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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78년 |
충청남도 | |
사망 | 미상 |
묘소 | |
본관 | |
가족 | |
학력 | |
서훈 | 애족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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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2. 생애
1909년 음력 7~8월 충남 은진군(恩津郡)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1907년 일제에 의해 대한제국 군대가 강제 해산된 이후 1909년까지의 의병 활동은 전 민족적인 무력항쟁이었다. 그러나 1909년 후반기로 접어들면서 일본군의 대대적인 의병 탄압으로 전체적인 의병 활동은 점점 약화되고 있었고 소규모의 의병부대로 활동하는 경우가 많았다.
1909년 음력 7월 25일 의병 2명과 함께 충남 은진군 삼거리(三巨里)에서 객주의 주인과 유숙한 상인에게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같은 해 음력 8월 3일에는 의병 3명과 함께 충남 은진군 구자곡면(九子谷面) 시암산에서 상인들로부터 군수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었다.
1909년 11월 22일 공주지방재판소(公州地方裁判所)에서 이른바 모살(謀殺)ㆍ방화ㆍ강도죄로 징역 7년을 받고 공소했지만 1910년 1월 18일 경성공소원(京城控訴院)에서 기각되었다. 1912년 9월 13일 대사령에 의해 징역 3년으로 감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6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