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리처드 피츠로이 Richard Fitzroy | |
생몰년도 | 미상 ~ 1246년 6월 | |
출생지 | 미상 | |
사망지 | 잉글랜드 왕국 칠엄 | |
아버지 | 존 왕 | |
어머니 | 아델라 드 워렌 | |
아내 | 로헤세 드 도버 | |
자녀 | 리처드, 이사벨라, 로레트 | |
직위 | 초대 칠엄 남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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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존 왕의 사생아. 제1차 남작 전쟁 시기에 아버지를 위해 반란군과 맞섰다.2. 생애
잉글랜드 왕국의 국왕 존 왕과 서리 백작 하멜린 드 워렌의 딸 아델라의 사생아다. 생년월일과 출생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존 왕은 아들 리처드를 풀버트 2세 드 도버의 딸이자 상속녀인 로헤세 드 도버와 결혼시켰다. 리처드는 이 결혼 덕분에 칠엄 성과 켄트주 및 에식스주 내 12개 장원을 챙길 수 있었으며, 초대 칠엄 남작이 되었다.1215년 아버지에 의해 기사에 선임되었으며, 제1차 남작 전쟁이 발발하자 아버지를 따랐다. 그는 여러 문헌에서 왕실군 사령관이자 여러 성의 성주로 언급되었다. 특히 1216년부터 1218년까지 버크셔의 월링포드 성과 그 교구를 통치했고, 1217년부터 버크셔의 보안관을 역임했다. 1217년 8월 24일 샌드위치 해전에서 함선을 지휘하여 적 기함을 공략하고 프랑스 해적인 수도자 외스타슈를 체포해 처형했다.
1219년 제5차 십자군 원정에 참여해 이집트의 다미에타 항까지 항해했지만, 십자군이 패배한 후 잉글랜드로 돌아왔다. 그 후 월링포드를 왕실에 돌려줬지만 버크셔의 보안관 직위를 유지했다. 1223년 '헨리 3세의 동생' 리처드가 웨일스 웜정을 단행했고, 1225년 스코틀랜드 국왕 알락산더르 2세와 함께 캔터베리 순례를 떠났다. 이 리처드가 존 왕의 합법적인 아들 리처드인지, 아니면 사생아 리처드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1225년 푸아투 원정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켄트에서 특별세를 징수하는 일에 참여했다. 1227년 예루살렘으로 순례했다가 1년 뒤 돌아왔고, 1230년 헨리 3세의 브르타뉴 공국 원정에 참여했으며, 1242년 윌리엄 바르돌프와 함께 브리스톨 베이의 가장 큰 섬인 룬디 섬을 기반을 둔 해적들을 토벌하고 그들의 지도자들을 런던으로 이송해 재판과 처형을 집행했다. 1246년 6월 칠엄 영지에서 사망했다.
리처드는 로헤세와의 사이에서 리처드[1], 이사벨라[2], 로레트[3]를 낳았다. 로헤세는 리처드가 사망한 뒤 1250년에서 1253년 사이에 저명한 순회 판사였던 윌리엄 드 윌튼과 재혼했다. 1261년 2월에 사망했으며, 그녀의 영지는 헨리 3세의 왕비인 프로방스의 엘레오노르에게 양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