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대한민국의 혐일 유튜버이다. 연세대 출신에 일본 단과대학인 일본 세이부 문리대학에서 부교수로 근무한적이 있다.(편차치가 매우 낮은 지잡대이다.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japanlife&no=141982 ) 일본에서 실제로 살아본 경험을 바탕으로 일본과 일본인에 대한 영상을 주로 올린다.
원래는 일본을 비난하는 것을 콘테츠로 삼아 활동하였고 지금은 주로 이재명 지지 정치 유튜브로 활동을 재개하고 있다.
2. 성향
일본의 여러 부분에 대해 비난하는 것을 주 콘텐츠로 삼고 있으며 이에 관련된 서적까지 내기도 했다. 2019년도부터 당시 사회적인 분위기에 맞물려서 일본의 여러 부분에 대해 비난하는 콘텐츠로 큰 조회수를 얻기 시작하였다. 일본에 대해서는 단순한 반일을 넘어서 확실한 혐일 성향으로 일본을 비난하는 것에 주요 콘텐츠였다.
대표적으로 몇가지 사례만을 바탕으로 일본인의 국민성을 전체적으로 평가 및 비하하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크다. 게다가 말실수라고 변명할 수 있는 라이브 동영상도 아닌 녹화 촬영된 유튜브 영상에서 모자란 민족과 같은 표현을 사용하며 #[1] 일본을 비난하는, 반일을 넘어 혐일유튜버라고 평가하는게 적합하다. 또한 김교수는 일본 제조업에 대해 카메라의 예를 들며 "좀 더 작게 개선하는 데만 역량이 있을 뿐이다."라고 비난하며 https://www.bobaedream.co.kr/view?code=best&No=324217&vdate=, https://www.etoland.co.kr/plugin/mobile/board.php?bo_table=etohumor03&wr_id=697407&sca=&sfl=wr_subject&stx=%C7%F5%BD%C5&spt=-61291&page=1 일본산업은 혁신이 없다고 비난하지만 애초에 제조업 분야에서 김교수의 말이 얼마나 실없는 소리인게 애초에 몇몇 특수한 사례를 제외한 제조업의 대부분은 혁신이 아닌 양산에 초점을 두고있다. 애초에 유명한 카메라 제조회사중 독일의 라이카 스웨덴의 핫셀블라드 덴마크의 페이즈 원 스위스의 Sinar 또한 자잘한 개선만 주기적으로 이루어졌지 무언가가 크고 갑작스럽게 바뀐 건 없다. 이 논리대로면 저 3국의 회사들 모두 혁신이 없다는 뜻이 된다.
또한 한국이 그래픽 메타렌즈를 개발한 것은 맞으나 영국과 공동개발하였다는 이야기는 쏙 빼놓고 말하는 지독한 자문화 중심주의 행태를 보이고 있으며 거기다가 카메라의 혁신의 기준을 무조건 렌즈의 변형으로만 초점을 맞추는 롯본기 김교수의 주장도 전혀 근거가 없다. 실제로 SLR카메라 역시 그전부터 존재했지만 큰 대중성은 없었는데 1954년 아사히 광학 공업에서 SLR 카메라의 큰 변화를 불러 일으켰는 퀵 리턴 미러 기능을 최초로 만들어 내면서 SLR카메라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는 변화를 일으켰으면 그리고 위 내시경 카메라도 1950년대에 일본에서 최초로 위 내시경에 카메라 기능을 도입시켜 내시경으로 위를 촬영할수 있게 되어서 본격적인 제대로된 내시경이 의료계 전반적으로 보급되었으며 그리고 캠코더만 해도 사실 비디오카메라는 그전부터 있긴 했지만 그 이전의 캠코더는 하나같이 방송용 캠코더 뿐으로 80년대에 소니에서 그러한 캠코더를 크게 개선시켜 소비용 캠코더를 최초로 만들어서 일반인들도 자유롭게 길거리에서 캠코더로 영상을 촬영을 할수 있는 변화를 일으켰고 또한 일본 교세라에서 99년도에 최초로 휴대폰에 사진을 최대 20장까지 찍을수 있는 카메라 기능을 추가해서 이후 삼성같은 기업들은 그러한 휴대폰에 카메라를 넣는 폰카 기능을 따라했고 2000년도 일본 샤프에서 휴대폰으로 컴퓨터 연결 없이도 자유롭게 사진을 찍을수 있고 화상통화나 셀카 사진촬영보다는 디지털 카메라를 사용하는 대중적인 방식이였던 사용자를 향해 반대 방향으로 사진을 찍도로 설계된 최초의 지금과 같은 방식의 폰카를 출시해서 (2000년도 삼성에서 만든 폰카도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을려면 일일히 컴퓨터에 연결해야 했기 때문에 교세라에서 만든 VP-210과 별큰차이가 없어서 애초에 제대로 된 지금과 같은 방식의 같은 방식의 폰카를 기준으로는 2000년도 샤프에서 만든 현대식 방식의 Sharp SHO4 폰카가 최초다.) 애플,모토로라 많은 휴대폰 기업들은 본격적으로 그러한 폰카방식을 따라해서 본격적으로 폰카시장이 형성이 되는 변화를 일으켰듯이 오히려 카메라 역사에서 렌즈의 변화 못지않게 카메라 본체의 변화가 더 큰 혁신적인 변화를 불러 일으켰다.
더불어 한국은 MP3 플레이어, 폴더블 스마트폰,5G,수소연료전지차 등을 개발하였다고 혁신적이라고 주장하며 [2]일본은 혁신이 없는 민족성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정작 이 논리대로면 일본 또한 캠코더, 현대식 탄소봉 건전지, 플래쉬 메모리, QR 코드, 폰카메라,고속열차,청색 LED,리튬이온전지 등 충분히 혁신적이라고 할 수 있는 발명품이 수없이 많이 존재한다. 당장 인류의 문명 발달에 기여한 사람에게 수여하는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인 노벨상 수상 업적만 보더라도 30명의 일본인 노벨상 수상자 중,(일본 국적의 노벨상 수상자가 25명 일본출신의 노벨상 수상자가 4명이고 일본의 단체가 1개이며 그중에서 과학상이 25개에 문학상이 3개 평화상이 2개이며 노벨과학상중 일본 국적의 노벨상 수상자는 22명 일본 출신의 노벨상 수상자는 3명이며 노벨 문학상중 일본 국적의 노벨상 수상자는 2명 일본 출신의 노벨상 수상자는 한명이다.) 새로운 발견이나 발명으로 상을 받은 사람만 따져봐도 여럿이 있다. 대표적으로 팔라듐 촉매 결합 반응을 이용한 크로스 커플링을 개발해 노벨 화학상을 받은 스즈키 아키라 및 네기시 에이이치, 그리고 현재 태양광,전기차 배터리,전자기기에 필수적인 리튬이온 전지의 발명으로 노벨 화학상을 받은 요시노 아키라, 지금 현재 디스플레이용 백라이트, 자동차 조명,일반조명, 백라이트,의료분야,수많은 전자제품등에 필수적으로 쓰이는 청색 LED의 발명으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아카사키 이사무, 나카무라 슈지 그리고 유도만능 줄기세포의 발명으로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받은 야마나카 신야등.
애초에 김교수가 주장하는 '혁신적'이라는 기준 자체도 모호한데, 무엇을 혁신적이라 하는지 정확한 제대로된 기준도 언급도 없이 본인이 주장하는 극히 일부의 사례만 소개해놓고서는 일본은 혁신이 없는 민족이라고 자기결론을 내리고 끝난다. 이는 김교수가 스스로 주장한 '일본에 대한 환상을 깨기 위한 불가피한 과격함'을 넘어서 그냥 국가차별 및 인종차별적 발언일 뿐이며 또한 애초에 혁신이란 무조건 새로운 재료로 제품을 만드는것만 혁신인게 아니라 원래 기존에 있던 것을 크게 개선시키고 도입해서 새로운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것 역시 혁신에 해당한다.당장 21세기 최고의 발명품인 스마트폰인 애플의 아이폰만 해도 원래 피쳐폰 시절부터 휴대폰에 있었던 인터넷 기능을 크게 개선시키고 구글에 있는 여러가지 서비스, 애플리케이션 기능들을 가지고 도입해서 만든 것이다.그리고 김교수는 MP3 플레이어,SNS, 태블릿 PC, 디스플레이를 접을수 있는 폴더블 폰등이 한국이 처음으로 만들었다고 주장하지만 이 또한 사실이 아니다.(최초의 MP3 플레이어는 미국에서 만든 listen up player로 96년도에 미국 기업 Audio Highway에서 listen up player라는 MP3 플레이어를 최초로 개발해서 97년도에 CES상을 수상받았고 최초의 SNS는 97년도에 미국에서 만든 식스디그리즈 닷컴으로 식스디그리즈 닷컴은 친구 프로필을 생서하고 친구추가와 친구목록과 검색기능을 갖추면서 현재 SNS 기능을 정립한 최초의 SNS로 99년도에 나온 한국의 싸이월드보다 2년먼저 앞서 만들었으며 태블릿 pc는 미국 기업인 GRID에서 89년도에 최초로 만들었으며 최초의 디스플레이를 접을수 있는 폴더블폰은 2006년도에 네덜란드 필립스사 에서 만든 Readius가 먼저다. .)
또한 영상을 통해서 일본의 문화는 폭망하고 있다고 비판을 넘어서 비난을 하는데 https://www.youtube.com/watch?v=oH5bYAiBxj0 일본 음악의 아이돌 분야 등 일부 분야에서 나타난 현상을 문화 전반으로 확대해석했다는 점이 문제다. 서브컬처에 해당하는 일본의 게임은 닌텐도, 소니 등이 버티고 있는 전통적으로 강세를 보이는 분야였고, 일본의 애니메이션도 일부 작품에 있어 작품성에 대한 비판은 존재하더라도, 꾸준히 명작이라는 평가를 듣는 진격의 거인, 원펀맨, 귀멸의 칼날같은 작품들이 꾸준히 등장하고 있으며 전세계적으로도 일본의 콘텐츠 파워 순위는 여전히 매우 탄탄하다. https://theqoo.net/square/2712533069 또한 일본은 창의성이 없고 표절만 한다고 비난하지만 위에글 처럼 발명품 노벨상 등 여러분야 에서 스스로 발명한 것들이 많고 문화 쪽에서도 표절작품도 많이 존재하지만 히사이시 조 ,사카모토 류이치 같은 많은 작곡가들이 만든 좋은 음악들, 게임쪽에서는 젤다의 전설, 포켓몬, 슈퍼마리오 시리즈 같은 여러 명작 게임들과 만화,애니 쪽에서도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었던 드래곤볼, 나루토, 아키라등 수많은 명작들이 존재한다.
또한 김교수는 일본이 노벨상이 많은게 일본이 과거 전재도중에 했던 생체실험 때문에 일본의 의료과학등이 발전되고 일본이 또 로비를 많이 해서 그렇다고 주장하는데 이 또한 허무맹랑한 소리로 https://www.youtube.com/watch?v=c7dw66OIhMM&lc=UgzSkY22vhpNwl0HGkN4AaABAg 애초에 731부대의 어떤 실험 결과가 의학의 어떤 부분에 발전에 기여하였다는 기록 자체를 어떠한 의료과학 저널에서도 찾아볼수 없을 뿐더러 731부대 관련 의학 논문들도 행해진 실험들은 케이스 스터디 수준에 불과하거나 의학적 중요성이 크지 않은 실험일 뿐이기 때문에 극히 제한된 부분에 대해 참고 자료로서만 기여할 수 있는 수준이므로 731부대의 실험이 일본이 의료과학 기술의 발전에 큰 공헌을 했다고 보기 어렵다. 미군 사령부는 731부대원의 행동과 우편물 등을 살피면서 그들이 소장한 데이터가 세균 무기를 만드는데에 유용하다는 것을 파악해서 적성국에 손에 넘어가지 않도록 조취를 취하기 위해서 일본측으로부터 사법거래를 하는 대가로 731부대의 자료 데이터를 요구했다. 그렇게 일본 당국은 미국 측에 각종 데이터와 자료를 제공했는데 그중에서 세균 무기를 이용한 생체 실험과 생체 해부 병리학 표본과 PPT등도 있었으며 실제로 일본의 의료과학등에 많은 기여를 한것도 731부대의 생체 살상 실험이 아닌 전쟁도중 부상자 치료, 상이군인의 재활등이 목적으로 이루어진 연구와 실험이다. 한마디로 일본의 의료과학 발전에 731부대의 생체실험이 공헌한 것은 하나도 없다고 보아도 무방한데 애초에 731부대의 연구 자체가 어떻게 하면 사람을 더욱 잔인하게 죽일 수 있을까 연구하던 수준이였기에 사람을 살리는데 초점을 맞추어서 발전한 현대의 의료과학에 유용한 것을 찾았다는게 더 이상한 일이며 거기다가 김교수의 주장대로라면 일본에게 731부대 자료를 받은 미국이나 일본 못지않게 전쟁도중 생체실험을 많이 했는 독일도 생체실험 때문에 노벨상을 많이 수상했다는 소리가 된다.
그리고 일본의 로비활동 역시 나름 노벨상 위원회 소속 학자들이 일본 학자들이 쓴 논문 연구결과에 조금더 관심을 가지고 보아서 일본이 노벨상을 많이 수상받는데 조금 도움을 주는 수준이지 절대로 실력도 없는데 노벨상을 수상받을수 있을 정도는 아니다.
분명히 실력이 뒷받침 되어야 하며 실제로 일본도 그렇지만 물리학,화학, 의학상등 노벨상등을 수상받은 수상자들은 하나같이 자신이 상을 수상받은 분야에서 큰 새로운 발견이나 발명을 남긴 경우들이 많고(대표적으로 팔라듐 촉매 결합 반응을 이용한 크로스 커플링을 개발해 노벨 화학상을 받은 스즈키 아키라 및 네기시 에이이치, 그리고 현재 태양광,전기차 배터리,전자기기에 필수적인 리튬이온 전지의 발명으로 노벨 화학상을 받은 요시노 아키라, 현재 전자제품,조명,디스플레이,의료분야 등 수많은 산업분야에 쓰이는 청색 LED의 발명으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아카사키 이사무, 나카무라 슈지 그리고 유도만능 줄기세포의 발명으로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받은 야마나카 신야등, 기후의 물리적 모델링, 기후 변화의 정령화와 지구 온난화의 확실한 예측으로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받은 마나베 슈쿠로 등)애초에 노벨상이 단순히 로비를 많이 한다고 남발을 하는 상이였으면 절대로 100년 넘게 지금까지 전세계적으로 권위있는 상으로 위상을 자랑하지 못했을 것이며 미국 다음으로 중국이 가장 노벨상을 많이 수상을 했을 것이다. 애초에 일본이 노벨상이 아시아에서 최다일만큼 그많은 수상을 많이 받은 가장 큰 이유는 일본정부의 적극적인 기초과학 투자와 일본의 기초과학이 그만큼 탄탄하고 오랫동안 한 우물을 계속파서 그 분야에서 새로운 발견,발명으로 자신이 속한 분야에 성과를 내는 부분에서는 뛰어나기 때문이다.(일본이 노벨상을 많이 수상받는 이유 https://www.youtube.com/watch?v=12dpw66TEug)또한 본인의 영상에서 일본인들을 가리켜 부족한 민족, 븅신같은 민족이라는 인종차별, 헤이트 스피치성 발언도 해되는 명백한 인종차별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본인 유튜버에서 유튜브에서 고급지다는 이미지를 지닌 일본 요리가 독창적인 게 뭐가 있냐며 일본 요리에 대한 비난만 나열하며 https://www.youtube.com/watch?v=5_AR8eh9Cfk , https://www.youtube.com/watch?v=5UPX4bePASg 본인의 주관적인 입맛임에도 불구하고 밥이 시큼하다 것부터 시작해서 초밥이란 건 단순하게 좋은 생선, 좋은 쌀, 좋은 간장, 좋은 와사비, 쓴 밥 위에 날것을 얹은 것 뿐이라며 폄하하는 식인데 이는 초밥에 대한 무지이다. 애초에 모든 요리는 좋은 재료를 써면 어류나 육류만 해도 적당히 소금간만으로도 맛나는것은 물론 초밥도 에도마에 스시,니기리 스시, 하코스시 등 여러가지 조리법이 있으며 애초에 좋은 재료를 정확히 고르는것 역시 숙련이 필요한 실력이며 또한 원래 스시는 애초에 생선을 발효해서 먹기 시작한 것으로 유래했는 발효음식으로 지금도 후나즈시등 발효된 스시들도 있다. 스시 자체가 그냥 무한리필 뷔페집 스시와 전문적인 오마카세 식당에서 나오는 스시와 맛과 질에서 크게 차이가 나듯 스시를 먹는데 가장 감칠맛이 좋은 밥알의 비율 개수를 정확히 맞추어서 만들어야 하고 전문가의 실력에 따라 맛의 차이가 크게 나는 제대로 다양한 스시를 먹기 위해서는 좋은 밥알의 비율 개수를 정확히 맞출수 있는 전문적인 실력과 기술 그리고 생선을 발효시키는 오래된 시간이 필요한 음식이고 또한 초밥의 밥알 개수 정확하게 쥐는 게 수십년 계속하다보면 익혀지는 것인데 이게 뭐가 대단하냐고 비난하는데, 그 수십년이 누구 개집 이름도 아니고 그 정도로 오랫동안 만든 요리에 그 정도로 파고들었다는 것은 해당 분야의 전문가라고 칭송받아야 마땅하지 하찮다고 비난받을 사항이 아니다. 또한 위의 주장 그대로 적용하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음식 중 하나인 비빔밥도 별다른 조리법도 없이 대충 먹다 남은 잔반 한데 섞어서 위에 계란후라이를 올리면 끝인 별거 아닌 요리로 폄하할수 있다. 게다가 초밥을 까기 위해서 일본의 유명 초밥집을 방문한 버럭 오바마 등 미국 대통령을 비롯한 서양 고위 정치인들이 먹고 호평한 이력을 폄하하기 위해 프랑스나 이탈리아는 맛에 섬세하지만(그리고 그런 프랑스 요리도 별로 대단한게 없다고 까는 모습을 보인다.) 대부분의 서양인들은 그렇지 못하며 특히 미국,영국 사람들은 양만 많으면 그냥 좋아한다는 과도한 일반화 발언까지 하였다.(영국 요리야 맛이 없는 걸로 유명하긴 하지만 영국 요리가 맛없다는건 다른 서양 국가들 뿐만 아니라 영국 내에서도 영국인들 한테도 비판받는 부분이고 김교수는 단순히 미국,영국 뿐만 아니라 서양인들 거의 대부분이 맛도 제대로 못본다고 같이 까면서 일반화 하는 모습 등을 보인다.)거기다가 미슐랭 스타를 받은 일본 유명 초밥집들을 까기 위해 미슐랭 가이드가 로비를 받고 자신들의 타이어를 더 팔아먹기 위해서 배포한 맛집 지도일뿐인 근본없는 가이드북(미슐랭은 타이어를 팔아먹기 위해 만든 것이 아니라 운전자들이 어디까지나 운전하다가 배가 고프면 가까운 맛집에 가서 즐기라는 의도로 만든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서 순수하게 남 좋은일 하는 영리기업은 없기 때문에 타이어 소비를 늘리려는 의도도 없다고 할수 없다.하지만 1900년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120년 넘게 운영해온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요리 맛집 가이드북의 대표명사가 될 정도의 위엄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에 단순히 로비를 받고 타이어를 팔아먹기 위해서 로비를 받고 미슐랭 스타를 주고 허위 정보들을 마구잡이로 퍼트렸다면 절대로 지금과 같은 위상을 가질수 없었을 것이다.)이라고 폄하하기 까지 하였다.
또한 일본의 대중적인 요리중 하나인 타코야끼 또한 덴마크의 에이블스키버라는 요리를 베꼈을 뿐이며 에이블스키버가 더 먼저 나왔으니 타코야끼는 그냥 하찮은 모방품에 불과하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는데, 이말대로라면 한국인들이 자주 먹는 대표 음식인 김밥역시 일본의 노리마키에서 유래된 음식이므로 노리마키보다 역사가 짧은 하찮은 모방품이 되어버린다. (김에다가 밥과 속재료를 쌈처럼 싸먹기 시작한건 한국이 먼저일수 있지만 현대 김밥의 본질적인 형태인 김밥말이라 불리는 대나무발 위에 김을 깔고 그 위에 밥을 편 뒤 속재료를 얹고 돌돌 말아서 잘라서 먹는 방식의 지금과 같은 형태의 김밥은 일본 에도시대부터 시작되어서 일제시대때 한반도에 전파되었다.) 애초에 발명은 모방에서 나온다고 할정도로 완전히 무에서 유를 발굴하는 경우보다 기존에 있던걸 조금식 변화시키고 개선시켜 발전해나가는 것인데 김교수의 이런 발언은 이런걸 전부 무시하는 것이며 일본이 음식을 저어먹거나 밥그릇을 들고 먹는 문화를 가지고 천박하다고 말하는 지독한 자문화 중심주의를 보이는데 이런 식이면 일본인들 역시 한국인들이 고개를 숙이고 밥그릇을 먹는것을 가지고 개처럼 먹는다고 비난하거나 여러명이서 찌게를 먹을때 덜어먹지 않고 같이 숟가락을 넣고 먹는 것을 가지고 천박하다고 비난할수 있다.
또한 사케도 우리나라가 가르쳐주고 일본인에게 '그냥 삭혀'라고 말한 게 사케라는 이름이 되었다는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또 단무지가 한국에서 일본으로 전파해 주었다는 카더라식 낭설을 사실인것처럼 말하거나[3] 낫또도 요리가 아니라 식재료라 칭하고 일본의 야채절임(츠케모노) 중 배추절임도 우리나라가 가르쳐줬으며 오니기리도 쌀밥과 소금만 있으면 되고 야키토리도 그냥 꼬챙이에 고기 구워주는 게 뭐가 독창적이고 멋있어 보이냐며 폄하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이 또한 허무맹랑한 소리가 대부분인데, 우리나라의 김치도 임진왜란 이전 일본에서 고추를 수입하기 전까지만 해도 그냥 배추에 소금을 절이고 후추를 넣어 만드는 백김치가 기본적이고 양념에 절인 빨간김치는 임진왜란 이후 일본으로부터 고추를 수입하고 난 이후부터 김치재료로 고추를 쓰면서 등장하였다. (그전에 한국에도 고추가 있었다는 주장도 있지만 그건 일종의 고추냉이고 지금과 같은 빨간고추는 임진왜란때 일본을 통해서 전파되었다.) 그리고 일본 야채절임은 상술한 방식 외에도 '겨'라는 일본식 누룩에 재우는 방식이 있으며 오니기리(주먹밥) 또한 밥에 소금만 쳐서 먹는 것도 있기는 하지만 예전부터 안에 장아찌를 넣거나 양념을 더하는 등 여러 레시피들이 존재하는 전통음식이다. 야키토리 또한 닭껍질, 닭가슴살 등 여러 부위에 소금이나 가게마다 독자적으로 개발한 여러 특제 소스를 만드는등 다양한 변화가 생겼고 최근에는 고급화가 진행되어 고급 닭으로 조리한 야키토리를 취급하는 요리집도 존재한다.
우동도 어느 한 일본인이 '칼국수가 한반도에 넘어온 이후 생긴 음식이다.'라고 주장한 개인의 견해를 바탕으로 '우동은 한국이 일본에게 전수해준 음식이다!'라는 이상한 주장을 펼친다.(애초에 우동의 기원중 가장 유력한 설은 중국에서 전파된 면요리가 일본에서 전파된 일본식으려 변형되었다는 것이 현재 우동학계에서도 가장 유력한 설로 보고있다.) 애초에 칼국수는 국물의 맛을 내는 기반이 멸치인 반면 우동은 국물의 맛을 내는 기반이 가츠오부시로 국물요리의 핵심인 국물맛을 내는 기반자체도 서로 다르다.애초에 이런 논리대로면 붉은 김치는 일본이 우리나라에게 고추를 유통시켜준 덕분에 만들 수 있어졌으니 붉은 김치의 원산지는 일본이라고 주장하는 셈이며 또한 그런식의 주장이라면 애초에 국수자체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칼국수 역시 중동에서 중국을 통해 한국에게 전파해준 음식이라는 주장이 가능하다.
그뿐만 아니라 스시를 포함한 일본음식은 맛도 다 비슷하고 영양분도 불균형하다고 비난하지만 사실 스시도 밥에는 탄수화물과 생선부분에는 단백질과 비타민이 있어 나름 영양분이 균형되게 잡힌 음식이며 스시도 단순히 어떤 생선을 쓰느냐에 따라서 맛도 다 다르고(참치같은 붉은 살 생선을 쓰며 고소한 맛이 중심이 되고 반대로 광어같은 흰살생선을 쓰며 단백한 맛이 중심이 된다.) 또한 초밥도 유부초밥이나 계란초밥 김말이 초밥이 존재하듯이 마냥 생선만 가지고 초밥을 만드는게 아닌 여러가지 다양한 재료들이 들어간다.또한 일본음식에도 가츠오부시를 사용해서 국물에 감칠맛을 쓰는 경우가 많고 전반적으로 일본음식은 일본 가정식을 보면 알수있듯이 밥에다가 해산물과 야채를 중심이기 때문에 단백질과 탄수화물 비타민을 전부다 두루두루 섭취할수 있는 편이며 다른 나라 음식들과 비교해서 고기 요리가 좀 부족한 편이기는 하지만 가라아케, 돈까스등 조금 부족할 뿐이지 고기요리가 아예 없는것도 아니다.
거기다가 일본음식의 영양분이 부족해서 일본이 각기병 문제로 고생했다고 비난을 하는데 일본이 한참 근대화를 하던 시대당시 일본군에 유행했던 각기병은 당시 일본은 자국군인들의 사기를 올리기 위해서 당시 부자들의 상징이였던 쌀밥을 제공하고 반찬은 알아서 사먹으라고 부식비를 제공했는데 쌀밥은 잡곡밥이나 보리밥과 달리 비타민 B1이 부족했는데 거기다가 군대라는 열악한 환경에 심한 스트레스를 받던 병사들이 부식비를 술값으로 탕진하거나 착실하게 모아서 가족들에게 송금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였기 때문에 일본군에게 각기병이 크게 번질수 밖에 없었고 민간에서는 당연히 군대보다 각기병 발생비율이 현저이 낮았으며 각기병에 걸려도 소바 한그릇 먹으면 금방 낫는 경우가 대부분이여서 별 문제가 안되었다. 당시는 아직 비타민 B1이란 존재가 발견되기 전이여서 각기병의 원인에 대해서 모르다가 당시 일본해군 군의총감인 다카키 가네히로가 조사결과 각기병과 각기병에 걸리지 않은 차이가 식단에 있다는걸 파악하고 보리밥 위주의 식단으로 변경하려 했지만 당시 부의 상징이였던 흰쌀밥 대신 보리밥 식단으로 변경하자 병사들의 반발이 심해서 카레를 이용한 카레라이스를 도입해서 각기병을 해결해서 러일전쟁이 끝난 이후에는 일본군에서도 각기병은 사실상 거의 사라졌고 비타민 B1은 1910년에 일본인 학자 스즈키 우메타로에 의해 처음으로 발견되어서 전세계적으로 각기병 예방의 길을 마련하였다.
또한 김교수는 일본인들이 철학이나 전략이 없는 민족이라고 비난하면서 https://www.youtube.com/watch?v=jdC9mvQ5QsI, https://www.youtube.com/watch?v=vWuxWiIWs4I 그 대표적인 예시로 제로센과 스바루 360의 예를 들면서 서양의 전투기와 자동차의 속력을 따라잡을 생각은 하지않고 그저 철판을 얇게 해서 속력을 올리는데만 집중했다면서 말하지만 애초에 연료의 기술력을 올리는 일은 쉬운일이 아니고 상당히 오래 걸리는 일이며 거기까지 기다릴려면 그 사이에 전쟁이 다 끝나니 당시 군부가 폭주해서 이성을 잃어 인명경시가 만연한 일본군부가 정권을 장악해 조종사의 생명같은건 어떻게 되든 상관하지 않고 전쟁에 이기는게 우선이라고 생각해서 그런 미친짓을 자행한 경우로 그러한 당시 일본군부의 문제점들을 현재 일본인들에게 비판받고 있는 부분이며 스바루 360의 경우는 스바루 360이 나왔을때 당시인 50년대 당시에는 아직 일본도 자동차가 대중화되지 않았서 지금처럼 교통사고가 많이 일어나지도 않았기 때문에 교통사고에 대한 안전불감증이 가득했던 시대라는 한계점이 있었고 이후 스바루를 비롯한 일본의 자동차 회사들도 자체적으로 자동차 엔진 기술을 만들고 기술을 올리고 안전에 신경쓰면서 훗날 일본자동차는 전세계적으로 안정성을 믿고 탈수 있는 자동차로 신뢰받고 팔리게 되면서 일본은 세계적인 자동차 수출대국이 된다.
그리고 개인에 높은 철학과 전략 창의력이 필요한 건축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프리츠커상의 경우 ,일본인만 9명이 수상하며 https://n.news.naver.com/article/015/0004956668 현재 전세계적으로도 최상위권을 달리고 있고 일본식 성인 왜성들의 경우에도 일본은 전국시대때부터 잦은 내전으로 인해서 전국시대 때부터 적이 성을 공격하기 어렵게 만들어서 최대한 적은 병력으로도 효율적으로 성을 방어하기 좋고 성의 구조를 적이 공격하기 어렵게 복잡하게 만들고 반면 아군은 구조에 특징에 따라 다양한 목적으로 활용 가능하게 설계 축성하는 방식이 크게 발전하는 (실제로 일본 전국시대때도 왜성을 함락할려면 10배가 넘는 병력이 필요하거나 임진왜란때도 일본이 조선의 거점지역에 자신들 방식인 일본 전국시대 축성술로 설계하고 축성했던 왜성들은 단기간에 지어진 성들인데도 본성급 왜성들은 전쟁도중 전부다 수성에 성공했다.) 나름의 전략 철학에 필요한 건설부분에서 옛날부터 높은 두각을 나타냈다.(한국같은 경우는 옛날부터 대규모 외침이 많았기 때문에 성이 함락되면 다 죽는 그야말로 총력전의 양상이여서 전쟁이 터지면 마을의 주민들도 같이 들어가서 지낼수 있는 구조로 지어진게 한국식 성들의 특징이라면 일본식 성들은 일본같은 경우는 주로 자신들끼리 내전위주였기 때문에 어차피 상대방 영주의 항복을 받아내면 그 밑에 있는 백성들은 전부다 자신들한테 노동력을 제공하는 자신의 재산으로 고스란히 들어오기 때문에 자신들끼리 전쟁이 터져도 밑에 주민들을 잘 건드리지 않았기 때문에 적은 병력으로도 최대한 효율적으로 방어할수 있을 정도로 군사기지 역할에 초점을 맞추어서 발전하였다.)
또한 일본의 메이지 유신역시 서양으로부터 불평등조약에 맞서 존왕양이를 앞세우되 무조건적인 쇄국이 아닌 서양 외국세력의 강력한 군사력 앞에 위기 의식을 스스로 느끼고,자신들의 힘이 강해질 때까지는 자존심을 버리고 해외 견물을 통해서 서양으로부터 배울 것을 배워서 인재를 양성하고 부국강병을 이룬훈에 서양으로부터 불평등 조약을 수정해서 서양열강들로부터 살아남겠다는 현명한 전략과 또한 당시 무능한 에도막부를 무너뜨리기 위해서 일어난 내전인 보신전쟁도 전쟁이 장기화되면 서구열강들이 간섭할수 있다는 위험을 알고 당시 메이지 정부측이 에도막부측과 협상을 통해서 자신들에게 맞선 에도막부측 인사들을 모두 사면해주는 조건으로 에도막부측의 항복을 받아서 최대한 내전을 빨리 끝내고(그렇게 협상으로 에도막부측의 항복을 받아냈기 때문에 이후 에도막부측의 항복을 거부하는 남은 막부군 잔당들만 처리하고 전쟁을 끝낼수 있었지 그렇지 않았다면 당시 에도막부측은 나름 에도성에서 오랫동안 농성할수 있는 전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전쟁이 남북전쟁이나 훗날 한국전쟁처럼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았고 그러면 일본은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그야말로 경제가 파탄이 났을것이다. ) 이후 근대화에 총력을 가해 국력을 향상시킨뒤에 당시 영국과 러시아의 그레이트 게임이란 시대상을 이용해서 영국에 줄을서서 지원을 받아서 러시아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는 전략으로 전세계로부터 열강으로 인정받을수 있었다. 그러한 메이지 유신역시 당시 일본의 국가경영의 철학과 높은 전략으로 성공했는 대표적인 경우다. 국내에서는 일본이 싸움한번 하지 않고 굴복해서 근대화에 성공했다는 주장도 있지만 그러한 주장은 잘못된 주장으로 애초에 메이지 유신을 설계하고 일으킨건 당시 미국의 요구에 굴복해서 개항을 한 에도막부가 아닌 그런 에도막부의 정책을 크게 불만을 품고 에도막부를 무너뜨릴려고 했던 조슈번과 사츠마번으로 조슈번과 사츠마번은 직접 서양과 대적하여 직접 시모노세키 전쟁, 사츠에이 전쟁으로 서양과 전쟁까지 하다가 패배한뒤 살아남기 위해서는 서구열강으로부터 배워서 국력을 길러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에도막부를 무너뜨리고 메이지 유신을 일으킨 것이다.
그리고 당시 서구열강의 문물은 누가 보아도 대단하다는 것을 알수 있기 때문에 다른 국가들보다 먼저 받아들인게 별거 아니다라는 식으로 치부하는 경우도 국내에 있지만 애초에 어떤 국가든 간에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는건 자신들의 기본체제 자체를 무너뜨릴수 있기 때문에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는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당장 조선만 해도 기존 집권층들의 반대로 서양으로부터 문물 수입이 늦었는걸 생각해보자.(당장 일본도 실제로 메이지 유신이후 개혁에 대한 반대로 수많은 사무라이들의 반발이 있었고 그러한 반발을 모두다 진압하고 난 이후에야 안정적으로 근대화를 진행할수 있었다.)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려면 그만큼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고도 국가의 혼란을 최소한 할수있는 경영과 전략이 있어야 한다.또한 당시 미국의 남북전쟁이 터져서 한동안 일본에게 간섭할수 없었는 등 일본에게 나름 운빨을 작용했지만 그런 운빨을 미국이 남북전쟁이 터지고 남북전쟁 끝나고도 전후복구를 하는 사이 그 사이에 재빨리 에도막부를 무너뜨려 다른 서구열강들이 전쟁도중 간섭할수 있는 빌미를 최대한 차단시키고 근대화에 총력을 가해서 타국이 쉽게 건드릴수 없을 정도로 국력향상에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또한 관료들도 최대한 부정부패를 자제하고 필요하면 자신들 월급까지 삭감해서 국가에 보태는 헌신등 나름 일본의 노력과 실력도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일본이 러일전쟁을 준비하는 기간에는 일본의 메이지 덴노부터 고위 관료들까지 자신들 월급을 절약해서 국방비에 보태는 정도였다. 동시대의 조선과 청나라가 집권층들이 주도해서 부정부패 매관매직을 자행하고 조선의 집권층이 임오군란, 갑신정변, 동학농민운동 등에서 스스로 외세의 군대를 끌여들어서 결과적으로 망국상황을 더 악화시켰다는 걸 감안하면 최대한 외세의 간섭없이 자신들끼리 내전을 끝내고 관료들이 직접 자신들 월급까지 삭감해서 국방비에 보태었는 일본의 모습은 높이 평가할만하다. )
이렇듯 김교수는 일본과 일본인들을 일방적으로 폄하하고 비난하는 성향을 크게 보인며 자신의 유튜버에서 자신에 주장하는 반박하는 댓글에 욕설을 하기도 하는 모습도 보여주었다.https://arca.live/b/singbung/33786523 지금 현재는 완전히 이재명 찬양 유튜버로 전향해 문재인과 문재인을 지지하는 친문들과 이재명을 비판하는 비명계쪽을 비난하고 이재명을 일방적으로 지지하는 정치 유튜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