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0><colcolor=#fff> 마르크 발렌베리 Marc Wallenberg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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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24년 6월 28일 |
영국 런던 | |
사망 | 1971년 11월 19일 (향년 47세) |
스웨덴 후딩에[1] 올랑겐 호수[2] | |
직업 | 사업가 |
학력 | 하버드대 MBA |
1. 개요
마르크 "Boy-Boy" 발렌베리(Marc "Boy-Boy" Wallenberg)는 스웨덴의 은행가이자 기업인으로 스톡홀름 엔스킬다 은행(Stockholms Enskilda Bank / SEB) CEO였다. 발렌베리 가문의 일원이기도 하다.2. 생애
1924년 영국 런던에서 은행가인 마르쿠스 발렌베리(Marcus Wallenberg Jr.)와 도로시 매케이(Dorothy Mackay)[3]의 아들로 태어났다.학사 학위는 없으며 1949년 하버드 대학교 경영대학원를 졸업하고 1952년까지 아버지의 지시에 따라 뉴욕, 제네바, 런던, 파리, 뒤셀도르프에서 은행원을 하며 경영 수업을 배웠다.
1953년 SEB 부사장이 되었고 1956년 부회장, 1958년에는 회장으로 승진한다. 1959년에는 스웨덴 은행 협회 부회장에, 1961년에는 회장에 취임한다. 1971년 사망 당시 67개 기업의 이사였다.
3. 사망
1971년 11월 18일 목요일, SEB는 정기 이사회를 열었다. 발렌베리는 전 날 회의 때문에 스웨덴 베르나모(Värnamo)에 있었기 때문에 그 날 아침 일찍 스톡홀름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탔다. 전 날 회의에서 발렌베리는 아직 그룹 승인을 받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힐테브룩에 새로운 펄프 공장 건설을 시작한 이유를 묻는 질문을 받았다. 문제는 발렌베리가 "계약 위반으로 고객들에게 손해 배상을 하는 것보다 환경법 위반으로 기소되는 것이 낫다"고 답변한 것. 이 발언이 언론에 의해 보도되면서 큰 논란이 일었고, 발렌베리는 이사회에서 아버지 마르쿠스 발렌베리에게 호되게 혼이 났다. 그 날 저녁에 이탈리아 대사관에서 열린 리셉션에 참석한 뒤 발렌베리는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다음 날 그의 차는 올랑겐 호수에서 발견되었다. SEB의 부사장인 야콥 팔름스티에르나(Jacob Palmstierna / 1934 ~ 2013)와 페더 본데(Peder Bonde)가 정오쯤 현장에 도착하여 차 근처에서 발렌베리의 시신을 확인 후 신원을 확인했다. 발렌베리는 사냥용 소총을 사용하여 자살했다.
발렌베리는 평소 과한 업무로 인해 큰 압박과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하며 우울증도 있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아버지로부터 호되게 꾸짖음을 당하자 자살을 선택한 것으로 추정된다.
4. 여담
- 1955년 결혼해 2남 2녀를 낳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