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2 13:28:41

머독 스튜어트

<colcolor=#ffffff><colbgcolor=#0065bd> 올버니 공작
머독 스튜어트
Murdoch Stewart, Duke of Albany
파일:머독 스튜어트.jpg
머독 스튜어트의 인장
이름 머독 스튜어트 (Murdoch Stewart)
출생 1362년
스코틀랜드 왕국 사우스 에이셔
사망 1425년 5월 24일 (향년 62~63세)
스코틀랜드 왕국 스털링 성 앞 헤딩 힐
배우자 레녹스의 이사벨라 (1392년 결혼)
자녀 로버트, 월터, 알락산더르, 뚱뚱한 제임스, 이사벨라
아버지 올버니 공작 로버트 스튜어트
어머니 마거릿 그레이엄
형제 자넷, 메리, 마거릿, 조앤, 베아트리체, 이사벨라, 마조리
직위 제2대 올버니 공작

1. 개요2. 생애3.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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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스코틀랜드 왕국의 귀족, 군인. 백년전쟁 시기 잉글랜드군과 대적했고, 아버지의 뒤를 이어 스코틀랜드 섭정이 되었지만 18년간 잉글랜드에서 포로 생활을 했다가 스코틀랜드로 귀환한 국왕 제임스 1세에 의해 처형되었다.

2. 생애

1362년경 스코틀랜드 왕국 사우스 에이셔에서 초대 올버니 공작 로버트 스튜어트와 마거릿 그레이엄의 장남으로 출생했다. 형제자매로 자넷[1], 마거릿[2], 조앤[3], 베아트리체[4], 이사벨라[5], 마조리[6]가 있었다. 아버지 로버트 스튜어트는 무리엘라 키스라는 이름의 여인과 재혼해 , 로버트, 엘리자베스 등 2남 1녀를 낳았다.

아버지 로버트 스튜어트는 스코틀랜드 남부 최강의 귀족으로, 로버트 2세, 로버트 3세, 제임스 1세 3대 동안 스코틀랜드의 섭정을 역임해 무소불위의 권세를 누렸다. 머독은 그런 아버지를 등에 업고 1389년 스코샤 재판관에 선임되었다. 이후 그는 북부에서의 이익을 확대하기 위해 아버지와 협력하면서, 군도의 군주인 도널드 맥도날드 등 다른 북부 귀족들과 무력 투쟁을 벌였다.

1402년 아버지와 더불어 스코틀랜드 정계의 거물이었던 제4대 더글러스 백작 아치볼드 더글러스가 대규모 스코틀랜드군을 이끌고 북부 잉글랜드를 공격했을 때 참가했다가 1402년 9월 14일에 벌어진 호밀돈 언덕 전투에서 참패를 면치 못하고 아치볼드 더글러스 및 거의 모든 스코틀랜드 사령관과 함께 생포되었다. 그 후 12년간 포로 생활을 이어가던 그는 1416년 제2대 노섬벌랜드 백작 헨리 퍼시와 교환되어 스코틀랜드로 귀환했다. 1420년 아버지가 사망한 뒤 58세의 나이에 올버니 공작 및 파이프 백작과 멘티스 백작을 물려받고, 스스로 스코틀랜드 섭정이 되었다. 그는 스코틀랜드 국왕 제임스 1세가 여전히 잉글랜드에 포로로 잡혀있던 1420년부터 1424년까지 이 직책을 역임했다.

그는 왕이 없는 동안 무소불위의 권세를 누리는 것에 만족해 제임스 1세를 석방하는 데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러나 여러 귀족이 자국 군주가 잉글랜드의 포로로 장기간 지내는 것을 수치로 여겨 어떻게든 풀려나게 해야 한다고 촉구하자, 마지 못해 그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1423년 8월 잉글랜드에 사절단을 파견했다. 1424년 3월 28일 더럼에서 60,000마르크에 달하는 몸값이 책정되었고, 제임스 1세는 18년 만에 풀려나 1424년 4월 5일 스코틀랜드에 도착한 뒤 머독으로부터 섭정의 인장을 받았다. 그가 돌아오면서, 머독은 섭정으로서의 지위를 잃었지만, 여전히 강대한 귀족으로서 권력을 유지하는 듯했다.

1424년 5월 21일 스콘에서 스코틀랜드 국왕으로서 대관식을 거행한 제임스 1세는 머독의 아들 알락산더르 스튜어트를 포함한 18명의 저명한 귀족들에게 기사 작위를 수여했다. 그러던 1424년 8월, 머독의 이복 형제인 뷰컨 백작 존 스튜어트와 제4대 더글러스 백작 아치볼드 더글러스가 베르뇌유 전투에서 전사했고 스코틀랜드군은 궤멸되었다. 군사적 재능이 뛰어났던 이복형제와 올버니 가문의 든든한 동맹이었던 더글러스 백작의 허망한 죽음으로 인해, 올버니 가문의 위세가 약화되었다. 제임스 1세는 이 때를 틈타 자신이 오랜 세월 잉글랜드에 갇혀 있는 동안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고 권세를 누리던 올버니 가문에게 복수하기로 마음먹었다.

1425년 3월 25일, 머독은 아들 알락산더르 스튜어트와 함께 긴급 체포된 뒤 세인트 앤드루스 성에 갇혔다가 캐러버록 성으로 이송되었다. 또한 그의 아내 이사벨라도 체포되어 탄탈론 성으로 옮겨졌다. 1425년 5월 18일, 스털링 성에서 열린 의회에서 머독의 이복 삼촌인 안톨 백작 월터 스튜어트, 첫번째 사촌인 마르 백작 알락산더르 스튜어트, 제5대 더글러스 백작 제임스 더글러스 등 7명의 백작과 14명의 하급 귀족이 배심원으로 참석한 가운데, 머독은 두 아들 월터, 알락산더르, 장인인 레녹스 백작 던컨과 함께 끌려왔다. 그들은 제임스 1세를 폐위시키려는 음모를 꾸민 혐의로 하룻동안 재판을 받고 유죄 판결을 받은 뒤, 5월 24일 스털링 성 앞 헤딩 힐에서 공개 참수형에 처해졌다. 그가 가졌던 모든 작위와 영지는 왕실에 몰수되었다.

3. 가족

  • 레녹스의 이사벨라: 레녹스 백작 던컨의 딸. 남편이 긴급 체포 후 처형되었을 때 탄탈론 성에 딸들과 함께 8년간 감금되었다. 1433년 풀려난 뒤 1437년 제임스 1세가 암살된 후 자신의 땅과 작위를 되찾았고, 1458년에 사망했다.
    • 로버트 스튜어트: 1421년에 사망했다는 것만 전해진다.
    • 월터 스튜어트: 1425년에 아버지와 함께 처형되었다. 그의 아들인 앤드류 스튜어트는 스코틀랜드 국왕 제임스 3세의 최측근이 되어 25년간 스코틀랜드 총리로서 활약했으며, 또다른 아들인 월터 스튜어트의 증손자인 헨리 스튜어트는 스코틀랜드 국왕 제임스 4세의 미망인인 마거릿 튜더의 세번째 남편이 되었다.[7]
    • 알락산더르 스튜어트: 1425년에 아버지와 함께 처형되었다.
    • 뚱뚱한 제임스 스튜어트: 1425년 가족들이 모조리 체포되었을 때 겨우 탈출해 아일랜드로 망명해 1429년에 그곳에서 사망했다.
    • 이사벨라 스튜어트: 제12대 뷰캐넌 영주 월터 뷰캐넌의 부인.

[1] 데이비드 드 모브레이의 부인.[2] 제14대 일크 영주 존 스윈튼의 부인.[3] 제1대 론 영주 로버트 스튜어트의 부인.[4] 제7대 더글러스 백작 제임스 더글러스의 부인.[5] 제7대 로스 백작 알락산더르 레슬리와 초혼, 제1대 딜레턴의 핼리버튼 영주 월터 드 핼리버튼과 재혼.[6] 제1대 캠벨 영주 던컨 캠벨의 부인.[7] 다만 마거릿과의 자녀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