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라의 제4대 황제 고종 이현이 썼던 첫 번째 연호이다. 하지만 당시 중종에게는 실권이 없었고 측천무후가 황태후의 신분으로 섭정하고 국정을 좌우하고 있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측천무후의 연호였다. 중종은 위황후의 부탁으로 장인인 위현정을 시중에 내정하려고 했으나 대신들의 반발과 측천무후의 개입으로 인해 불발되었고 결국 제위에서 물러나 여릉왕으로 강등되었다. 이 때문에 사성 연호는 사용기간이 1개월하고 4일 밖에 되지 않으며, 이후 문명(文明)으로 연호를 고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