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본 M. 톰킨스 Rathvon M. Tompkins | |
본명 | 레스본 매클러 톰킨스 Rathvon McClure Tompkins |
출생 | 1912년 8월 23일 |
미국 콜로라도주 볼더 | |
사망 | 1999년 9월 17일 (향년 87세) |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렉싱턴 | |
복무 | 미합중국 해병대 |
최종 계급 | 미국 해병 소장 |
복무 기간 | 1936~1971 |
학력 | 콜로라도 대학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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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군인.2. 생애
콜로라도주 볼더에서 태어났고 1935년 콜로라도 대학교를 졸업하고 OCS과정을 수료하고 1936년 해병 소위로 임관했다. 제6해병연대 2대대 소속 소대장으로 복무하다가 2차 대전이 발발하고 존 마스턴 준장 휘하의 제1해병임시여단 소속으로 아이슬란드에서 독일군과 전투를 치러 독일군의 공세를 저지했다.이후 샌디에이고로 복귀해 군수장교가 되었고 1942년 소령으로 진급해 제1해병사단 연대 작전장교로 임명되었다. 길더 D. 잭슨 대령과 함께 뉴질랜드로 건너가 태평양 전선대비 훈련을 경험하고 과달카날 전역에서 활동했고 이후 증원군으로 파견된 알폰스 디케어가 이끄는 제2해병사단과 합류해 전투를 치렀다. 기푸 전투 당시 일본군 제2보병사단을 상대로 642명을 사살하고 많은 수의 포로를 잡아 동성훈장을 수여받았다. 하지만 전투 후 말라리아에 걸려 몇 개월을 병원에 있어야했다. 퇴원 후 타라와 전투당시 베티오섬에서 기관총, 포화를 무릅쓰고 상륙을 성공적으로 진행시켜 은성훈장을 수여받았으며 중령으로 진급했다.
하지만 전투에서 피해를 입고 전투 후 하와이로 돌아와 재편성 후 마셜 제도, 사이판 전투에 29연대 1대대장으로 참가했다. 적 저격병에 의해 총상을 입었으나 전차와 함께 인근을 수색하라 지시해 저격병을 사살했다. 이후 포탄 파편인한 부상으로 전장에서 이탈할때 까지 여러 영웅적인 활약을 해 해군십자장, 퍼플하트를 수여받았다.
퇴원 후 해병대사령부 제럴드 C. 토머스 휘하에서 복무하다가 종전을 맞이했다. 전후 합동참모학교를 수료하고 유럽에서 복무했다. 1951년 대령으로 진급했고 합동참모본부에 있다가 1953년 휴전 1개월 전 6.25 전쟁 당시 한국으로 건너와 랜돌프 M. 피트 휘하의 제1해병사단의 참모장으로 임명되었다. 7월 24일 중공군의 맹공이 시작해 방어선이 무너지자 5연대장으로 임명되어 중공군을 격퇴했다.
전후에도 DMZ에 있다가 주한해병대 정보참모에 임명되었고 동성훈장을 받았다. 해군전쟁대학을 수료하고 오키나와에서 복무하고 1960년 준장으로 진급했다.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 관타나모로 파견되었으며 1963년 제2해병사단 부사단장으로 임명되었다. 도미니카 내전당시 해럴드 P. 스미스의 대서양 함대에 소속되어 전투를 치러 훈공장을 수여받았다.
베트남 전쟁 당시 제3해병사단장인 브루노 호크머스가 남베트남에서 헬기사고로 전사하자 베트남 해병대사령관 헨리 W. 부스 주니어의 추천으로 제3해병사단장이 되었고 부사단장인 루이스 메츠거와 함께 다낭에 도착해 콘친, 기오린인근에서 작전을 펼쳐 200명의 북베트남군을 전사시켰다.
이후 펼쳐진 케산 전투당시 총지휘관으로 기지를 담당하고 있던 데이비드 E. 론즈와 함께 항공지원을 받으며 북베트남군을 격파했다. 하지만 케산 기지가 철거되었다. 이 공으로 해군수훈공로훈장을 수여받았다. 이후로도 다이도 전투에 참가하고 1968년 본국으로 돌아가 상륙군 지휘관을 담당했다가 1971년 퇴역식을 가졌다. 1999년 뇌졸중으로 사망했고 알링턴 국립묘지에 안장되었다.
3. 여담
- 부인은 2차대전 당시 나바호족 암호병을 고안한[1] 클레어턴 보겔의 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