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Vitória 비토리아 | ||
| 지역 | 이스피리투산투 주 | |
| 면적 | 96.5 km² | |
| 인구 | 369,534 명 | |
| 도시권 인구 | 1,857,616 명 | |
| 인구밀도 | 3,763.3명/km² | |
| HDI | 0.845 | |
| 시간대 | UTC-3 (BRT) | |
1. 개요
이스피리투산투 주의 주도이다. 하지만 가장 인구가 많은 도시는 아니다.[1] 비토리아는 비토리아만으로 둘러싸인 강변 섬이다. 본섬인 비토리아 외에도 34개의 섬과 본토 일부가 자치구에 속하였다. 원래는 50개의 섬이 있었는데, 그중 많은 섬이 매립지를 통해 가장 큰 섬과 연결되었다.2. 역사
전직 군인인 바스쿠 페르난지스 쿠티뉴는 동 주앙 3세의 명으로 이스피리투산투 카피타니아의 도나타리우를 세웠다. 그러나 원주민, 프랑스, 네덜란드의 끊임없는 공격을 받아 방어가 유리한 거점으로 정착촌을 옮기기로 결정하였다. 그래서 1535년 5월 23일, 연안의 섬에 새로운 마을을 세웠는데 이것이 현재의 비토리아이다. 이는 바스코 페르난지스 쿠티뉴가 이끈 고이타카스 아메리카 원주민과의 대승을 기리기 위해 나중에 비토리아로 개칭하였다.초기 개척 과정에서 투피-과라니계 원주민과 갈등 혹은 동맹이 반복되었다. 예수회의 선교활동이 시작되어 원주민 집단 통합 및 농업 이주 촉진하였다. 이로 인해 원주민, 아프리카 노예, 유럽 이민자 간 복합적 혼혈 사회 형성되었다. 1823년 2월 24일, 비토리아는 도시가 되었지만, 고립된 환경으로 인해 발전이 어려웠다. 이로 인해 주정부는 1894년부터 도시 하부에 많은 매립지를 조성하였다. 도시가 확장되자 커피 플랜테이션 확산과 이민자 유입되었고 철도와 항만 인프라는 확장되었다. 1927년에는 섬과 본토를 연결하는 다리가 건설되었고 1941년에는 첫 번째 부두가 건설되었다. 1949년에는 더 많은 매립지가 만들어지고 넓은 도로가 건설되었다. 1970년에는 비토리아 항이 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항구 중 하나가 되었다.
3. 기후
비토리아의 기후는 열대기후로 연평균 기온이 23°C이며, 특히 10월부터 1월까지 비가 내린다. 겨울에는 기온 변화가 매우 심하여 가뭄 시에는 30°C지 오르지만, 한랭 전선이 지나가고 해수 온도가 비정상적으로 낮아지면 12°C까지 치솟는다. 비토리아는 대기 오염과 극심한 건물 밀집, 그리고 섬 곳곳에 솟아 있는 여러 산으로 인해 에스피리투산투 주에서 가장 더운 도시 중 하나이다.4. 경제
비토리아의 경제는 항만 활동, 활발한 무역, 산업, 그리고 관광 서비스 제공에 기반을 두고 있다. 가장 중요한 산업은 세계적인 철강 회사 아르셀로미탈 투바랑(구 CST)과 광산 회사 발레(구 CVRD)이다.5. 관광
- 카픽사바 흑인 박물관 (Museu Capixaba do Negro) : 1993년 5월 13일 브라질 흑인의 역사와 문화를 널리 알리기 위해 지은 박물관으로 강당, 도서관, 이벤트 공간, 전시 공간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 카를루스 고메스 극장 (Theatro Carlos Gomes) : 1927년 1월 5일 개관한 극장으로 이탈리아 건축가 안드레 카를로니가 밀라노의 스칼라 극장에 영감을 받아 지었다.
- 이에만자 부두 (Píer de Iemanjá) : 서아프리카 요루바 신화의 해양 여신 예모자(Yemọja)의 브라질 버전인 이에만자의 동상이 있는 부두로 이에만자 동상은 철근 콘크리트로 제작되었으며 1988년 2월 2일에 제막되었다.
- 안치에타 궁전 (Palácio Anchieta) : 1551년 만들어진 에스피리투산투 주 정부의 소재지로 브라질에서 가장 오래된 관공서이다. 원래는 예수회 교회로 식민지 시대에 종탑 2개와 시계 1개를 갖춘 유일한 예수회 건물이었다.
- 양파바위 공원 (Parque Pedra da Cebola) : 1997년 채석장을 개조하여 만든 공원으로 공원 중앙에 있는 돌이 양파와 매우 비슷해 양파 바위 공원이라고 이름이 붙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