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박건채(朴健采) |
호 | 고은(高隱) |
생몰 | 1894년 12월 11일 ~ 1976년 12월 21일 |
출생지 | 평안북도 선천군 남읍 건산동 |
본관 | 죽산 박씨 |
사망지 | 서울특별시 |
추서 | 건국훈장 애족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박건채는 1894년 12월 11일 평안북도 선천군 남읍 건산동에서 태어났다. 1920년 8월 24일, 광복군총영은 미국 의원단 일행이 동아시아를 순방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이들에게 한국인의 독립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일제 요인을 암사하고 일제의 주요기관을 폭파하기로 결의하고 결사대를 파견했다. 이때 박건채는 선천군으로 잠입한 광복군총영 대원 이학필(李學弼), 임용일(林龍日), 김응식(金應植)으로부터 계획을 전해듣고 자신도 함께 하기로 하고 17명의 동지를 참가시켜 서명 날인을 받았다.그러나 국경의 경비가 강화되어 거사에 사용할 무기의 반입이 늦어져서 미국 의원단이 선천을 통과하는 시기에 계획대로 실행하지 못했다. 이에 결사대원은 향후 계획을 논의한 끝에, 비록 때를 맞추진 못했지만 일단 반입한 무기를 사용하는 게 낫다고 판단하고 1920년 9월 1일 새벽에 선천군천과 선천경찰서에 대한 폭탄 투척을 가하고 최급경고문(最急警告文) 등 수종의 유인물 수십 매를 살포했다.
이후 그는 동지들과 함께 피신했지만 일본 경찰의 추적으로 20여 명과 함께 체포되었고, 1921년 4월 12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징역 2년 6개월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그 후 그는 고향에 조용히 지냈다가 광복 후 서울로 월남했고, 1976년 12월 21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3년 박건채에게 대통령표창을 수여했고,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