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8-22 13:04:06

무미아 아부자말


<colbgcolor=#ddd,#000><colcolor=#000,#ddd> 무미아 아부자말
Mumia Abu-Jamal
파일:빈 세로 이미지.svg
출생 1954년 4월 24일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직업 정치인, 언론인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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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3. 언론인 경력4. 존 포크너 경관 살해 사건5. 사형수 신분과 논란6. 현재

1. 개요

미국의 정치인, 언론인.

본명은 웨슬리 쿡(Wesley Cook)으로 어린 시절부터 흑인 인권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급진적인 생각을 키웠다.

2. 생애

어린 시절부터 사회운동에 관심을 가졌고 1968년 15세의 나이로 흑표당에 가입하여 필라델피아 지부의 창립 멤버가 되었다.

블랙 팬서 활동가로서 필라델피아오클랜드 등지를 오가며 활발하게 활동했다. 이 시기에 아프리카 이름을 따서 '무미아'라는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무미아'는 이집트어로 '왕자'를 의미한다. '아부자말'은 아프리카계 미국인을 상징하는 이름으로, '자말의 아버지'라는 뜻이다. 그는 블랙 팬서 활동을 통해 급진적인 사상과 언론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3. 언론인 경력

블랙 팬서를 탈퇴한 후 1970년대 후반부터 필라델피아의 여러 라디오 방송국에서 기자로 일했다. 그는 특유의 날카로운 시각과 목소리로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하는 데 주력했다. 특히 MOVE 단체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며 필라델피아 경찰의 강경 진압을 비판하는 등 주류 언론과는 다른 시각을 보여주었다. 그의 프로그램은 많은 청취자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고, '필라델피아의 목소리'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4. 존 포크너 경관 살해 사건

1981년 12월 9일 새벽, 아부자말은 필라델피아에서 총에 맞아 쓰러진 채 발견되었다. 그의 옆에는 존 포크너 경관의 시신이 놓여 있었다. 현장에는 아부자말의 권총이 함께 발견되었다. 아부자말은 포크너 경관을 살해한 혐의로 체포되었고, 1982년 재판에서 1급 살인죄로 유죄 판결을 받는다

이 사건은 증거의 불충분함과 인종차별 논란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 목격자들의 진술이 엇갈렸으며, 일부 증거는 조작되었다는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되었다. 판사가 인종차별적 발언을 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5. 사형수 신분과 논란

결국 사형을 선고받고 30년 가까이 사형수로 지내면서도 무죄를 주장하며 끊임없이 항소했다.

그의 사건은 전 세계적인 인권 문제로 부각되었다. 국제앰네스티를 비롯한 수많은 인권 단체와 유명 인사들이 아부자말의 석방을 촉구하는 운동을 벌였다. 이들은 아부자말의 재판이 공정하지 않았으며, 그가 정치적인 이유로 희생되었다고 주장한다.

2011년, 그의 사형 선고는 종신형으로 감형되었다. 이는 펜실베이니아주가 사형을 집행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고려하여 내려진 결정이었다. 이 결정 이후에도 그의 무죄를 주장하는 목소리는 잦아들지 않았다.

6. 현재

수감 중에도 아부자말은 끊임없이 글을 썼다. 그는 교도소에서 녹음된 음성 파일을 통해 라디오 칼럼을 진행하며, 여러 권의 책을 출판했다.

대표 저서로는《삶의 순간》(Live from Death Row) 등이 있다. 이 책들을 통해 그는 미국의 사법 시스템과 교정 시설의 문제점을 비판하고, 자신의 무죄를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