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9-21 11:33:56

바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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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00px-Baasha_of_Israel.jpg
이름 바아사 Baasha
출생 미상
미상
사망 미상
디르사
소속 잇사갈 지파 소속
재위년도 기원전 909년~기원전 886년
약 24년
국적 북이스라엘 왕국
아버지 아히야
자녀 엘라
이전 국왕 나답
다음 국왕 엘라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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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북이스라엘 왕국의 3대 국왕, 바아사 왕조의 시조.

2. 생애

바아사는 북이스라엘 왕국의 3대 왕(재위 기원전 908년경~기원전 885년경)으로 잇사갈 지파 출신이다. 북이스라엘의 2대 왕 나답이 블레셋의 깁브돈을 포위 공격할 때 반란을 일으켜 나답을 시해하고 왕위에 올랐으며[1] 디르사를 수도로 삼았다.

힘들게 왕위에 올랐지만 남유다가 정통신앙을 회복해 민심을 얻은 데다 북이스라엘의 혼란까지 겹쳐 많은 유민들이 남유다로 이동했다. 백성들의 이탈을 막고자 남유다 왕국과의 경계 지역인 라마에 성곽을 건축하였으며 남유다 아사왕과 여러 차례 충돌했다.

하지만 남유다가 아비얌아사 왕으로 이어지는 안정기였던 데다가 북이스라엘은 상대적으로 혼란기를 거쳤기 때문에[2] 결과가 신통치 못했고, 라마 성을 건축하여 남유다를 고립 및 압박하려 했으나 남유다 아사 왕의 요청을 받은 아람의 공격을 받아 라마 성 건축을 포기하게 되었다. 이후 아사 왕은 라마 건축 자재를 운반하여 그것으로 게바와 미스바를 건축한다.

신앙적으로도 정통 신앙 대신 여로보암 1세의 우상숭배 행위를 답습했다. 성경에는 '바아사 왕을 심판하시는 야훼의 말씀이 하나니의 아들 예후에게 내렸다.'고 기록되어 있다.
나는 잿더미에서 뒹굴던 너를 뽑아 높이 세우고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영도자로 삼았다. 그런데 너는 여로보암과 같은 길을 걸어 같은 죄를 짓고 내 백성을 죄의 길로 이끌어 나의 분노를 사는구나.
보아라, 내가 바아사와 그의 가문을 모조리 쓸어버리리니, 네 가문은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가문과 같은 운명에 떨어지리라.
바아사 가문의 사람이 성 안에서 죽으면 그 시체를 개가 뜯어먹겠고 들에서 죽으면 새가 쪼아먹으리라.
열왕기상 16:2~4 (공동번역성서)

바아사는 24년간 나라를 통치한 후 사망했으며 왕위는 아들인 엘라에게 이어진다.
[1] 성경에 따르면 여로보암 1세가 왕이 될 것이라 예언했던 아히야가 여로보암 1세가 우상을 숭배하는 것을 보고 일족이 몰살될 것이라고 예언하였는데 그 예언이 실현된 것이다.[2] 애초에 북이스라엘 자체가 르호보암이 싫다고 나머지 10지파가 뛰쳐나와 만든 동군연합에 가까운 나라라서 단결하는 것 자체가 더 이상한 전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