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7-03 18:42:59

배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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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864년 8월 26일
경상북도 안동
사망 1919년 9월 9일
묘소
본관 흥해 배씨
가족
학력
서훈 애족장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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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2. 생애

1864년 8월 26일 경상북도 안동군(安東郡) 도촌동(島村洞)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흥해(興海)이고, 자는 희안(希顔)이며, 호는 백봉(白峯)이다. 서파(西坡) 유필영(柳必永)에게 한문을 배웠다. 1891년에 과거를 보려고 상경하였다가 기울어 가는 나라의 모습을 목격하고 포기하였다. 1912년 만주 퉁화현(通化縣)으로 이주하였다.

1914년 류허현(柳河縣) 영춘원(永春源)에서 황의영(黃義永)과 한인 청년들의 민족교육을 위하여 영춘학교(永春學校)를 설립하였다. 이듬해 헤이룽장(黑龍江)의 전창구(全廠溝)로 이주하여 한인들의 화수회(花樹會) 조직을 독려하였고, 노인회를 조직하여 청년들을 가르치게 하였다.

1919년 만세운동 이후 한족회(韓族會) 지방연락원으로 활동하는 한편, 망명한 한인들이 만주에 무사히 정착할 수 있도록 거드는 역할을 하였고, 황무지 개척에도 진력하였다. 서간도 지역 한인사회의 청년 교육 사업 지원 활동을 벌이는 등 한인사회의 안정을 위해 노력하던 중, 지병으로 1919년 9월 9일 류허현에서 사망하였다.

당시 서간도 지역 독립운동의 지도자였던 이상룡(李相龍)은 「배영진의 죽음을 곡함(哭裵永進)」이란 글을 지어 애도하였고, 1984년에는 계룡시 금암동(金岩洞)에 ‘배영진 공적비’가 세워졌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