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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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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000><colcolor=#fff> 서브라임
Sublime
파일:Sublime.webp
국적
[[미국|]][[틀:국기|]][[틀:국기|]]
결성
1988년
미국 캘리포니아 롱비치
링크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1. 개요2. 활동3. 해체4. Sublime with Rome5. 뮤직 비디오6. Lou Dog7. 디스코 그래피

[clearfix]

1. 개요

미국의 3인조 스카펑크 밴드. 1988년 미국 캘리포니아 롱비치에서 만들어진 록밴드이다. 멤버는 브래들리 노웰(기타, 보컬), 버드 가(드럼), 에릭 윌슨(베이스) 이다.

1990년대 흥겨운 레게 리듬을 가미한 스카펑크 씬의 중심에 있었던 밴드로, 정규 4집(이자 메이저 데뷔 앨범) 발매 2달 전에 프론트맨이자 보컬 브래들리 노웰의 사망으로 인해 메이저 데뷔를 하지 못하고 해체했으나 앨범은 불티나게 팔려 오늘날까지 1000만 장의 판매고를 기록했다. 대표곡은 Santeria, What I Got 등등이 있다.

2. 활동

1988년 캘리포니아 롱비치에서 소꿉친구이던 버드 가와 에릭 윌슨이 고등학교 시절 만든 펑크록 밴드이 전신이 된다. 이 당시 멤버는 3명이나 마이클 하포트가 일원이었고, 곧 브래드가 합류하면서 쫓겨난(?) 마이클은 추후 서브라임의 매니저가 된다. 브래드의 영입은 이 허접하게 펑크 록만 줄창 빨던 동네 밴드에게 있어서 큰 전환점이 되었는데, 이 당시 브래들리가 멤버들에게 레게스카를 소개 해주면서 흥겨운 스카 리듬을 펑크와 결합, 독자적인 사운드를 갖추게 되었다.
초창기에는 남부 캘리포니아의 작은 클럽과 파티를 집중적으로 돌아다니며 공연을 했고, 돈을 모아서 '스컹크 레코드'라는 작은 레이블도 차린다.

1991년 드디어 첫 앨범인 Jah Won't Pay the Bills를 내놓았는데 이 앨범의 레코딩에 관련하여 작은 일화가 있다. 조그만한 클럽과 파티에서 공연만 하느라 녹음실 차릴 돈도 없던 서브라임에게 녹음할 공간을 마련해 준 사람이 바로 서브라임의 전 멤버, 마이클 하포트인 것. 이 무렵 마이클은 음대 재학 중이었는데 돈에 쪼달리던 멤버들에게 새벽마다 학교 시설을 쓰게 해줌으로써 서브라임의 첫 앨범은 성공적으로 만들어 질수가 있었다. 이듬해에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진 두번째 앨범 40oz to Freedom에 대한 반응은 괜찮았고, 로스앤젤레스에서 가장 큰 록 음악 라디오 채널인 KROQ에서 2집에 수록된 'Date Rape'를 틀어 준 이후에는 캘리포니아 일대에서 나름대로 큰 팬덤을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1994년 새로운 레코드사와 계약한 서브라임은 여러가지 실험적인 음악을 수록한 3집 Robbin' the Hood를 내놓았는데, 상업적으로는 실패. 앨범의 흥행과는 별개로 94~95년 사이에 집중적인 투어 공연을 뛰어 미국 서부 인디 씬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모으게 되었다. 95년과 96년에 캘리포니아에서 개최된 록 콘서트에서 연달아 헤드라이너로 나온 것이 당시 인디씬에서 이들의 위상이 어땠는지를 보여주는 증거.

1996년 메이저 레이블 MCA와 계약한 서브라임은 데뷔 8년만에 메인스트림 진출을 위한 준비를 하게 된다. 투어 공연을 병행하면서 2월부터 5월까지 앨범을 제작했고 계획대로라면 여름 쯤에 메이저 데뷔를 했어야 했는데...

3. 해체

헤로인 중독에 시달리던 브래들리가 5월 25일 투어 도중 헤로인 과용으로 사망하고야 만다. 메이저 진입을 겨우 몇 달 앞두고 있던 시점에서 브래드의 사망은 대단히 치명적이었으니, 뭐 할것도 없이 밴드는 해체.

어찌 되었건 간에 동년 7월 30일, 그들의 정규 4집이자 첫 메이저 레코드 앨범인 Sublime이 발표되었다.[1] 상기된 대표곡들을 포함, 그들 특유의 스카펑크 사운드가 가미된 4집은 원래 있던 팬층에서부터 시작, 메인스트림에 쭉쭉 퍼져나가며 완전히 성공했고 빌보드 200 차트에서 13위에 등극하는 쾌거도 이룬다. 이 앨범은 스카 펑크 씬에서 상징적인 앨범으로 남았는데 2011년 롤링 스톤지에서 90년대 최고의 앨범 중 25위에 뽑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이 밴드가 여기까지 오게 한 원동력인, 브래드의 사후에 쌓인 업적이기에 남은 멤버들과 크루들은 기쁘면서도 무척이나 허탈했음을 인터뷰로 통해 표현했다

4. Sublime with Rome

팬들 사이에서 매우 극렬하게 평이 갈리는 밴드

해체 후 오랜 시간이 흐른 2009년, 남은 두 멤버가 우연히 서브라임 곡들을 커버하던 롬 라미레즈라는 청년을 만나서 다시 재결합 하게 되었고 현재까지 라이브 투어를 다니고 있다. 그러나 재결성된 밴드는 팬들 사이에서 호불호가 매우 갈리는데, 롬의 사운드가 브래드와 비슷하지 않고 어설프다는게 그 이유. 그리고 땀을 너무 많이 흘린다.
한편으론 이른 사망으로 4집 수록곡 라이브 영상이 전무한 브래드에 비해서 새 곡들의 라이브 영상이 많이 존재하며 롬도 나름대로 브래드를 모방한 사운드를 가지고 있고 나머지 멤버들은 원년멤버 그대로 서브라임의 역사를 계승해 나가고 있기 때문에, 상기된 대표곡들의 라이브 버전을 듣고 싶은 팬들은 그나마 이거라도 들으며 위안삼는다고.(...)
여담으로 이들이 Sublime이라는 밴드명을 그대로 쓰지 못한 이유는 브래드의 가족이 이에 대해 소송을 걸었기 때문. 그래서 이들 3인방의 밴드명은 Sublime with Rome으로 원조와 구별한다.

5. 뮤직 비디오


Date Rape

4집의 대표곡 Santeria, What I Got의 뮤직비디오는 모두 브래드 사후에 찍은 것들이다.


Santeria의 M/V. 연인을 꼬신 바람둥이에게 복수하겠다는 노래 가사[2] 를 토대로 만든 뮤직비디오에 남은 멤버들과 루 독, 그리고 합성된 브래드의 영상이 출연했다.


What I Got, 서브라임의 성공과 달마시안 부심(...)을 가사에 담아낸 노래로, 살아생전 브래드의 모습을 넣어 일종의 헌정 영상으로 만들었다.

6. Lou Dog

1990년 브래드는 동네 할아버지로 부터 학대당하던 달마시안 한 마리를 분양 받았는데 이 개의 이름을 '루 독(Lou Dog)'이라고 지어 밴드 마스코트로 삼았다. 브래드가 이 달마시안을 엄청나게 아꼈는데, 얼마나 아꼈으면 밴드 뮤직비디오 뿐만 아니라 무대 위에다가 풀어서 공연 중(...) 싸돌아 다니기도 했으며 서브라임의 많은 곡들에서 루 독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아예 루 독을 위한 곡도 있을 정도니..


라이브 무대 위에서 자고 있는 루 독(...).

브래드 사후에 루 독은 매니저이었던 마이클의 손에 넘어가 키워졌으며 2001년에 브래드의 곁으로 갔다.

7. 디스코 그래피

* Jah Won't Pay the Bills
* 40oz to Freedom
* Robbin' the Hood
* Sublime




[1] 이때 브래드의 죽음을 아직 모르고 있던 서브라임 팬들도 많았다고..[2] 최근의 해석에 따르면 당시 갓 태어난 브래드의 아들에게 자신의 헤로인 중독을 극복해 내겠다는 다짐을 하는 노래라고 한다. 결론적으로 중독을 극복하지 못했기에 더 슬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