등보통학교 학생들과의 협의를 거쳐 남녀학생들의 연합시위운동을 이끌어냈다. 14일 각 여학교의 대표 학생들에게 연락을 취하였으며, 자신의 집에서 남녀 각 학교 학생 대표들의 모임을 갖고 시위운동의 방안을 협의했다. 15일 오전 9시 30분 각 학교가 일제히 만세시위를 시작하여 종로 네거리에 집결한 후 연합시위운동을 벌이기로 약정했다.

경성여자상업학교에서도 1월 15일 약속된 시간에 학생들이 일제히 만세를 부르며 교정에 집결하려 했으나 교사와 경찰의 저지로 실패하고 말았다. 1월 16일 다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학생들은 만세를 부르며 교문 밖으로 진출을 시도했으나 경찰에 의해 저지되자 유리창을 파괴하며 격렬하게 저항했다.

그는 이와 같은 활동을 주도하다가 체포되었다. 3월 22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3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1931년 6월에는 개벽사의 기자로 재직하던 중 모교의 동맹휴학을 선동하였다는 혐의로 일시 경찰서에 구류되기도 했다.


[1] 위키백과에서는 1910년생으로 표기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