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르노 드 샤르트르 Regnault de Chartres | |
생몰년도 | 1380년경 ~ 1444년 4월 4일 | |
출생지 | 프랑스 왕국 오드프랑스 온상브레이 | |
사망지 | 프랑스 왕국 투르 | |
아버지 | 엑토르 드 샤르트르 | |
어머니 | 블랑슈 드 클레르몽네슬 | |
형제 | 피에르, 엑토르 | |
직위 | 랭스 대주교, 프랑스 총리, 프랑스 추기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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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프랑스 왕국 랭스 대주교, 프랑스 총리, 프랑스 추기경. 샤를 7세의 대관식을 주관한 것으로 유명한 인물이다.2. 생애
1380년경 프랑스 왕국 오드프랑스 지역 온상브레이에서 리용앙보베시스와 온상브레이의 영주이며 노르망디와 피카르디의 수자원 관리인을 맡았던 엑토르 드 샤르트르와 블랑슈 드 클레르몽네슬[1]의 아들로 출생했다. 형제로 피에르와 엑토르가 있었다. 일찍이 성직자의 길을 걸었고, 생 피에르 드 보베 대성당의 참사회원이 되었다가 1404년 학장으로 선출되었다. 이후 훗날 교황 요한 23세가 될 파리 회계원장 발다사레 코사의 시종관이었으며, 1414년 1월 2일 랭스 대주교로 선임되었다. 1415년 콘스탄츠 공의회에 참석했다. 1418년 프랑스 국왕 샤를 6세의 부관이자 랑그독, 리옹, 마코네 지방에서 도팽 샤를의 고문을 역임했다.1424년 3월 28일 도팽 샤를의 총리가 되어 1428년 11월 8일까지 역임했고, 오를레앙의 평의회에 참여했다. 1425년 8월 7일 도팽 샤를로부터 비에흐종의 관리 임무를 맡았다. 1429년 7월 17일 랭스에서 도팽 샤를이 프랑스 국왕 샤를 7세로서 거행한 대관식을 주관했으며, 10월 10일 사절단의 일원으로서 생드니로 가서 잉글랜드 국왕 헨리 6세 치하 총리였던 테루안 주교 루이 드 룩셈부르크와 협상했다. 1435년 7월 6일 아라스에서 부르고뉴 공작 선량공 필리프와 샤를 7세의 평화 협정이 체결될 때 참여했으며, 프랑스와 잉글랜드 사이의 입장차를 해소하기 위해 칼레에서 외교 활동을 수행했다.
1436년 4월 4일 아그드 교구의 행정관을 역임했으며, 6월 24일 투르에서 도팽 루이와 스코틀랜드 국왕 제임스 1세의 딸인 스코틀랜드의 마거릿간의 결혼식을 주재했다. 1439년 3월 17일 교황 에우제니오 4세로부터 오를레앙 주교구의 후원자로 선임되었으며, 오를레앙 공작 샤를 1세 도를레앙과 클레브 공작 아돌프 1세의 딸인 마리 드 클레브의 결혼식을 주재했다. 1439년 12월 18일 피렌체에서 열린 공의회에 참석했으며, 1440년 8월 1일 프랑스 추기경 칭호를 받았다.
1444년 멘드의 주교직을 맡았고, 사순절이 진행 중이던 4월 4일 투르에서 샤를 7세와 만나 프랑스와 잉글랜드의 평화에 관해 논의하던 중 갑작스러운 중병에 걸려 사망했다. 사후 인근의 작은 형제회 수도원에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