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6-24 15:12:52

무주(삼국지)

무백남에서 넘어옴
武周
생몰년도 미상
1. 개요2. 생애3. 미디어 믹스

1. 개요

삼국시대 위나라의 관료이며 자는 백남(伯南)으로 예주 패국 죽읍현 사람. 무해(武陔)[1], 무소(武韶), 무무(武茂)의 아버지.

2. 생애

관련된 기록은 《위서》 <호질전>의 주석에 나오지만 《위서》 <장패전>에 따르면 조조를 일찍 섬겼다는 기록이 있다.

여포 토벌 이후 무주는 하비현령으로 임명되었고 장패서주자사로 임명되는데 평소 무주를 존경하던 장패는 틈만 나면 현령의 관청을 방문하였다고 한다.

현령 시절 부종사가 경박하게 굴며 법을 범하던 사건이 있었을 때 그 죄상을 발각하고 곧 체포하여 조사하고 이 일로 장패에게 더욱 높은 평가를 받게 되었다.

장료합비를 수비하고 있을 때 무주는 당시 그의 호군이었는데 처음에 장료는 무주를 높이 평가했으니 시간이 흘러 상세불명의 이유로 사이가 멀어지게 된 일이 있었다. 결국 장료는 당시 양주자사였던 온회를 통해서 호질과 자리를 바꾸기를 원했지만 호질이 병을 핑계로 거절하자 장료가 호질을 직접 찾아가 묻기를
나는 그대에게 마음을 의탁하려고 하는데 어찌하여 그대는 이토록 무고한것이오?

그러자 호질이 대답하기를
옛 사람의 사귐에는 많이 취하더라도 탐욕스런 마음이 없음을 알았고, 전쟁터에서 달아났어도 그가 겁이 없음을 알았으며 떠도는 말을 듣고도 믿지 않았으므로 사귐은 끝까지 갈 수 있었습니다. 무백남이라는 사람은 바른 인물로서 과거에는 장군이 그를 일컬어 칭찬함이 끊임이 없었으나, 지금은 노여운 눈으로 서로 바라보는 한이 있어서 곧 싫어하고 틈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하물며 저는 재능이 적은데, 어떻게 좋은 관계를 끝까지 할 수 있겠습니까? 이 때문에 저는 원하지 않는 것입니다.

결국 장료는 호질의 말에 큰 깨달음을 얻었는지 다시 무주와 관계가 회복되게 되었다.

그 외에도 무주가 유공영에게 자신의 세 아들들의 평가를 들은 일화가 있다.

220년 10월 11일에 사마의, 정혼, 양훈, 포훈과 함께 조비에게 선양할 것을 권하는 표를 올렸다. 관직은 광록대부(光禄大夫)까지 올라갔다.

3. 미디어 믹스

소설 비열한 성자 조조에서는 조조가 돈구령에 부임하면서 탐관오리들을 파면하면서 역성현령이 되었으며, 조조가 돈구령에서 물러나고 한참 후에 동군태수로 부임하면서 조조를 섬긴다.

이후 군사제주를 지내다가 여포군을 멸망시키고 원소와 싸울 준비를 하는 과정에서 병주군의 기강을 해이해지고 투항군까지 합세한 상황이라 감군에 임명되어 장료를 도와 군을 통솔하게 된다. 그런데 장료와는 상극이라 대립하는 일이 많았지만 곽가는 이에 대해 장료가 성격이 직선적이라 여러 장수들과 사이가 좋지 않아 강직한 무주가 견제해야 그 성격이 중화된다고 여겼다.

장료가 조조의 명 없이 여러 차례 대항한 창희와 비밀리 회동해 투항시킨 것으로 인해 군령을 어겼다면서 장료를 처벌해달라고 요청했는데, 조조는 장료를 용서하고 장패, 손관, 윤례, 오돈 등이 창희와 돈독한 사이에 그들이 돌아설 것을 우려해 창희를 받아들였다.

조조가 원소 사후 업성을 공격할 때 원상이 업성으로 지원을 하기 위해 장수를 공격하려다가 실패하고 우금을 공격한 것을 보고했으며, 원상이 조조가 있는 영채를 공격하려 하자 장료가 명도 없이 영채문을 나가서 제멋대로 공격하러 갔다는 것을 보고하자 조조가 원상의 군대가 사기가 바닥난 것을 이야기하면서 장료가 좋은 소식을 가져올 것이라고 괜찮다고 했다.


[1]진서》에 열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