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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98년 8월 4일 |
전라남도 광주 효천 유안 | |
사망 | 미상 |
묘소 | |
본관 | |
가족 | |
학력 | |
서훈 | 대통령표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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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2. 생애
1919년 3월 1일 김복현(金福鉉)은 서울에서 일어난 3.1운동을 봤다. 그는 3월 6일 전라남도 광주로 왔다. 동료 김강(金剛) 등과 광주에서 ‘독립만세운동’을 계획했다. 이들은 3월 10일을 기해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만세를 부르기로 뜻을 모았다.김복현 등은 3월 10일 광주교(光州橋)에 갔다. 여기에 모인 수많은 주민과 학생들에게 준비한 「독립선언서」 등을 나누어 주며 ‘대한독립’을 외쳤다.
배광석도 이날 시위에 참여하여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숭일학교(崇一學校) 등에 재학중인 학생들과 함께 광주에 소재한 일본 관공서로 갔다. 일본 경찰은 무력진압에 나섰다. 배광석은 이 과정에서 붙잡혔다. 4월 30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징역 4월,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정부는 2019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