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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ajoon Ryu
1970년 ~
1. 개요
대한민국의 작곡가.2. 생애
1970년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났다. 현대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 폴란드 크라코프 음악원을 졸업했다.3. 작품 목록
3.1. 오페라
- '장미의 이름(Il nome della Rosa)' 중 서곡 (2010)
3.2. 관현악곡
- 소프라노, 합창, 관현악을 위한 진혼교향곡 (2007)
- 교향시 (1996)
3.3. 합창
- 칸타타 '붉은 십자가(Rubns Crux)' (1999)
3.4. 앙상블
- 현을 위한 신포니에타 (2015)
- 현을 위한 '로소(Rosso)' (2008)
3.5. 협주곡
- 피아노 협주곡 (2017)
- 마림바 협주곡 (2015)
- 현악사중주 협주곡 (2013)
- 첼로 협주곡 '눈물(Lacrima)' (2010)
3.6. 실내악
3.7. 독주곡
4. 논란 및 사건사고
4.1. 지휘자 구자범과의 갈등
류재준, 구자범 교체 논란 사과 "자존심 때문에 불거진 일"구자범 항목에도 간단하게 설명되어 있다.
4.2. 언론 보도 및 경력에 대한 이슈
사실 위의 사건과 평소 자주 내비치던 자극적인 언동으로 인해 현재도 안 좋은 이미지가 있는 인물이다 보니 작곡가로써도 불호 여론이 있는데, 아마 이에 대한 대표적인 성토글은 다음과 같을 것이다. 작곡가 류재준의 보도 및 홍보 자료 검증에 대해 요약하자면 당시 류재준의 폴란드 훈장 '글로리아 아르티스' 수상의 의미를 부풀려서 보도한 점에 대한 미약한 검증 행태를 지적하고 류재준의 작곡가로서의 명성에 대한 언론 보도와 실제 현실에 괴리가 있다고 꼬집는 글이다.다만 저 글 역시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위해서는 해당 블로그의 서술 방향이 대체로 '경력 마케팅' 자체에 부정적인 경향이 깊다는 점, 그리고 글에서 말하는 이른바 '명성'이라는 것이 소위 '작곡 학계', 특히 실험성을 추구하는 계파(?)에 국한되어 있다는 점도 짚을 필요가 있다. 글에 언급되어 있듯 류재준은 실험성과는 거리가 먼 작곡가인데, 그의 스승이 전위음악에 손 뗀 지 오래였던 크시슈토프 펜데레츠키이니 이상할 건 없다. 사실 이 시점에서 전위음악 작곡가 중심의 미학적 담론에 류재준이 다뤄지기는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류재준이 이에 반감을 품어 작곡가 협회를 공격하며 생긴 문제에 대해서는 글에서 잘 다루고 있다. 그러나 류재준의 해외 위촉 및 연주, 음반 발매, 이런저런 페스티벌의 상임 작곡가 역임 등은 엄연히 그의 작품에 대한 기록과 해외 연주자 인맥 풀 등으로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고 작곡계 내에서 알아주냐 마냐와는 상관관계가 없기 때문에 단지 '유학하며 류재준의 명성을 들은 적 없다'는 개인적 경험에 비춰 판단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류재준의 경력에 대한 평가절하적인 시각 역시 재고될 필요가 있는데, 오히려 류재준에 대해 더 알아보면 국내에서는 중앙음악콩쿠르 1위, 해외에서는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4위[1] 등 소위 '아방가르드 진영'이라는 쪽에서 인정할 만한 능력이 없다면 생각하기 힘든 성과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무슨 이유인지 언제부턴가 이런 점을 본인의 프로필에 전혀 다루지 않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그의 작곡가로서의 능력 자체는 입증되던 시기가 있었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는 있다. 굳이 과거형으로 표현한 이유는 전통 답습 위주의 작법 특성과 대중적 소통을 우선시하는 본인의 가치관 상 현재로서는 그의 행보가 예술적 담론으로부터 좋게 말하면 자유롭고 나쁘게 말하면 동떨어져 있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