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신라 말의 낭도 우두머리 혹은 승려. 삼국사기에서는 흥륜사의 중으로만 언급되며, 삼국유사에서는 범교사로 등장한다.2. 생애
2.1. 삼국사기
〔응렴은〕 여전히 망설이며 결정을 하지 못하다가 흥륜사(興輪寺)의 스님에게 물었다. 스님이 말하기를, “언니에게 장가들면 세 가지 이로움이 있을 것이고, 동생에게 장가들면 반대로 세 가지 손해가 있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응렴이 곧 왕에게 아뢰기를 “신은 감히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겠으니, 오직 왕의 명령을 따르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왕이 큰딸을 〔그에게〕 시집보냈다.
삼국사기 권 제11 신라본기 헌안왕
응렴이 곧 왕에게 아뢰기를 “신은 감히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겠으니, 오직 왕의 명령을 따르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왕이 큰딸을 〔그에게〕 시집보냈다.
삼국사기 권 제11 신라본기 헌안왕
삼국사기에는 흥륜사의 스님이 즉위하기 이전 경문왕에게 문의왕후와 결혼하도록 말해주는데, 스님의 법명이나 이름이 언급되지는 않았다.
2.2. 삼국유사
낭의 무리 가운데 우두머리인 범교사(範敎師)라는 자가 이 말을 듣고 집에 와서 낭에게 묻기를, “대왕께서 공주를 공의 아내로 주고자 한다는데 사실입니까?”라고 하니 낭이 말하기를 “그렇습니다” 고 대답하였다.
[그가 다시] 묻기를, “어느 공주에게 장가들 생각입니까”라고 하니, 낭이 말하기를, “부모님께서 나에게 명하시기를 둘째 공주가 마땅하다고 했습니다”라고 하였다. 범교사가 말하기를, “낭께서 만약 동생에게 장가간다면 나는 낭의 면전에서 반드시 죽을 것이며, 그 언니에게 장가든다면 반드시 세 가지 좋은 일이 있을 것이니 살피시기 바랍니다” 고 하였다.
낭이 말하기를 “시키는 대로 하겠습니다” 고 하였다. 이윽고 왕이 날을 택하여 낭에게 사람을 보내 말하기를, “두 딸을 공의 의사대로 결정하라” 고 하였다. 사신이 돌아와서 낭의 의사대로 아뢰기를, “맏공주를 받들겠다고 합니다” 고 하였다.
(중략)
그 후 3개월이 지나자 왕은 병이 위독하여 여러 신하들을 불러서 말하기를, “짐은 남손(男孫)이 없으니 죽은 후의 일[窀穸之事]은 마땅히 장녀(長女)의 남편인 응렴이 계승해야 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다음 날 왕이 세상을 떠나니 낭이 유조(遺詔)를 받들어 즉위하였다.
이에 범교사가 왕에게 나아가 아뢰기를, “제가 아뢰었던 세 가지 좋은 일이 지금 모두 분명해졌습니다. 맏공주에게 장가듦으로써 지금 왕위에 오른 것이 그 첫째이옵고, 예전에 흠모하던 둘째공주에게 이제 쉽게 장가를 들 수 있음이 그 둘째이오며, 맏공주에게 장가듦으로써 왕과 부인께서 매우 기뻐하게 됨이 그 셋째입니다”라고 하였다.
왕은 그 말을 고맙게 여겨 대덕(大德) 벼슬을 주고 금 1백 30냥을 내려주었다. 왕이 세상을 떠나니 시호를 경문(景文)이라 했다.
삼국유사 권제2 기이 사십팔 경문대왕
[그가 다시] 묻기를, “어느 공주에게 장가들 생각입니까”라고 하니, 낭이 말하기를, “부모님께서 나에게 명하시기를 둘째 공주가 마땅하다고 했습니다”라고 하였다. 범교사가 말하기를, “낭께서 만약 동생에게 장가간다면 나는 낭의 면전에서 반드시 죽을 것이며, 그 언니에게 장가든다면 반드시 세 가지 좋은 일이 있을 것이니 살피시기 바랍니다” 고 하였다.
낭이 말하기를 “시키는 대로 하겠습니다” 고 하였다. 이윽고 왕이 날을 택하여 낭에게 사람을 보내 말하기를, “두 딸을 공의 의사대로 결정하라” 고 하였다. 사신이 돌아와서 낭의 의사대로 아뢰기를, “맏공주를 받들겠다고 합니다” 고 하였다.
(중략)
그 후 3개월이 지나자 왕은 병이 위독하여 여러 신하들을 불러서 말하기를, “짐은 남손(男孫)이 없으니 죽은 후의 일[窀穸之事]은 마땅히 장녀(長女)의 남편인 응렴이 계승해야 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다음 날 왕이 세상을 떠나니 낭이 유조(遺詔)를 받들어 즉위하였다.
이에 범교사가 왕에게 나아가 아뢰기를, “제가 아뢰었던 세 가지 좋은 일이 지금 모두 분명해졌습니다. 맏공주에게 장가듦으로써 지금 왕위에 오른 것이 그 첫째이옵고, 예전에 흠모하던 둘째공주에게 이제 쉽게 장가를 들 수 있음이 그 둘째이오며, 맏공주에게 장가듦으로써 왕과 부인께서 매우 기뻐하게 됨이 그 셋째입니다”라고 하였다.
왕은 그 말을 고맙게 여겨 대덕(大德) 벼슬을 주고 금 1백 30냥을 내려주었다. 왕이 세상을 떠나니 시호를 경문(景文)이라 했다.
삼국유사 권제2 기이 사십팔 경문대왕
삼국유사에서는 낭도의 우두머리(상수)로 등장한다. 경문왕에게 헌안왕의 맏딸과 결혼하도록 설득하며, 경문왕이 즉위한 이후 대덕 벼슬을 하사받고 금 130냥을 하사받는다.
이때 그가 받은 벼슬인 대덕(大德)이 고려와 조선에서 승려들에게 하사하는 벼슬로 기록되어 있어 승려 출신 낭도였거나, 낭도 우두머리에서 승려로 귀가했을 가능성이 있다.
3. 매체에서의 등장
2000년 드라마 태조 왕건에서는 삼국사기에 등장한 흥륜사의 스님과 삼국유사에 등장한 범교사의 기록을 섞은 인물인 범교 스님이라는 가공인물이 등장한다. 배우는 안대용.[1]작중에서는 본래 화랑으로, 경문왕이 헌안왕의 딸들과 혼인하도록 도와서 그가 왕위에 오르는데 기여한 인물이었다. 영화부인, 차비 김씨가 후궁 소생의 궁예를 시기해 그를 죽이려하자, 김위홍이 이끄는 군사들을 피해 도망가던 궁예의 유모와 궁예를 구해준 후 말 1필을 주어 도망치는 것을 도와준다.
이후 송악에 있는 세달사에 기거하다가[2] 어린 궁예가 찾아오자 그를 불가에 귀의시켰고 궁예에게 선종이라는 법명을 하사했다. 10여년 후, 장성한 궁예가 스스로 미륵을 칭하면서 세달사를 떠나겠다고 하자 그를 다그쳤지만 의지를 굳힌 제자를 말릴 수 없다고 여겨 궁예와 종간을 보내주었다.
894년 궁예가 명주성 공략을 하고 있을 무렵 사망하면서 드라마에서 퇴장한다. 임종 직전 찾아온 도선대사에게 궁예의 운명을 물어보지만, 궁예가 뜻을 이루지 못한다고 간접적으로 알려주자 안타까워한다.
[1] 1948년생으로, 궁예 역의 김영철보다 5세 연상이다. 드라마에서는 노승으로 분장을 해서 휠씬 늙은 모습으로 등장한다.[2] 실제 역사에서는 강원도 영월군에 위치했덩 것으로 보이나, 드라마상에서는 개성설을 채택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강원도 영월군 불우조에 대화산(大華山)에 흥교사가 있다는 기록 외에도 경기 풍덕군 불우조에 의하면 백련산(白蓮山)에 흥교사가 있다고 기록했는데, 드라마에서는 후자를 채택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