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8-11 15:36:08

박성래

1. 완도군 독립운동가, 박성래2. 아산시 출신 독립운동가, 박성래

1. 완도군 독립운동가, 박성래

성명 박성래(朴成來)
생몰 1901년~1933년 출생지 전라남도 완도군 장용리
사망지 전라남도 목포
추서 대통령표창

박성래는 독립운동가, 저술가, 교육인, 언론인이다.
1920년 배재학당을 졸업하고 1922년 ’배제의 사명’을 배제 창간호에 실어 배제인으로서 정의의 손으로 간교한 일제에서 나라를 구하기를 힘쓰도록 외쳤다.1924년 8월 15일 전라남도 완도군 고금면(古今面) 조약도(助藥島)의 소년단 창립총회에서 고문으로 참여하였다. 이후 전라남도 완도군에서 완도학술강습소 상무이사로 활동하다가 1925년 12월 완도사설학술강습소 교사 신분으로 학생들에게 조국의 독립을 위해 각성하라는 문서를 만들어 반포하였다.
1925년 12월, ‘지나친 감정에 의지’라는 글에서 조선을 멸망시킨 일본의 처사에 분개하고 장차 이를 회복하기 위해 아동의 각성을 촉구하는 뜻의 문서를 작성하고, 1926년 1월 20일에는 ‘신년을 맞이하는 어린 친구에게’라는 제목의 문서를, 같은 해 2월 24일에는 ‘고민의 서곡’이라는 제목의 산문시 같은 문서를, 그리고 3월 무렵에는 무제(無題)로 이전과 같은 문자를 나열해 일제하의 조선의 현상으로써 불합리한 사회라고 논술하고 이를 고치기 위해 분기(奮起)를 촉구하는 취지의 문서 및 ‘아들들이여 우리나라는 이러하다.’라는 제목으로 일본제국은 조선인의 생활 복리를 개의치 않는 잔인, 폭력적인 정치와 같다고 논평한 문서를 각각 저술하여 학생 교육에 활용하였다. 신간회간사, 조선일보기자, 지국장으로 활동하며 독립운동과 민족의식고취에 그뜻을 다하셨다.

대한민국 정부는 2023년 박성래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

2. 아산시 출신 독립운동가, 박성래

성명 박성래(朴聖來)
생몰 1881년 12월 3일 ~ 1933년 9월 24일
출생지 충청남도 아산군 선장면 돈포리
사망지 충청남도 아산군
추서 대통령표창

박성래는 1881년 12월 3일 충청남도 아산군 선장면 돈포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4월 경 아산군 선장면에서 독립만세시위에 참가했다가 체포된 뒤 태형 40도에 처해졌다. 이후 아산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33년 9월 24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9년 박성래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