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8-31 19:05:54

샤를로망 1세


<colbgcolor=#002395><colcolor=#fff>
샤를로망 1세
Carloman I
이름 샤를로망(Carloman)
출생 750년 / 751년 6월 28일경
사망 771년 12월 24일
재위기간 768년 9월 24일–771년 12월 4일

1. 개요2. 생애3. 의문의 죽음과 그 후

1. 개요

카롤링거 왕조프랑크 왕으로, 피핀 3세의 차남이자 카롤루스 대제의 친동생이었다. 형 카롤루스 대제와 함께 프랑크 왕국의 공동 통치자로 즉위해 3년간 나라를 다스렸다. 본래 형과 사이가 좋지 않았으며, 갈등이 고조되던 중 젊은 나이에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 형 카롤루스 대제에게 단독 통치의 길을 열어주는 결과를 낳았다.

2. 생애

샤를로망 1세의 정확한 출생 연도는 불분명하지만, 751년경으로 추정한다. 그는 아버지 피핀 3세가 교황 스테파노 2세로부터 프랑크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던 754년에 형 카롤루스 대제와 함께 기름 부음을 받았다. 768년 아버지 피핀 3세가 사망하자, 형과 함께 공동으로 왕위에 올랐다. 당시 프랑크 왕국의 관습에 따라 영토는 분할되었는데, 샤를로망은 주로 프랑스 남부와 중부 지역(부르군트, 프로방스, 알자스, 슈바벤 등)을 통치했다. 형 카롤루스 대제는 프랑크 왕국의 북부와 서부 지역을 차지했다.

공동 통치 기간 동안 두 형제는 여러 차례 충돌을 겪었다. 특히 아키텐 공국의 반란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갈등이 폭발했다. 769년 아키텐 공 후날트가 일으킨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카롤루스 대제가 군사를 이끌고 나섰으나, 샤를로망은 지원 약속을 지키지 않고 군대를 철수시켰다. 이 사건으로 형제 간의 관계는 극도로 악화되었으며, 서로를 불신하게 되었다. 이러한 불화는 외교 정책에도 영향을 미쳤다. 샤를로망은 랑고바르드 왕국의 왕 데시데리우스의 딸 게르베르가와 결혼했는데, 이는 랑고바르드와 동맹을 맺어 형 카롤루스 대제를 견제하려는 의도로 해석되었다. 반면 카롤루스 대제는 랑고바르드 왕의 딸과 결혼했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이혼했다. 이러한 관계는 랑고바르드 왕국을 두고 벌어진 긴장 관계를 더욱 심화시켰다.

3. 의문의 죽음과 그 후

771년 12월 4일, 샤를로망 1세는 갑작스럽게 사망했다. 그의 죽음은 당시에도 의문을 남겼으며, 정확한 사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그의 나이 고작 20세였다. 일부에서는 지병에 의한 자연사라고 추측하지만, 독살설 등 음모론도 꾸준히 제기되었다. 그의 사후, 아내 게르베르가는 어린 두 아들을 데리고 랑고바르드 왕국으로 망명했다. 그러나 카롤루스 대제는 망명한 조카들의 영토를 즉시 병합하고 프랑크 왕국의 유일한 통치자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