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하우트 공방전 | |||||
작전명 | Operation Hell Storm(지옥 폭풍 작전) | ||||
년도 | M41.765 | ||||
장소 | 발하우트, 세그멘툼 파시피쿠스 | ||||
제국 | 카오스 | ||||
교전주체 | 임페리얼 가드 임페리얼 네이비 스페이스 마린 아뎁투스 티타니쿠스 | 카오스 군세 | |||
지휘관 | 슬레이도† 사이본 마카로스 베이저 필레사 카이터 스칼리아 블랙우드 사울톤 올리판트 크리스톨 비검[1] | 나지바르† 쿨 콜레쉬† 큘 숄른 스카라 헤리터 아스포델 | |||
병력 규모 | 알려지지 않음 | 알려지지 않음 | |||
피해 규모 | 다수 | 다수 | |||
결과 | 성전군의 승리 | ||||
기타 | 사밧 성전의 전환점 |
Battle of Balhaut
1. 개요
워해머 40,000의 사건 중 하나로, 사밧 성전이 선포된 지 10년이 되는 해인 M41.765에 발생한, 행성 발하우트(Balhaut)를 해방시키기 위해 벌어졌던 일련의 전투. Operation Hell Storm으로도 불린다. 사실상 사밧 성전 중에 벌어진 전투를 통틀어 손꼽힐 정도로 거대한 규모를 자랑했던 전투로, 성전군이 단일 전장에서 이 정도 규모의 함대 및 지상군 제대를 운용하여 작전을 수행한 사례는 워마스터 마카로스가 직접 지휘한 몰론드 공성전에서도 찾아볼 수 있겠으나, 전장의 규모 자체는 발하우트 공방전이 더욱 거대했다. 전투의 결과, 성전군은 발하우트를 탈환하는 동시에 성계 내부로 더욱 깊숙히 진격할 발판을 마련했다.원래 성전군 측은 Operation Hell Storm이라는 이름으로 이 전투를 수행했지만, Battle of Balhaut 등의 명칭으로도 자주 불리는 사건이기에 본 문서에서는 발하우트 공방전이라 표기한다.
2. 전략적 배경
2.1. 764년까지의 정세
41번째 천년기, 755년의 266일에 시작된 성전은 선포된 지 어언 10년에 가까워오고 있었다. 그간의 상황을 돌이켜 보면 사밧 성전의 양상은 성전군이 카오스 군세를 발하우트를 중심으로 몰아넣는 양상을 띄고 있었다. 워마스터 슬레이도는 발하우트에 적을 몰아넣은 뒤, 대규모 회전을 통해 섬멸할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발하우트에 이르기까지 성전군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만 했다. 나름 순조로웠던 오퍼레이션 레드레이크(Operation Redrake) 이후, 760년이 지나기 전에 완료될 줄 알았던 오퍼레이션 뉴파운드 트레일링(Operation Newfound Trailing)은 성전군이 맞이한 악전고투와 더불어, 성전군의 병참기지 역할을 할 행성들이 전염병, 혹은 카오스 군세에 연이어 무너지면서 도무지 완료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었다. 게다가 슬레이도가 발하우트 공략의 발판이 드디어 마련되었다고 믿었던 760년, 아르콘 나지바르가 직접 이끄는 카오스 군세가 대대적인 반격을 시작함으로써 코시아미누스(Cociaminus), 스베렌(Sverren) 등의 행성이 다시금 격전지로 변함에 따라 또다시 슬레이도의 예상은 빗나가고 말았다.이러한 일련의 전투 속에서 슬레이도의 인내심은 점점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애초에 성전의 선포 자체를 반대했던 세그멘툼 파시피쿠스의 고위 장교들이 예측했듯이, 사밧 성전은 쉽게 끝날 전역이 아니었다. 물론 슬레이도도 바보가 아닌 만큼, 이를 모르지는 않았다. 분명 슬레이도는 사밧 성전이 생각보단 지지부진할 것이라고 예측하고는 있었다. 그러나 제국 측이 맞이한 상황은 슬레이도의 상상 이상이었다. 성전이 처음 선포될 당시, 슬레이도는 성전군이 발하우트를 해방시키는 시점을 756년으로 예상했었다. 문제는 그 756년은 슬레이도가 성전의 진행 동안에 예상되는 지지부진함을 나름 감안했던 시기였다는 것이었다. 성전이 진행되면서 적의 저항이 거세지고 성전군 측의 진격속도가 차츰 느려짐에 따라, 슬레이도가 예상하는 발하우트의 해방 시기는 점점 뒤로 밀려나게 되었다. 아무튼 이 두 번째 단계가 시간을 너무도 많이 잡아먹고 있으며, 그만큼 성전이 지지부진하다는 것에는 어느 누구라도 동의할 수 있었다. 당연히 성전군 고위 사령부에 포진하고 있는 고급 지휘관들은 일단 군을 재정비하고 발하우트로 향한다는 전략을 재고해야 한다는 의견을 슬레이도에게 강력하게 타진했다. 특히 여기에는 로드 밀리턴트 사이본(Cybon)이 열심이었는데, 그는 발하우트를 치기보다는 성전군의 진격 초점을 바꾸어 좀 더 방어가 허술한 행성, 산업행성 등과 같은 전략적 목표를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이본 뿐 아니라, 로드 제너럴 커렐(Curell)같은 지휘관들은 아예 진격을 멈추고 성전군 및 성전군이 점령한 행성들을 재정비하면서 성전의 진행 여부 자체를 재검토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지휘관들, 하물며 헥터 드레비어같은 인물조차도 각자 성전에 대한 나름의 계획안을 가지고는 있었지만, 아무리 좋게 쳐줘도 여기에 장군들 간의 전공 욕심, 혹은 기타 사심들이 들어가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었다.
어찌됐든 슬레이도는 발하우트를 포기할 수 없었다. 사이본을 포함한 여러 지휘관들은 발하우트의 발짜만 나와도 거부하는 지휘관들이 수두룩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하우트는 중요한 행성이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었다. 35번째 천년기, 성 사밧이 성전을 이끌 당시에도 격전지로 유명했던 발하우트는 발하우트를 지나 존재하는 행성들을 오가는 모든 선박들의 통행을 관리하는 행성이었다. 당연히 이 곳을 지나쳐서 진격한다면 이 곳에 적잖은 수의 병력이 여기서 발이 묶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나지바르 역시 발하우트를 자신의 중요한 권력 기반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여기서 카오스 군세를 몰아내고 나지바르를 축출한다면 아르콘의 권위에 커다란 흠이 갈 것은 분명했다. 따라서 슬레이도에게 있어서 발하우트의 함락은 성전에 있어 단순히 요충지 하나를 빼앗아온다는 군사적 성과 뿐 아니라 정치적 의미 역시 달성하고, 적에게는 커다란 심리적 충격을 안겨줄 것이 분명했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발하우트는 절대로 그냥 지나쳐도 될만한 사소한 수준의 행성은 결코 아니었다.
아무튼 760년이 지나자, 성전군은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발하우트를 공략할 발판을 마련하게 되었다. 761년,아르콘 나지바르와 마지스터 숄른 스카라가 직접 참전한 전장인 스베렌의 전황은 제너럴 불레딘(Bulledin) 휘하 임페리얼 가드의 분투 덕분에 호전되기 시작했고, 이후 16개월 간의 전투 끝에 성전군을 압박할 힘이 모두 소진된 카오스 군세는 스베렌에서 물러났다. 또한 762년, 역시 주요 격전지 중 하나였던 코시아미누스가 마침내 성전군의 손에 떨어졌다. 아르콘과 숄른 스카라는 764년까지 스베렌에서 천천히 물러났다. 그리고 마침내 스베렌과 코시아미누스에서 승리를 거둔 성전군은 발하우트로 향할 발판을 굳혔다.
2.2. 파비아, 혹은 발하우트
스베렌에서 물러난 나지바르는 765년에 이르기까지 휘하 마지스터들의 군세를 끌어모으는 데 열심이었다. 공교롭게도 카오스 군세의 총지휘관인 그 역시 슬레이도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바로 성전군을 끌어들여 단 한 번의 대규모 회전에서 승리를 거두어 성전군의 교전 역량을 꺾어버려 패퇴시킨다는 계획이었다. 이는 카오스 군세를 천천히 옭아매어 발하우트에서 대규모 회전을 치른다는 슬레이도와의 생각과도 일견 유사한 면이 있었다. 다만, 나지바르가 생각하고 있는 전장은 발하우트가 아닌 파비아(Fabia)였다. 그는 성전군을 파비아로 끌어들여 대규모 회전을 치를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파비아에는 카오스 군세가 득실대고 있었고, 파비아 주변에는 상당한 함정 역시 깔려 있었다.슬레이도는 이러한 나지바르의 생각을 완전히 읽고 있었다. 그는 성전군 내부에 있을 카오스 측 첩자들을 속이기 위해 파비아 공략 등의 내용이 담긴 거짓 작전 문서를 흘리거나 아예 파비아 성계에 대한 거짓 공격 명령을 내리는 등의 제스처를 취했다. 슬레이도의 제스처에 완전히 속아넘어간 나지바르는 파비아에서 일대 결전이 벌어질 것이라 확신했다. 765년, 다가올 회전을 대비해 수많은 카오스 군세가 파비아에 주둔했다. 나지바르는 잠시 발하우트에 들르는 동시에, 파비아에 주둔했던 군세 일부를 발하우트로 불러들여 재정비와 보급을 행하여 파비아에서 벌어질 회전에 대비하려 했다. 당연히 발하우트는 성전군의 공격에 제대로 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그리고 이 때를 노려 성전군은 발하우트를 기습해 나지바르의 뒤통수를 쳤다.
그리고, 드디어 슬레이도는 발하우트에 당도했다.
3. 전투 경과
3.1. 작전 개요
슬레이도는 자신의 발하우트 공략 작전을 오퍼레이션 헬 스톰(Operation Hell Storm)이라 명명했다. 이 계획안은 5가지 뼈대를 토대로 했고, 슬레이도는 이러한 기본 원칙 아래 발하우트를 공략할 참이었다.1. 적 함대의 공격을 통해 궤도 제해권을 장악함과 동시에 적 함대에 가능한 큰 타격을 입힌다.
2. 주요 교전 지역에서의 작전은 반드시 궤도 포격을 수반한다.
3. 행성에 상륙하는 지상군 1파 공격 부대를 최대한 빠르고 안전하게 상륙시킨다.
4. 첫 공격 단계는 지상군 1파 공격 부대가 각자의 목표물을 확실히 장악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5. 지상군 2파 공격 부대는 전황의 타개가 가능한 경우에만 파견하며, 증원이 필요한 지역에 최대한 빠르고 안전하게 상륙시킨다.
이러한 원칙에 따라, 신속하게 지상군을 상륙시킨 후 지상군은 각자의 맡은 목표를 함락시키는 것을 목표로 했다.
(발하우트의 지도. 주요 전장이 표기되어 있다)
발하우트에 상륙할 지상군의 공략 지역 및 해당 지역의 지휘관은 다음과 같다.
전장 | 지휘관 |
올리가키 (The Oligarchy) | 워마스터 슬레이도 |
서부 평원 (Western Plains) | 로드 밀리턴트 사이본 |
발로폴리스(Balopolis) | 제너럴 커렐(Curell) |
발 프라임(Bal Prime) | 마샬 카이터(Kyter) |
보루나 하이브(Boruna Hive) | 제너럴 스칼리아(Scalia) |
재베스 시티(Zaebes City) | 마샬 블랙우드(Blackwood) |
가터리아(Gatteria) | 제너럴 사울톤(Saulton) |
타크 군도(Tark Islands) | 제너럴 올리판트(Oliphant) |
행성 남부 지역 | 마샬 베이저(Bazer), 마샬 필레사(Fylesa) |
전투에서 슬레이도는 요새화가 탄탄하게 이루어져 있는 유서깊은 도시인 올리가키(The Oligarchy)를 직접 공략할 참이었다. 올리가키는 발하우트의 하이 팰리스(High Palace)가 위치한 곳이기도 했다. 서부 평원을 맡게 될 지휘관 선정에 있어, 그는 기갑 운용에 있어 일가견이 있던 사이본에게 지휘를 맡겼다. 발하우트에 상륙할 지상군 규모 면에서는 사이본 휘하의 지상군이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고 있었다. 슬레이도 휘하의 군세는 그 다음 정도의 규모를 가지고 있었다. 슬레이도는 사이본을 자신에게 사사건건 반대하는 눈엣가시로 여겼지만, 그의 지휘능력만큼은 신뢰하고 있었고, 최소한 그는 중요한 작전을 앞두고서는 사적인 감정은 제껴둘 줄 아는 지휘관이었다. 반면 역시나 눈엣가시나 다름없던 헥터 드레비어는 발하우트의 주요 전장에서 그냥 쫓아내버렸다.[2] 사적인 감정은 제쳐두고서라도, 슬레이도는 헥터 드레비어 역시 사이본처럼 원체 싫어하기는 했지만, 어느 정도 능력이 있었던 사이본과는 달리 드레비어를 배경빨로 올라온 무능한 쓰레기 정도로 취급했고, 전략적이든 전술적이든 그가 가진 역량 역시 쓰레기 정도로 취급을 했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었다.
3.2. 성간 함대전
전투는 성전군 함대의 공격으로 시작되었는데, 성전군 함대는 총 4파로 조직되어 발하우트를 공격했다.1파 공격대는 임페리얼 네이비의 크리스톨 제독의 지휘 아래에 있었다. 고속 전투함을 중심으로 편성된 이 1파 공격대는 발하우트 공략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16시간 전에 성계에 미리 도착해 있었다. 이들은 항성에서 멀리 떨어진 지점에서 워프 항행을 중지했고, 곧 물질계에 모습을 드러내 방사선 방출 장치를 작동시켜 모습을 숨겼다. 1파 공격대를 뒤따르는 2파 공격대는 주로 대량의 병력을 실은 궤도 강습함, 각종 물자를 실은 수송함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들은 1파 공격대가 도착한 지 약 5시간 후에 발하우트 항성계 바깥에 나타났고, 곧 성운 속에 숨어 대기했다.
3파 공격대는 주력함급 함선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들은 발하우트 항성계 안으로 바로 워프를 타고 들어와 즉시 공격을 개시하며 후미에서 따라오는 함선들을 공격 지점으로 이끌었다. 공격 신호가 떨어지자 1파 공격대는 항성 뒤에서 바로 나타나 발하우트의 시간상 낮인 지역에 가장 먼저 공격을 개시했다. 이들은 행성의 궤도 항구시설을 휩쓸었고, 1파 공격대를 따라 2파 공격대가 뒤따라 들어와 전투함들 뒤에서 대기하며 행성 표면을 향해 강습선을 발진시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4파 공격대는 3파 공격대에 뒤따라 나타났는데, 이들은 주로 증원 병력을 싣고 있었다.
이렇게 성전군의 공격이 시작되자 발하우트에 위치한 궤도 방어시설도 대응 사격을 개시했다. 하지만 교전이 시작된 후 6시간 동안 아르콘 함대 전력의 52%가 전투불능이 되어버렸다. 물론 카오스 함대도 가만있지는 않아서, 곧 반격을 개시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아르콘 함대는 12%의 전력을 또 잃고 말았다. 21시간이 경과한 시점에서 발하우트 궤도의 제해권은 성전군 함대 측으로 넘어왔다. 제해권을 확보한 성전군 함대는 발하우트의 지면에 닥치는 대로 포격을 때리기 시작했다. 33시간이 지나자 수송함들이 행성 표면에 강습선을 발진시켰고, 드디어 지상군이 발하우트에 상륙하기 시작했다.
3.3. 가터리아, 타크 군도
가터리아와 타크 군도는 어느 정도 유사한 점이 있었다. 바로 정제 시설과 같은 전략적 목표가 존재했다는 점이다.가터리아의 공략을 맡은 지휘관은 사울톤이었다. 슬레이도는 사울톤에게 가터리아의 정제시설을 확보하고 사수할 것을 명했다. 사울톤 휘하 지상군은 공격 개시 후 64시간이 지났을 무렵 가터리아를 거의 함락시켜가고 있었고, 이후 정제시설도 성공적으로 수복했다. 문제는 타크 군도였다.
타크 군도의 지휘를 맡은 지휘관은 올리판트였다. 타크 군도는 자그마한 섬들이 여기저기 분산되어있는 형태의 지세를 띄고 있었는데, 이 곳에는 가터리아와 마찬가지로 발하우트 전역에 전기를 공급하는 발전 시설과 가스 광구 및 정제시설이 존재했다. 특히 타크 군도에 위치한 대규모의 가스 광구 및 정제시설은 이 곳에 투입된 지상군의 최우선 목표이기도 했다. 그러나 지세가 지세인 만큼, 여러 곳에 분산된 자그마한 섬에 포진한 카오스 군세를 하나하나 걷어내는 데 있어 상당한 인명과 물자가 소모되리라는 예상은 당연하다면 당연한 것이었고, 물론 이는 현실로 이루어졌다. 타크 군도에서는 말 그대로 피바다라 불릴 만한 무지막지한 소모전이 벌어졌다. 타크 군도에 위치한 성전군이 목표인 시설들은 거진 다 황폐화되었다. 당연히 성전군이 목표로 한 시설들은 멀쩡한 상태로 수복될 수가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카오스 군세는 후퇴하면서 타크 군도에 위치한 주요 가스 광구들에 불을 질러 대화재를 일으켰다. 화재는 타크 군도에 위치한 가스 자원을 거의 다 태워버리다시피했고, 발하우트 남반구의 기상에까지 악영향을 줄 정도였다.
아무튼 악전고투 속에서 타크 군도에 대한 성전군의 공세는 19일 동안 지속되었다. 즉, 타크 군도에서는 올리가키가 함락된 후에도 전투가 지속되었다는 이야기이다. 덕분에 타크 군도는 발하우트에서의 성전군 목표 중에서도 가장 뒤늦게 함락된 곳이라는 기록 아닌 기록을 세우게 되었고,[3] 올리판트는 크게 상심한 나머지 사직서까지 제출하고 말았다.
3.4. 어센션 밸리
로드 밀리턴트 사이본의 지휘 아래 서부 평원에서도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발하우트 공방전 개시 7일 째, 제너럴 스칼리아 휘하 지상군은 보루나 하이브를 점령하는 데 성공했고, 이와 동시에 발하우트 궤도 상에서 대기 중이던 증원군이 서부 평원으로 내려와 사이본 휘하에 합류했다. 곧 사이본의 지휘 아래, 성전군 기갑 군단은 카오스 측 방어 시설을 한층 한층 걷어내면서 배후 고지로 진격했고, 공세 9일째 되는 날에 마지스터 큘(Qull)이 지휘하는 카오스 기갑 군단과 마주했다. 이 날 사이본과 큘 사이에서 벌어졌던 전투는 성전군이 발하우트에서 치렀던 전투 중에서도 가장 거대한 규모를 자랑했다. 얼마나 전투가 치열했던지 아뎁투스 메카니쿠스의 타이탄 군단까지 내려와 가세한 가운데 16시간 동안의 대격전이 벌어졌다. 사이본 휘하 지상군은 16시간이 경과하자 서부 평원의 하이 어센션(High Ascension)을 점령하는 데 성공했고, 성전군은 서부 평원을 완벽하게 점령했다.3.5. 발로폴리스
발로폴리스에 상륙한 제너럴 커렐(Curell) 휘하 지상군은 카오스 컬트 군세인 키쓰(Kith)[4]와 마주쳤고, 곧 지옥과도 같은 잔혹한 전투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전투 개시 후 48시간이 지났을 무렵, 커렐은 중상을 입고 후방으로 후송되었다. 이후 지휘를 맡게 된 지휘관들이 연이어 전사했고, 상급 지휘부가 발로폴리스의 지휘를 원활하게 접수하지 못함에 따라 발로폴리스 전장은 급속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지휘권은 당시 커렐의 부관이자, 발로폴리스 전장에서 가장 계급이 높았던 장교인 마카로스에게 넘어왔다. 당시 마카로스는 결코 계급이 높은 지휘관이 아니었지만, 발로폴리스에서의 소식을 들은 슬레이도는 마카로스를 마샬로 진급시켰다. 놀랍게도 마카로스는 붕괴 직전에 놓여 있던 군대를 모두 끌어모아 카오스의 공격을 버텨내는 데 성공했으며, 공세가 시작된 지 8일이 지나서 카오스 군세의 공격은 마침내 수그러들었다. 다음 날 마카로스는 부대를 추슬러 발로폴리스를 이 잡듯 뒤져가며 카오스 군세를 토벌하는 데 성공했고, 해가 지기 전에 마카로스는 발로폴리스를 완전히 손에 넣을 수 있었다.3.6. 올리가키
올리가키는 요새화가 탄탄하게 진행된 유서깊은 고도(古都)였고, 하이 팰리스가 위치한 발하우트의 중심지였고, 발하우트에 주둔한 카오스 군세의 심장부라 할 만 했다. 올리가키에 공격을 개시한 지상군의 규모는 서부 평원에서 대격전을 치르고 있던 사이본 휘하 병력의 다음으로 거대했지만, 이에 맞서는 카오스 측의 규모 역시 만만치 않았다. 나지바르가 아무리 발하우트 공방전을 선빵을 맞아가며 시작했다곤 하지만, 아르콘 자신이 주둔한 올리가키는 결코 만만한 도시가 아니었다. 또한 올리가키에는 무려 4명의 마지스터가 합류해 있었는데, 개중에는 아셱 2(Ashek II)에서 성전군을 괴롭혔던 헤리터 아스포델 역시 주둔하고 있었다.슬레이도가 직접 지휘한, 올리가키 외성을 향한 공격은 10일동안 지속되었다. 성전군의 공격은 강력하기 그지없었지만, 이에 맞서는 카오스 군세의 저항 역시 만만치 않았다. 특히 아셱 2에서의 전투 이후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헤리터 아스포델의 전쟁 기계인 Woe Machine[5]거대한 이 다시 모습을 드러내 성전군을 공격했고, 이는 성전군의 공격을 지지부진하게 만드는 데 큰 기여를 하고 있었다. 게다가 발하우트의 궤도에서는 성전군 측 전열함들이 닥치는 대로 올리가키에 포격을 때리고 있었는데, 어찌나 포탄을 퍼부어댔던지 사람이 익사할 정도의 구덩이를 만들어 놓는 건 예사고 전장에서 피어오른 먼지구름이 행성의 기후에까지 영향을 줄 정도였다. 공세 개시 후 5일이 지난 시점에서, 화이트 스카의 마린들이 마지스터 쿨 콜레쉬(Khul Kolesh)의 군세를 격파함에 따라 돌파구가 열렸고, 쿨 콜레쉬 휘하 부대는 전장에서 도주했으며, 쿨 콜레쉬는 곧이어 벌어진 총격전 속에서 전사했다. 공격 개시 7일째, 카오스 드레드노트와 Woe Machine에 밀려났던 성전군은 스페이스 마린 실버 가드 챕터의 챕터 마스터 비검(Veegum)이 직접 공격을 이끄는 등의 분전 덕택에 올리가키의 외성은 서서히 함락되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도 외성 중심 관구, 그리고 그 곳에 위치한 부호의 탑(Tower of Plutocrat)은 맹렬하게 저항하고 있었다. 또한 천혜의 요새나 다름없던 올리가키 게이트(Oligarchy Gate)는 격렬히 저항하고 있었다. 성전군은 공격을 시도할 때마다 번번이 Woe Machine에게 밀려났고, 스페이스 마린이 직접 공격을 이끌었지만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공격 개시 9일째가 되자, 성전군은 올리가키 게이트의 성벽 중에서도 보강되어 있는 취약 부분을 발견하고 그 곳을 집중적으로 공략했으며, 스페이스 마린과 4개 기갑사단까지 동원해서 공격을 퍼부은 결과 부호의 탑이 함락당했고, 올리가키 외성은 완전히 함락당했다.
공격 개시 10일이 되는 새벽, 슬레이도는 올리가키의 내성 구역에 발을 내딛었다. 내성 구역에는 나지바르의 사령부가 위치한 하이 팰리스가 있었고, 8개 보병연대가 투입되어 하이 팰리스의 공략을 시작했다. 슬레이도는 선두에 서서 올리가키 공격을 이끌었고, 올리가키에서 벌어졌던 첫 총격전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부상을 입었다. 하지만 그는 전혀 내색을 하지 않았고, 군의관들 역시 그가 부상을 입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슬레이도는 나지바르와 조우해 결투를 벌이기 전까지 전혀 힘들어하지도 않았다. 슬레이도 휘하 병력은 엘리트 경호병을 대동한 나지바르와 조우했고, 곧 슬레이도와 나지바르 간의 격렬한 일기토가 벌어졌다. 슬레이도는 나지바르에 의해 두 번이나 치명상을 입었지만, 마지막 일격을 가해 나지바르를 쓰러뜨렸다. 슬레이도는 후송되었고, 나지바르의 시체는 전투 종료 후 쌓여 있던 시체더미 속에서 발견되었다.
올리가키가 함락되고 아르콘 나지바르가 전사하면서, 발하우트의 승리는 마침내 성전군에게 돌아갔다.
3.7. 승리, 그리고 슬레이도의 죽음
[6]
나지바르와의 일기토에서 승리했지만, 일기토가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상처를 입었던데다, 나지바르에 의해 두 번이나 치명상을 입은 슬레이도는 죽음을 피할 수 없었다. 물론 죽기 전에, 다행히도 그에게 자신이 그렇게도 염원하던 발하우트의 함락이 실현되는 광경을 지켜볼 시간은 충분했다. 그러나 그는 기쁨과 희열보다도, 조용한 만족감 아래서 죽음을 맞았다. 그간 커렐과 같은 일개 제너럴에서 사이본, 헥터 드레비어와 같은 로드 밀리턴트에 이르기까지 휘하 지휘관들과 수도 없이 악담을 주고받으며 마찰을 빚어대고, 혹여나 자신이 죽기 전에 발하우트를 정화시키지 못할까 전전긍긍하던 그간의 모습과는 퍽 다른 광경이었다. 성 사밧, 그리고 성 사밧을 보좌한 팔토르누스의 길을 따라 10여 년에 걸친 악전고투 끝에 슬레이도는 마침내 발하우트에 당도했고, 같은 장소에서 6천년 전에도 일어났을 격렬한 전투 끝에 발하우트는 카오스 군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마침내 성전군의 손에 해방을 맞았다. 슬레이도는 죽기 전에 자신의 후임 워마스터로, 발로폴리스에서 기적적인 전과를 이루어 낸 마카로스를 지명했다. 슬레이도의 유해는 발하우트에 마련된 거대한 능원에 엄숙한 절차를 거쳐 안장되었다.
4. 결과
성전군은 발하우트를 손에 넣는 데 성공했다. 발하우트는 성전의 최전반기에서부터 슬레이도가 잡아놓고 있었던 최우선 목표였다. 상술했듯 765년까지의 10년이란 세월은 성전군의 목표는 발하우트 그 자체였다. 발하우트는 성전군이 꼭 지나가야 하고, 꼭 사수해야 하는, 슬레이도의 사밧 성전에 있어 가장 중요한 목표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성전군이 발하우트까지 도달하는 데 걸린 시간은 무려 10년이라는 시간으로, 슬레이도가 최초에 예상했던 '길어야 2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긴 시간이었다. 아무튼 슬레이도는 그 어떠한 타협도 거부하고 발하우트를 쟁취해내는 데 성공했다. 또한 그 결과, 작게 보면 나지바르를 척살하고 카오스 군세를 무너뜨렸다는 성과를 거두었고, 크게는 나지바르의 척살을 통해 각자의 군대를 소유한 마지스터 간의 정치적 내분을 촉발시킴으로써 이후 성전군이 카발 항성군에 대한 공략을 진행하는 동안 카오스 군세가 성전군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게 만드는 결과 역시 만들어냈다.종합적으로 제국 측의 평가는 사밧 성전을 연구하는 전사가들은 발하우트 공방전의 진행 과정에 관해서는 직설적인 평가를 자제하는 편이긴 하지만, 총체적인 관점에서는 발하우트 공방전이 대체로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하는 편이다.[7] 하지만 이를 위해 성전군은 엄청난 피해를 입어야만 했다. 발하우트 공방전 극초반은 괜찮았을지 모르나, 지상에서 전투가 벌어지기 시작하자 격전이 벌어지지 않은 곳이 없었다. 전투 개시 후 64시간이 경과할 무렵 성전군에게 유리한 전장은 단 한 군데도 없었다.[8] 성전군은 발하우트에서 패배를 각오해야 할 정도로 엄청난 피해를 입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돌파구가 열리긴 했지만, 어찌나 피해가 막심했는지 슬레이도는 작전명을 'Hell Storm'이라 명명한 것을 후회하기까지 했다. 그 지옥 폭풍이 그대로 성전군마저 집어삼켰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성전군은 승리했다. 그리고 슬레이도는 발하우트에서 워마스터의 소임을 영원히 내려놓게 되었다. 비록 그는 여기서 전사했지만, 발하우트에서 이루고자했던 소기의 군사적, 정치적 목적은 달성할 수 있었다.
5. 후일담
5.1. 새로운 워마스터
슬레이도는 죽기 전에 자신의 후임 워마스터로 마카로스를 지명했다. 당시 슬레이도는 자신이 보유한 인재풀에서 여러 인물을 두고 고심했던 것 같았으나, 아무래도 발로폴리스에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기적적인 승리를 일궈낸 마카로스의 뛰어난 잠재성에 주목했던 것으로 보인다. 슬레이도는 결코 FM대로만 움직이는 지휘관은 아니었다. 그는 지휘관의 직관을 어느 정도 믿는 편이었고, 실제로 작전을 실행함에 있어 유연성을 갖춘 인물이었으며, 이는 데이터보다도 자신의 직관을 더 신뢰하는 인물이었던 마카로스와 일견 공통점이 있었다. 게다가 마카로스는 그간 성전군 고위 사령부에서 횡행하던 권력 싸움에서 퍽 자유로운 인물이었다보니 그간 고위 지휘관들의 사이에서 시달리며 권력 싸움에 염증을 느껴버린 슬레이도의 입장에선 차기 워마스터로 더더욱 그가 적합했을 지도 모른다.이러한 슬레이도의 결정은 성전군의 고급 지휘관들 사이에서 놀라움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는데, 발로폴리스에서 기적적인 승리를 일궈내기 이전까지 마카로스의 이력은 커렐 휘하에서 부관 역할을 한 것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발로폴리스의 지휘를 맡으면서 마샬로 진급하기는 했지만, 이는 발로폴리스에서의 전투가 끝나고 그 전공으로 인해 진급했던 것도 아니었다.[9] 아무튼 마카로스는 성전군의 고급 지휘관들에 비하면 굉장히 젊은 축에 속하는 인물이었고, 전공도 상대적으로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발로폴리스를 제외하면 딱히 이렇다 할 전공 자체가 없었다. 당연히 자기들이 워마스터가 되는 것이 합당하다 여기고 있던 사이본이나 헥터 드레비어는 분노에 차 길길이 날뛰었다.[10] 물론 마카로스의 워마스터 승계에 불만을 품고 있던 지휘관들은 사이본과 드레비어만 있는 건 아니었다.
아무튼 마샬에 불과하던 마카로스는 성전군의 새로운 워마스터가 되어 순식간에 사밧 성전을 이끄는 위치에 올라섰다. 마카로스는 성전군의 다음 목표로 카발 항성군(Cabal Systems)을 지목했고, 765년 이후 성전군은 재정비를 함과 동시에 뉴파운드 트레일링을 넘어서 한층 깊이 발을 내딛기 시작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바로 카발 항성군 공략의 시작이었다.
5.2. 해방 전역과 새로운 아르콘
카오스 군세는 발하우트 공방전에서 패배했다. 그리고 나지바르를 포함한 고위 마지스터도 여럿 잃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성전군이 완벽한 대승을 거두었다 하긴 힘들다. 숄른 스카라, 헤리터 아스포델과 같은 악명 높은 마지스터를 생포하지도, 죽이지도 못했거니와, 발하우트에서 패주한 카오스 군세를 제대로 섬멸하지도 못했다. 무엇보다 문제는 파비아 등지에 위치했던 또다른 카오스 군세들이었다. 파비아에 우글대던 카오스 군세, 혹은 당시 파비아로 향하고 있던 카오스 군세는 발하우트에 머무르던 나지바르가 성전군에 의해 급습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발하우트로 향했으나, 발하우트가 함락당하자 이들은 갈 길을 잃고 다른 방향으로 탈주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성전군이 발하우트 공방전이 승리했을 시점에도 이렇게 탈주하며 날뛰는 카오스 군세들을 막아낼 역량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당연히 발하우트를 제외한 주변 제국령 행성들에 이들이 들이치기 시작했다. 프레사리우스, 우르데쉬, 포르티스 바이너리, 사피엔시아, 코시아미누스, 파르테노프 등을 포함한, 그간 성전군이 발하우트로 향하기 위해 그리도 악전고투를 치르며 점령했 행성들이 또다시 카오스에 점령되거나 파괴당하고 말았다. 때문에 마카로스는 워마스터로 취임하자마자 카오스에게 재점령당한 행성을 재탈환하는 작업에 착수해야했고, 이러한 이유로 765년부터 4년간 소위 '해방 전역(Liberation Wars)'을 치러야 했다.한편, 발하우트 공방전으로 말미암아 카오스 군세의 고위 지휘부에서는 어느 정도 세대 교체가 일어났다. 물론 숄른 스카라, 헤리터 아스포델과 같은, 성전 최전반기부터 나지바르 휘하에서 활약했던 마지스터들은 발하우트에서 도주하는 데 성공했지만, 이들은 해방 전역 기간동안 성전군과의 전투에서 붙잡히거나 전사하면서 하나하나 최후를 맞고 사라졌다.[11] 당연히 나지바르의 전사로 인해 아르콘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마지스터 간의 내분이 벌어지기 시작했고, 이들 중 일부는 성전군과 전투를 계속하기는 커녕 서로 대규모 전투를 벌여가면서 싸우기까지 했다. 마지스터 간의 권력 투쟁의 승자로 떠오른 인물은 울록 가르(Urlock Gaur)였고, 울록 가르 아래 새롭게 떠오른 아나콰나르 세크(Anakwanar Sek), 에녹 인노켄티(Enok Innokenti), 마본 에토가르(Mabbon Etogaur) 등의 지휘관들이 주축이 된 카오스 군세는 다시금 성전군과 격렬한 전투를 이어나갔다.
여담으로 이브람 건트와 타니스 퍼스트 앤드 온리의 이야기는 발하우트 공방전 이후, 카오스 군세 일부가 수목이 우거진 행성 타니스에 침략하여 행성을 통째로 파괴하면서부터 시작된다. 성전군 측이 울록 가르의 사병집단인 블러드 팩트와 조우하게 되는 시기 역시 발하우트 공방전 이후이다.
[1] 스페이스 마린 챕터 실버 가드의 챕터 마스터[2] 아무리 배경빨이래도 로드 밀리턴트 씩이나 하는 지휘관이니 아예 아무것도 안 시키기는 뭐하고, 그렇다고 이런 놈에게 중요한 전장의 지휘를 맡기자니 도무지 믿을 수가 없어서 전황이 불리해지면 전투에 참가할 증원부대 지휘관으로 보내버렸다. 사실상 쫓아낸 것이나 마찬가지.[3] 물론 어디까지나 Operation Hell Storm의 작전에서 그렇다는 이야기. 발하우트의 함락 후에도 작게는 남반구에 위치한 작은 섬들, 발로폴리스 일부 지역, 혹은 발하우트 깊숙히 위치한 도시 등에서는 카오스 세력이 남아 저항을 계속하기도 했다.[4] 숄른 스카라가 직접 지휘하던 카오스 컬트 군대. 주로 죽음을 숭배하면서 코른에 헌신했다고 알려져 있다. 제국 측 기록은 블러드 팩트만큼이나 잘 조직된 공포스러운 군대라고 묘사한다. 발하우트 공방전이 끝난 후 도주한 숄른 스카라를 따라 사피엔시아(Sapiencia)를 근거지로 삼아 성전군에 저항했다. 768년 이루어진 성전군의 대규모 공세에 사피엔시아가 성전군 손에 떨어짐과 동시에, 숄른 스카라가 체포되어 이단심문소에 끌려감으로써 키쓰는 비로소 궤멸당했다. 다만 일부는 발하우트 공방전이 끝난 후에도 발로폴리스에 남아 행성의 민중을 상대로 학살극을 벌였고, 이들은 성전군이 펼친 토벌 작전 끝에 궤멸당했다.[5] 기계 쪽에 조예가 깊은 마지스터 헤리터 아스포델이 직접 만든 장치로, 블랙우드의 묘사에 따르면 무수한 칼날이 박힌 톱니바퀴, 거대한 화염방사기, 날카로운 집게 등이 달린 상상도 못할 정도의 크기를 가진 기계였다. Woe Machine과의 첫 조우에서 성전군 측은 기갑 부대를 동원해 맞섰지만 역부족이었고, 아뎁투스 티타니쿠스의 타이탄 군단까지 끌어와서야 이 기계들을 때려부술 수 있었다. 당시 블랙우드를 돕기 위해 달려온 타이탄 군단에는 무려 엠페러급 타이탄도 포함되어 있었다.[6] 워마스터 슬레이도의 죽음을 묘사한 그림. 가운데에 위치한 상처입은 인물이 워마스터 슬레이도이다. 좌측에서 슬레이도를 붙들고 있는 인물은 후임 워마스터인 마카로스. 그런데 올리가키 함락이 끝나는 시점에서 마카로스는 발로폴리스에 있었고, 발로폴리스는 올리가키와는 수천 킬로미터나 떨어져 있었다. 때문에 이 그림을 둘러싼 사실관계에 관해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7] 성전군이나 데파트멘토 무니토룸 측에서 펴낸 기록만 보면 슬레이도, 혹은 마카로스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내릴 수 없는 게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특정 인물, 사건을 두고 성전 진행에 관한 연대기를 작성하는 성전군 소속 장교들과, 사밧 성전을 연구하며 저술 활동을 하는 전사가들이 바라보는 시각은 꼭 일치하지만은 않는다. 애초에 사밧 성전에서 성전군 측은 입장상 자신들이 수행하는 성전을 어느 정도 미화하고 정당화해야 하는 입장이기도 하거니와, 자신의 상급자인 워마스터가 입안하거나 수행한 작전의 허와 실을 정말 정직하게 평가하기는 힘들고, 전사가들 역시 대놓고 곧이곧대로 평가하기는 쉽지 않다. 사밧 성전의 격전지에서는 애매모호한 찬사나 조심스런 평가가 으레 따라붙었고, 발하우트 역시 예외였다고 하긴 힘들다. 게다가 그 워마스터가 극심한 피해야 어찌됐든 드라마틱한 일기토를 통해 적 수장의 목을 따버리고 자기 자신도 장렬히 전사함으로 최종적으로 승리를 일궈냈다면...? 따라서 사밧 성전에서 성전군 측이 언급하는 작전 평가, 인물 평가는 무조건 곧이곧대로 믿기보다는 어느 정도 걸러들을 필요가 있다. 물론 이후 마카로스가 연이어 저지른 대실책엔 그딴 거 없어서 성전군 측이나 전사가들이나 한마음이 되어 위아더월드로 깠다.[8] 특히 발로폴리스같은 곳은 슬레이도마저 거의 자포자기할 정도로 전황이 압도적으로 불리했다. 괜히 마카로스가 워마스터 물망에 올랐던 게 아니다.[9] 마카로스의 마샬 진급은 단지 절망적인 전장에서 지휘를 떠맡게 된 지휘관에게 슬레이도가 해줄 수 있었던 하나의 선택지였을 뿐(그게 사기진작이든 무엇이었든 간에), 뭔가 의미 있는 결정이라 보긴 힘들었다. 애초에 슬레이도가 일찍이 마카로스의 떡잎을 알아봤다면, 혹은 일찍이 마카로스의 재능이 꽃필 기회가 있었다면 포멀 프라임에서 커렐이 슬레이도에게 쌍욕을 먹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10] 그 때문에 드레비어는 마카로스를 아예 워마스터 자리에서 끌어내리려고 작당하기까지 했다.[11] 숄른 스카라는 이단 심문소로 끌려갔고, 헤리터 아스포델은 베르가스트에서 전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