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성군 순종대왕 일대기의 등장인물. 원 역사의 민태호에게서 모티브를 따왔다.2. 작중 행적
강백산의 처인 민 세자빈의 아버지로, 무능하고 한량이자 간신배로서의 모습을 보여주며 딸이 불안해하든 말든 딸을 세자에게 밀어넣어 출세할 생각에 신나있었다.1882년 강화유수. 임오군란 도중에 명성황후의 조력 요청에도 세자 쪽에서 보낸 '얌전히 경비나 서라'는 밀서를 받고 그대로 따르며 목숨을 부지한다. 이 때문에 민자영은 너 같은 한량을 사돈으로 삼은 내가 병신이었지 그동안 얼마나 많은 봉록과 권세를 줬는데 도와달라는 요청도 안 들어주냐고 성질을 내다가[1] 세자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앞으로 민씨는 세자를 옆에서 잘 보필하라고 명령한다.
일단 명에 따라서 처음으로 열심히 일을 하며 경비 태세를 올린 결과, 결과적으로나마 청군에게 저항하는데 성공하지만, 청에서는 민태호가 일본과 손을 잡고 청국과 반란했다고 착각하여 민태호를 끌고 간다. 나중에 청 쪽에서도 일본 외교관과 대화해서 착각이라는 것을 깨달았지만 잘잘못은 알 바 아니고 자기 가오가 제일 중요한 중국인답게 체면치레랍시고 그냥 끌고 가버린 뒤 조선에게 책임전가를 했다.
민태호가 남긴 결과는 결국 민씨 일파와 대원군 일파가 손을 잡고 세자의 손을 들어주는 강백산의 이득으로 돌고 돌게 된다. 정치의 본질은 밥그릇 싸움이기 때문에, 밥그릇 싸움도 밥그릇이 있어야 할 수 있으니 쳐들어온 일본, 청 앞에서 일단 민씨 일파와 손을 잡으라고 대원군이 지시한다. 민씨 일파도 민태호가 잡혀가면서까지 청군과 싸운 것 덕분에 청과 손을 잡을 생각이 없을 테니 이해득실이 맞아 떨어지기 때문.
결과적으로 보면 하루 만에 강화도를 빼앗긴 졸장이지만 방비 태세를 개판으로 하다가 청군한테 당한 것도 아니고 먼저 선빵을 친 청군에 응전하다 청군에 붙잡혀 끌려갔기 때문에 일반 조선인들도 조선을 집어삼키려는 청나라의 야욕을 똑똑히 알게되면서 남들이 군란이다 뭐다 난동을 피울 때 홀로 외침의 징조를 눈치채고 대비했으나 중과부적으로 패한 비운의 명장이라는 칭송(?)을 얻게 된다.
이후 청나라에서 중추원 관련 건으로 심문을 받게 되고 이에 집에 보내 달라 간청하지만 이홍장이 들어주지 않자 쌍욕을 퍼부으려다가 입이 막힌 채로 끌려간다. 이후 이홍장과 서태후의 상반된 요구에 골치를 앓던 원세개가 김옥균이 강화도로 유배온다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옳다구나! 하면서 세자의 편에 서면서 이홍장과 서태후 양쪽 모두를 만족시킬 방안을 떠올린 덕분에, 김옥균과 포로교환(?)을 통해 귀국할 수 있게 되었다.
1885년에 귀국할 때까지도 청나라에서 조선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철저히 숨기고 있었기 때문에 그사이 나라 망한 거 아니냐고 걱정했지만 3년 사이에 조선이 너무 많이 바뀐 걸 보고 혼란스러워하며, 세자와 재회한 뒤 세자가 자신이 알던 시절과 달리 절대로 개기면 안 되는 무언가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리고 머리를 박는다. 간신배로서 개기면 안 되는 사람을 알아보는 특유의 레이더가 있다나.
청나라 시절 중국어를 몰라서 고생했기 때문에 중국어를 공부했는데 다시 강화유수로 파견되어 원세개를 상대하라는 명을 받고 원세개를 잘 접대해서 호형호제하는 사이가 되며, 원세개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원세개가 한창 연하임에도 형님 소리를 하면서 싸바싸바를 잘하고 있다. 원세개가 여기 와서 처음으로 제대로 술자리를 즐긴다는 묘사를 보면 그냥 술상무 특화인데, 독자들도 딱 적성에 맞는 자리를 찾았다 평가할 정도.
원세개가 모르핀을 높으신 분들의 뇌물로 바치고 싶다고 제안하자 이를 받아들여 수입을 6대 4로 나누고, 즉시 세자에게 보고하는 숙련된 간신배의 모습을 보인다. 그 말을 들은 강백산은 원세개가 서태후에게 모르핀을 바치게 하라고 지시하고, 이후 모르핀 수입을 나눠 가지면서 주기적으로 강백산에게 유통 경로에 대해 보고하고 있다.
강화도 사건 당시의 합의를 어기고 북양함대가 인천 앞바다에서 활개를 치기 시작하자 지금 전력으로는 북양함대에게 상대도 안 되는 걸 알기에 어쩔 수 없이 교전 금지 명령을 내리지만 북양함대가 조선에서 주문한 기관차를 비롯해 근대화에 비롯한 장비를 싣고 제물포에 정박하려는 미국 상선에게 멋대로 정선을 요구하고 검문을 시도하자 그 상선 안에 실려있는 것이 조선에 필요한 기기라는 걸 떠올리고는 대포를 쏴서라도 북양함대를 막으라고 명령한다. 기어이 북양함대의 검문 시도를 막아내긴 했지만 조선군과 북양함대의 압도적인 전력 차를 실감하고 조선에게도 철갑선이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한탄, 조선도 기필코 대양함대를 가지고야 말겠다는 야망을 품는다.
조청전쟁이 발발한 후 원세개가 옛 정을 생각해 풀어주면서 강화도에서 쪽배를 타고 육지까지 건너와 홍계훈과 만난다. 홍계훈이 전쟁이 당초 예상대로 진행 중이기는 하나 같이 청나라와 맞서 싸워야 할 일본이 뜸을 들이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주자 이대로 가다간 조선만 성치 못하게 될 뿐 어떻게든 일본을 끌어들여야 하며 그러기 위해선 수군도 목숨을 걸고 일본이 전쟁에 뛰어 들게할 만큼의 대활약을 보여줘야 한다 주장하고 곧 퇴역할 판옥선에 활대기뢰를 매달아 북양함대에 돌격하여 자폭하는 작전을 홍계훈과 함께 계획한다.
이 특공작전으로 북양함대 기함인 정원을 잡아내고 그와 동급의 전함인 진원을 노획하는 초대박을 터트리자 '조선의 테미스토클레스'[2]로 유명세를 타게 된다. 서양에서도 민태호가 부패로 유명한 인물이라는 것은 알려졌지만 그런 부패한 사람이 나라가 정말 위험해졌을 때 구했다는 점에서 오히려 뽕을 느꼈다고. 이후 해군대신직에 임명되어 해군을 양성한다.
청해함을 이끌고 다니며 청, 일에 한국의 정치적 영향력을 현시하는 역할을 적절히 수행하고 영국에서 전함을 차관으로 하나 만들어준다는 이야기에 한국의 실정에 딱 맞는 센추리온급 전함을 융희제에게 추천하는 탁견을 보여주며 완전히 해군대신으로 자리를 잡게 된다.
러시아와 청, 일, 한국 연합군이 심양 전투에서 승전보를 울리는 사이 동아연합함대는 동해에서 러시아 해군과 대치 중에 민태호는 이미 구형에 재생함이라 사실상 구경꾼으로 도고 헤이하치로에게 지휘권을 넘겨주고 뒤에서 구경을 하게 된다. 문제는 센츄리온급이 기동력을 살린 뇌격전을 준비한 동아연합함대와 달리 러시아 해군은 체급을 살려 정면 포격전을 준비했고 장보고함과 정기택급 2대로 전함 3대에 맞서야 하는 상황이 온다. 이에 민태호가 참전을 명하고 구형이라 조준 장치조차 없던 청해함에서 떠오르는 해와 함께 확인한 주민들에게 석도라 불리는 섬[3]를 기준으로 삼각측량을 통해 계산하면 될 것 아니냐는 혜안을 보여준다. 이후 계산이 완료된 상태에서 적 전함 오슬라비야에 현 10인치급 포만 가진 참전 전함 중 유일한 12인치급 함포 사격에 명중탄을 낸다.
비록 굉침시키지는 못했으나 오슬라비야는 전투에서 빠져야 했고 해전을 벌이지는 못하지만 사거리 내에서 사격을 날려대는 고정함포 포대가 되어 러시아 해군에 위협을 가하게 되며 울도 해전을 승리로 이끄는 초석을 만들어낸다.
전쟁 후에는 영국의 2선급이지만 전함 함체를 구매하는데 성공해 이용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기술축적용일 뿐 융희제가 1906년쯤에 1선급 최신예 전함을 발주할 것이라고 도고 헤이아치로에게 이야기한다.[4] 그리고 도고에게 남방을 노리는 것이 아닌지 묻고 중국에서 구형함 구매를 타진했다며 일러준다. 융희제에게 향후 이들이 다시 전쟁을 벌일 것을 예고 받았기에 알고는 있었으나 김옥균도 사고를 치는 것을 보며 이해할 수 없다는 생각과 함께 슬슬 초야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버티면서 첫 드레드노트급 전함에 이순신함이라는 이름이 붙는 것을 보고 은퇴하겠노라 다짐한다.[5]
3. 기타
강백산의 평에 따르면 내추럴 본 간신배라고 하며, 작중에서도 간신배라고 여러 차례 명시된다. 그러나 민태호는 주제 파악을 잘 하는 간신배라는, 전근대 군주의 입장에서 사냥개로 써먹기 좋은 인간이라 작품 초반에 강백산은 민태호를 잘 활용했다.어쨌든 세자의 장인이라는 특성상 나라가 망하면 곤란해서 청나라와의 전쟁에서 적극적으로 임하는, 전근대 동아시아 왕조의 입장에서 왜 외척이 필요한지를 보여준 인물이다. 외척은 왕에게 유착해야만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특성상 군주가 이런저런 문제를 감수해도 의도적으로 친위세력으로 키우는 세력이며, 당시 여흥 민씨는 일부 총아를 제외하면 대부분 무능하기 짝이 없어 군주에 대한 의존도가 더 높았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다. 신 안동 김씨가 한때 세도정치의 수장으로 악명을 떨쳤지만 중진들은 대부분 인맥과 사무 능력이 좋아서 대원군 섭정기와 여흥 민씨 세도기에도 대부분 정계에서 살아남은 것과 비교되는 부분.
술 잘 마시고 술상무 실력이 매우 뛰어나서, 원세개의 동생이 되어(나이로는 이쪽이 수십년 위지만) 잘 접대했다. 이것만으로도 독자들 사이에서는 할 일 다했다는 높은 평가였지만 강화도 사건 이후로 해군의 필요성에 눈을 뜨기 시작하더니 판옥선 자폭 작전 당시 동행했다가 시력을 잃고 곧 사망한 정기택의 원한을 곱씹으며 능력을 개화해 해군대신으로서 식견이 상당히 높아졌다. 새로이 도입한 센츄리온급 전함에 정기택의 이름을 붙이자고 청원한 것도 이 사람. 울도 해전에서는 조준기 등 근대 해전 능력이 없어서 후방에 남아있었던 청해함이 놀랄 정도로 정확한 사격을 가해 전공을 올리는 것을 지휘했으며, 도고 헤이하치로조차 "사관학교조차 나오지 못한 구시대의 군인조차 이렇게 큰 고비마다 활약해 주다니, 과연 조선 수군은 동양 제일이로구나." 하고 감탄해 독자들의 기분을 애매하게 만들어주었다.
강화도 사건으로 눈을 뜬 한국산 전함에 대한 열의 덕분에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몸을 가누기도 힘든 상태에서도 첫 드레드노트급 전함이자 이순신 장군의 이름이 붙은 전함을 보고 가겠다고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