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반미청년회 사건(反美青年会事件)은 1988년 노태우 정부 당시 반미청년회 소속 조직원 12명을 검거한 사건이다.2. 반미청년회
반미청년회는 김영환의 강철서신 이후 본격화된 학생운동계 주체사상 도입에 영향을 받아 1986년 결성된 학생운동 조직으로 1990년까지 전대협을 중심으로한 NL계열 학생운동에 영향을 미쳤다.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 직선제 실시와 같은 헌법개정을 비롯한 민주화 운동을 주도했다. 이들은 단순한 민주화운동이 아니라 북한을 찬양하고 이적서적을 배포하는 등 종북주의자와 다를 바 없는 행동을 하였다. 정부는 이러한 비밀결사 성격을 띤 반미청년회의 활동이 반국가적 조직단체이라 판단, 반미청년회를 사회주의, 공산주의 단체로 지정하고 대대적인 검거작전을 전개했다. 1988년 3월 주요 조직원 12명 검거, 다수의 인원이 수배 조치 [1] 되었다.3. 활동 및 경과
국가안전기획부의 발표에 따르면 조혁 등을 비롯한 주체사상을 추종하던 대학생들은 1987년 10월 홍익대학교에서 김일성 주체사상과 한국민족민주전선을 추종하는 반미청년회 추진위를 결성하였다고 한다. 이후 1987년 12월 중순부터 전국 26개 대학에서 핵심세력 72명을 포섭하였고 1988년 1월 반미청년회를 결성했다고 한다.#반미청년회는 의장을 중심으로 무력부·연락부·선전부·후원부·교양부 등 5개 부서로 이뤄져 있었다. 국가안전기획부의 발표에 따르면 조혁, 장원섭 등을 중심으로 한 선전부는 구국의 소리 방송에서 KAL기 폭파사건이 조작이라고 방송한 내용을 유인물로 제작하여 1988년 2월 12일부터 성균관대, 경북대, 명지대, 연세대, 서강대 등 5개 대학에 유인물 또는 대자보로 배포하였다고 한다. 이외에도 이들은 「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 혁명이념」 「반종파 투쟁사」 「김일성 주체사상」 등을 교재로 조직원들을 교육해왔다.#
한편 반미청년회 무력부 산하의 연세대학교 행정학과에서 재학하다가 제적된 김철군을 비롯한 5개 대학생 8명은 2월 16일 청년학생 구구결사대를 조직하였다. 이들은 같은 달 24일 연세대학교에서 재학하고 있던 학생들을 중심으로 5명이 소이탄과 사제폭탄을 들고 서울 미 문화원을 기습 점거토록 했으며 안내상 등에게는 광주 미문화원 도서실에 사제시한폭탄을 장치토록 했다고 발표하였다. #
4. 관련 인물
안희정- 반미청년회의 조직부장이었던 그는 이적단체 결성 및 활동으로 구속되어 징역 1년 6개월의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1] 1990년 2월 조직 해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