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1-23 22:54:44

배봉수




1. 개요2. 생애, 활동기록3. 사망4. 상훈과 추모

1. 개요

裵鳳秀

일제강점기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2. 생애, 활동기록

1928년 12월 18일에 경상남도 울산군 대현면 여천리 278번지에서 출생하였다. 1942년 동래중학교[현 동래고등학교]에 입학한 뒤 친구인 배광진(裵光珍)과 함께 차병곤(車炳坤)을 알게 되어 전쟁 정세와 정보를 교환하고 학생을 중심으로 한 항일 조직의 결성을 상의하였다. 동지를 규합하던 배봉수는 선배 박지홍(朴智弘)을 알게 되어 박지홍의 골방에서 친구인 오석제(吳錫濟)와 함께 시사와 한글 교육을 받았다. 이 속에서 동지 규합이 이루어져 1944년 5월 1일 부산진 시장 옆에 있던 신정호(辛正浩)의 집에서 비밀 결사인 순국당(殉國黨)을 결성하였다. 배봉수는 순국당에서 선전책을 맡았다.

순국당은 국권 회복을 위한 행동 목표로 고이소 구니아키[小磯國昭] 총독 암살, 일본군 군사 시설 파괴, 일본인 집단 거주지 방화, 은행 습격, 미군 공습 시 산불 놓기 등을 결의하였다. 이들은 순국당이 목표로 삼은 계획들이 불가능해지면서 중국 둥베이[東北]의 독립군에 들어갈 것을 결의하였다. 그러나 1944년 7월 당원들이 순차적으로 중국으로 망명하던 도중에 계획이 발각되어, 1944년 8월 1일 순국당원 전원이 검거되었다. 이때 배봉수도 함께 검거되었다.

배봉수는 1년간 검찰에 계류된 채 부산형무소 구치감에 구류되어 있었다. 구류 기간이 만기된 1945년 8월 1일 부산지방검찰청에서 김수성(金守性)·김진옥·남정기·박태권·전창오·윤창석·아사모토[朝本] 등과 함께 기소 유예 처분을 받았다. 그러나 귀가 조치가 되지 않아 일반 기결수와 같이 부두 작업에 투입되었다가 해방을 맞아 풀려났다. 2005년 2월 1일에 사망하였다.

3. 사망

2005년에 별세하였고, 대전광역시 유성구 갑동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되었다.

4. 상훈과 추모

1993년 대한민국 정부는 그의 공로를 기려 건국포장을 수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