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dio Televisyen Malaysia
말레이시아의 국영방송. 약칭인 "RTM"으로 잘 알려져 있으나, 여기서는 사정상 약칭으로 들어올 수 없다.
1. 역사
1946년 4월 1일 당시 말라야 연합을 지배하고 있던 영국이 두 개의 라디오 방송국을 설립했는데, 말레이어 방송국인 "라디오 말라야"와 영어 방송국인 "블루 네트워크"였다. 이 중 라디오 말라야가 오늘날 RTM의 전신이다. 다만 애초에 말라야에 있던 건 아니고, 지리적으로만 말라야일 뿐 실제로는 속하지 않았던 싱가포르에서 송신을 했었다가 후에 말라야령인 쿠알라룸푸르로 이전했다.1957년 8월 31일 말라야가 독립했으며 이후 1959년 1월 1일 "라디오 말라야"와 "라디오 싱아푸라"로 나눠졌다가, 1963년 9월 16일 사라왁, 사바, 싱가포르의 가맹으로 말레이시아가 신설되면서 둘은 다시 "라디오 말레이시아"로 합쳐졌다. 이 때 라디오 싱아푸라는 라디오 말레이시아 산하의 지역방송으로 기능했으나 2년 후 싱가포르의 축출로 인해 싱가포르 문화부 소속의 RTS로 분리되었으며 오늘날의 미디어코프로 이어진다.
이후 1969년 "말레이시아 텔레비전"과 합병하여 지금의 RTM이 되었다.
2. 채널
2.1. TV 채널
처음에는 TV1 하나 뿐이었는데, 물론 처음에는 TV1이라고 부르지 않았으나 1969년 TV2의 개국으로 기존 채널에 TV1이라는 이름을 부여했다.현재 잘 알려진 TV 방송은 TV1과 TV2이다. 하지만 정작 멀쩡히 방영 중인 TV3가 없는데, TV3는 아예 다른 방송사이다. 다만 개국초기에 한해서 RTM 방송국이 한시적으로 운영에 관여한적은 있다. 그 외에도 디지털 방송에 한하여 TVi나 뮤직 액티프를 운영하고 있다.
1972년부터 EBS 격의 TV Pendidikan을 운영하기 시작했으나, 이런저런 이유로 운영사도 오락가락하다가 2008년 최종적으로 폐국하였다.
주요 프로그램들은 외국에서 수입해오는 비중이 높은 편. 말레이시아 자체가 중국계와 인도계가 많이 사는 나라이니만큼 당연한 일이기는 하다. TV1은 말레이인들의 시청비율이 높기 때문에 자체 프로그램의 비중이 높지만 TV2의 경우에는 외국에서 수입해온 프로그램들이 많이 방영된다. 중국과 인도, 홍콩, 대만 등으로부터 프로그램을 많이 수입하는 편.
2.2. 라디오 채널
여기서 볼 수 있다. 지역방송의 경우, 전국 각주에 하나씩 있으나, 사라왁과 사바의 경우는 전국방송 외에도 세부적인 지역방송이 하나하나씩 있다.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서 타 지역의 방송을 청취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나, 유일하게 쿠알라룸푸르와 슬랑오르만이 서로 청취가 가능하다.
3. 검열?
RTM 자체가 공영방송이 아니라 정부기관 직속의 국영방송이다[1]. 여기에 더해서 국내 방송에 관한 업무를 총괄하므로 방송심의를 담당하는데다가, 결정적으로 말레이시아가 오랜 기간 동안 1당 독재국가나 마찬가지였던 영향으로 그만큼 방송심의가 까다롭다.공륜의 사전심의를 연상케 하는 것이며, 단순히 방송사들이 각자 행하는 사후심의가 아니다. 이 때문에 영상물이나, 심지어는 가요조차도 RTM의 심의를 거치지 않으면 방송에 내보낼 수 없는 것은 물론 애초에 시중판매조차 할 수 없다. 하지만 단순히 부적절한 부분만 삭제하는 정도가 아니라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탄압하는 수단으로 사용하면서 상당한 비판을 받고 있으며, 궁극적으로 말레이시아 가요계의 발전을 저해하는 원인으로 자리잡고 있다.
특히 마하티르 모하마드가 집권하면서 한창 보수적인 색체를 띄던 시절에는 별의별 핑계를 대서 많은 노래들을 얄짤것 없이 짤랐는데, 황당한 건 이들의 불합격 조건들이 다름아닌 창법이 마음에 안 들어서, 종교적 문제, 편곡이 마음에 안 들어서 등이었다. 덕분에 수많은 피해자들이 속출했는데, 고전음악의 전설 람라 람의 "Kau Kunci Cintaku (Dalam Hatimu)", 잠리의 "Tugu Cinta", 완의 "Jawapan Yang Kelabu"와 "Terlerai Kasih"가 그저 편곡이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걸렸던 적이 있었다. 결국 이들 노래들은 다시 편곡해서 아슬아슬하게 통과를 받아 무사히 히트를 쳤다.[2] 그 외에도 피해자들은 어마어마했는데 여기를 보면 상상 이상으로 많이 나온다. 그 중 최악의 피해자는 다름아닌 신인 락 밴드 아바빌로, 1989년 데뷔하자마자 낸 1집 수록곡들(총 10개) 중 "Cinta Belum Berakhir" 빼고 다 짤렸다.
유독 1989년 당시 피해자들이 가장 많이 속출했는데, 이게 다 당시 정보부(지금의 정보통신부) 장관이었던 모하메드 라흐맛 때문이었다. 오늘날 이 인간 덕에 말레이시아 가요계가 제대로 발전하지 못했고,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신랄하게 까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