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메트로레일(Metrorail)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4개 도시권에서 운행되는 도시철도 시스템이다.연방정부 직속 공기관인 남아공 여객철도청(Passenger Rail Agency of South Africa, PRASA) 산하의 공기업이며, 따라서 4개 시스템이 메트로레일이라는 브랜드명을 공유하고 뒤에 각 도시권의 이름을 붙여서 구분한다. (메트로레일 하우텡, 메트로레일 웨스턴 케이프(케이프타운), 메트로레일 더반, 메트로레일 이스턴 케이프)
2. 역사[1]
2.1. 넬슨 만델라 행정부: 메트로레일의 성립과 운영
아파르트헤이트 당시의 남아공 도시철도 운영기관들은, 가장 대표적으로 지적되는 인종분리 문제를 제외하고도, 철도 자체의 부설과 운영 권한만 있을 뿐 다른 데에는 거의 아무것도 관여할 능력이 없었기에 도시개발 주체들과 철도 운영이 거의 따로국밥으로 놀아 비효율이 많았고, 특히 피터르 빌럼 보타 대통령에 의해 이전엔 있던 연방 보조금이 전면적으로 중단되어 도저히 정상적 도시철도라고 부를 수 없는 수준까지 쇠퇴하고 말았다.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만델라 행정부는 공기관 메트로레일을 설립하여 전국의 도시철도 규격과 운영 주체와 통합하고, 곧이어 중단되었던 연방 보조금을 재개하여 일단 도시철도라고 부를 수 있는 수준까지 재건했다.
하지만 만델라 행정부는 도시철도의 재건 수준에만 머물렀고 신규 노선 건설 등의 인프라 확장은 거의 안 했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그러나 아파르트헤이트 직후라서 모든 분야에서 인프라 부족이 만성적으로 산재한 시기에, 그나마 재건이라도 제대로 해낸 것은 굉장히 훌륭한 업적이며 도시철도망 발전의 초석을 다졌다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이후 행정부의 실정으로 이 초석마저 다 부서지게 된다.
2.2. 타보 음베키 행정부: 신자유주의 도입과 붕괴의 신호탄
만델라의 후임인 음베키는 당대에 유행하던 신자유주의를 신봉했으머 도시철도의 공공성보단 사업성을 중시했다.이런 성향으로 하우텡의 하우트레인이나 케이프타운의 마이시티(MyCiTi) 같은, 서민층은 거의 이용이 불가능한 프리미엄 대중교통 수단이 등장하고, 이에 따라 기존 서민용 대중교통인 메트로레일은 정책적 관심과 투자의 대상에서 벗어나고 말았다.
또한 음베키 행정부는 만델라 행정부에서 대규모로 등용된, 아파르트헤이트 시대에 탄압받던 백인 테크노크라트들을 해임하거나 계약 연장을 안 하기도 했는데, 이에는 단순히 "백인이라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신자유주의 성향에 안 맞아서 배제된 경우도 있었다.[2] 이렇게 사상에 따라 실무에 대해 잘 아는 사람들을 배제한 행위도 메트로레일에는 좋을 것이 전혀 없었다.
음베키 행정부의 정책의 악랄한 점은, 이러한 프리미엄 대중교통을 단순히 이용자 수준에서만 분리한 것이 아니라, 법적/행정적으로도 소속을 완전히 다르게 해놓아서 "비싼 돈을 내고 높은 수준의 서비스를 받을 의향이 있는 승객으로부터 나온 수익금을 가난한 사람들의 교통에 투입하는" 식의 선순환을 원천차단했다는 것에 있다. 하우트레인이나 마이시티가 아무리 순이익이 남아도 그 돈은(둘 다 지방정부 소속 공기업임에도 불구) 메트로레일 하우텡과 웨스턴 케이프, 그리고 이곳들의 공영 시내버스에 직접적으로 투입될 수 없다.
메트로레일의 붕괴는 주마 시절에 일어났지만, 음베키의 정책을 유지하는 후임이 취임햤더라도 메트로레일은 결국 붕괴되었을 것이라는 추측은 어렵지 않다.
2.3. 제이콥 주마 행정부: 전면 붕괴
주마는 음베키의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인한 폐해를 비판했지만 정작 그걸 해결할 비전 같은 건 없었다. 오히려 주마 행정부의 조직적 부패와 무능한 부실경영, 낙하산 인사 등은 음베키 시기의 단순한 정책적 무관심보다 훨씬 더 메트로레일에 심각한 해악을 끼쳤고, 일반적으로 메트로레일은 이 시기에 전면적으로 붕괴되었다는 평가를 받는다.2.4. 시릴 라마포사 행정부
[1] David M. Smith (ed.), The Apartheid City and Beyond: Urbanization and Social Change in South Africa[2] 예시: 피터 윌킨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