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Dip Pen, 鐵筆[1]금속으로 만들어진 펜촉을 잉크에 찍어서 사용하는 펜.
비슷한 외형인 만년필과 혼동하는 사람이 매우 많은데, 만년필 이전 세대의 펜이다.
2. 역사
인류가 문명을 일궈내고 문자를 발명한 고대에는 문서를 쓰기 위해 뾰족한 자연물의 끝을 깎아 펜으로 만들었다. 대표적인 것이 갈잎 펜과 깃털펜이다. 광물을 작고 정밀하게 가공하는 세공기술이 발전하면서 기존의 자연물 펜을 대체하기 위해 금속 펜촉과 그 펜대를 만들었다. 속이 비어있는 갈잎이나 깃털이 잉크를 흡수해 필기할 수 있는 구조를 따라해서 만들어졌다.이러한 펜을 좀 더 발전시켜 잉크를 일일이 찍지 않아도 되도록 잉크를 펜대에 내장시킨 것이 바로 만년필이다. 볼펜은 아예 촉에 꼭 맞는 볼을 활용해 펜촉조차도 필요없게 만든 펜이다.
본디 펜이라고 하면 바로 이 딥 펜들을 말하던 것이었지만, 만년필이나 볼펜 등 더 발전한 필기구의 등장으로 주류 필기구에서 물러나게 되면서 '펜'이라는 명칭은 일상에서 좀 더 흔하게 볼 수 있는 이후의 필기구를 칭하는 말로 바뀌게 되었다. 딥 펜이라는 명칭은 해석하자면 (잉크에) 찍어 쓰는 펜이라는 의미이며, 잉크를 찍어 쓰는 고전적인 펜과 현대의 펜을 구분하기 위해 붙여진 명칭이다.
3. 용도
현대의 딥펜은 대중성과 실용성을 완전히 상실했다. 만년필조차 볼펜이나 샤프에 비하면 불편하다는 소리를 듣는 판국인데 그 만년필보다 편의성이 떨어져 자리를 내주고 밀려난 딥 펜들이 일상생활용으로 쓰일리가 만무하다. 딥펜을 쓰기 위해선 잉크통, 펜, 펜 홀더를 한꺼번에 휴대해야 한다. 사실상 아날로그적 느낌을 즐기는 매니아들만 사용하는 취미용 필기구에 가까워졌다.한편 미술 분야에서는 여전히 쓰이고 있다. 여러 잉크를 사용할 수 있고 다양한 글씨체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캘리그래피 같은 손글씨 분야에서 자주 쓰인다. 디지털 작업이 보편화된 이후에 생겨난 웹툰과는 달리 만화계에서는 딥 펜을 많이 썼다. 특히 일본 만화계에서는 오늘날에도 딥 펜으로 작업하는 이들이 몇몇 남아있다. 작가 후기 페이지를 보면 딥 펜으로 작업하는 자신의 모습을 그리는 일본 만화가들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한국 만화가들도 과거에는 먹물이나 딥 펜(주로 G펜)을 사용했으나, 웹툰시대로 넘어오면서 이제는 거의 디지털 작업으로 전환한 상태이다.
4. 가격과 내구성
펜촉과 펜대라는 아주 간단한 구조로 되어있기 때문에 가격적으로는 그리 비싸지 않다. 만년필과 비교해볼 때 가격도 그다지 비싸지 않다. 딥 펜 세트를 장만하는데 1만~2만원 안팎. 다만 위에서 보듯 한정된 용도로만 쓰이는 물건이다 보니 굳이 싼 걸 찾아서 쓰기보다는 자기한테 맞는 괜찮은 가격대의 선의 물건을 찾는 편이다.깃펜보다 당연히 내구성이 좋지만 한 펜촉을 계속 사용하면 탄성이 낮아지기 때문에 교체를 해줘야 한다. 펜촉에 잉크를 묻혔을 때 필압에 의해 생긴 수평의 금속피로 흔적이 좀 크다 싶으면 교체할 때가 된 것이다. 작가마다 편차는 있는데 쓰면 쓸수록 선이 굵어지기 때문에 1페이지마다 교체하는 작가가 있는가 하면 24p(주간 연재 1화분)마다 한 개씩 바꾸는 작가도 있다. 그런데 어떤 작가는 계속 펜촉 끝을 날카롭게 갈아가면서 7년간 썼다는 사례도 있다.
옛날에는 만드는 기술이 그렇게 좋지 않아 종이를 찢어먹거나 펜촉이 구부러지기 십상이었지만 현재는 제조기술이 발달해 상당한 퀄리티를 가진 제품이 나와있다. 제브라에서 만든 제품이 일본에서 가장 메이저하다. 심지어 티타늄을 섞어 만든 프로용 펜촉을 판다. 내구성이 상당히 좋은 듯. 독일이나 프랑스에서는 펜촉을 금으로 만든 제품도 있다. 가격은 약 20만원대.
주요 생산 브랜드로는 브라우스, 루비나토, 스피드볼 워터맨, 레오나트, 니코, 세일러, 타치카와, 윌리엄 미첼, 헌트 등이 있으며
한국에선 동네 화방에서도 니코의 스푼펜과 G펜, 니코 사의 마루펜은 구할 수 있으며 브라우스랑 루비나토등의 회사는 인터넷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다른회사는 취급하는 곳이 거의 없다.
딥펜의 친구로 깃펜이 있다. 그리고 현재 인터넷에 딥펜이라 검색하면 대부분 루비나토의 딥펜이 나온다. 문구점만 가도 몇십개씩 파는데 가격은 5,000원에서 7,000원정도 한다. 깃펜 중 펜촉을 바꿀수 있는건 루비나토가 유일하다.
5. 구조
- 펜촉: 금속으로 된 닙. 종류에 따라 다양한 경도와 연성(탄력)을 가지고 있으며, 연성이 큰 것일 수록 압력에 의한 선의 굵기 조절이 다양하다.
- 만화용
- 스푼펜: 물방울 무늬처럼 생긴 펜촉. 기본적인 촉으로 불리기도 하며 G펜보다 다루기 쉽고 강약 조절은 조금 덜하다. 과거에는 프로들 중 순정만화 작가들이 종종 이용하는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 G펜: 연성이 높아서 필력이 받쳐준다면 획의 강약을 다채롭게 구현할 수 있는 펜촉. 대신 필압 조절을 잘 해야 한다. 소년만화 작가들이 주로 애용하지만, 장르와 상관 없이 대다수의 만화가가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다루기는 어렵지만 표현력이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 마루펜: 둥근펜[2], 혹은 맵핑펜이라고도 한다. 연성이 거의 없고 가늘어서 로트링 펜이나 스테들러 펜처럼 일정한 얇은 굵기의 선을 낼 때 주로 사용한다. 스푼펜이나 G펜보다 작기 때문에 다른 펜대를 사용한다.[3]
- 스쿨펜: 강약 조절은 어렵지만 그만큼 균일한 굵기의 선을 그리기에 좋은 펜촉. 문자 그대로 학생들이 필기하기에 좋은 펜이다.
- 캘리그라피용: 펜촉의 모양으로 구분하며 크게 3분류로 나뉜다.
- 플랫 포인트
- 라운드 포인트
- 스퀘어 포인트
- 펜축(펜대/홀더): 펜촉을 끼워서 쥐기 위한 긴 막대. 나무, 플라스틱 등 다양한 재료로 만들어지며 자기 취향에 따라 취사선택 할 수 있다. 나무로 된 쪽이 필압에 따라 쥐기 편하게 변형되지만 내구성은 다른 재질보다는 약하다. 모나미 153도 펜축으로 사용 가능하다. 노크하는 부분의 틈에 촉을 끼워넣을 수 있다. 단, 펜축을 사는게 더 필기감이 좋다.
유리로 된 딥펜도 있다. 펜대만 유리인 것이 아니라 닙 부분까지 통째로 유리다. 매우 아름답지만 닙이 유리라서 구부러지지 않기 때문에 보통 딥펜과 달리 펜선에 강약을 넣기가 불가능하다. 하지만 강약 걱정없이 그냥 쉭쉭 써도 글씨가 나오기 때문에 더 쓰기 간편한 면도 있다. 무엇보다 닙이 구부러져서 잉크를 튕기는 일이 없다. J. Herbin 등에서 '글라스펜'이라는 이름으로 판매중이며 유럽 관광지에서도 흔히 판다. [5]
또한 일본이나 중국 작가들 중에는 대나무(세죽)를 깎아서 펜으로 만들어 쓰는 사례가 있는 모양이다. 선은 다소 굵게 나오지만 색다른 느낌을 주기 때문에 만화가뿐만 아니라 화가들도 직접 대나무를 깎아 쓰는 경우가 있다.
6. 사용법
펜촉을 펜축에 끼운 뒤, 펜촉을 잉크에 살짝 적셔 쓰면 된다.잉크가 마를 때까지 시간이 걸리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흡수용지나 흡수지로 감싼, 손잡이가 달린 반월 모양의 도구(블로터)로 글 위의 잉크를 걷어낸다. 문지르면 잉크가 번지기 때문에 한번 수직으로 누른다는 느낌으로 할 것. 블로터가 나오기 전에는 고운 모래를 뿌려 잉크를 걷어냈다.
펜촉이 굉장히 날카롭기 때문에 일반적인 볼펜이나 연필 쓰듯이 필압을 강하게 썼다가는 종이 찢어먹기 딱 좋다. 만년필 같은 펜촉이 있는 필기구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처음 썼을 때 자주 겪는 일 중 하나. 딱히 세게 누르지 않아도 잉크가 배어나오기 때문에 힘을 빼고 쓰는 게 좋다.
딥 펜은 과거에는 제도용 잉크를 쓰는 것이 정석이었으나 현재는 인터넷이 아니면 구하기 어렵다. 한국파이롯트의 제도용 잉크는 한때 전국 문방구를 석권한 물건이었지만 이제는 딥 펜 자체를 잘 쓰지 않으므로... 작가에 따라서는 잉크에 물을 약간 타서 선이 잘 나오도록 하기도 한다. 아니면 도구만 딥펜이고 먹물을 찍어 쓰기도 한다.[6]
딥 펜의 간단한 구조상 만년필용 잉크와 캘리그라피용 잉크 모두를 사용할 수 있다. 다만 만년필용은 많이 흐르는 느낌이 있어서 주의가 필요하다. 거꾸로 만년필에 일부 캘리용 잉크를 사용할 경우 막혀서 수습이 안되는 경우가 생기므로 금물. 만년필용 잉크가 캘리그라피용 잉크보다 더 묽다.
딥펜은 잉크를 한 번 찍어서 쓸 수 있는 글자의 수가 많지 않기에 레저부아(reservoir)라는 것을 달아 한번에 머금는 잉크의 양을 늘리기도 한다. 그러나 레저부아가 호환되는 펜촉이 많지도 않을 뿐더러 잘 판매하지도 않기 때문에 펜대에 스프링 등을 달아 레저부아 대용으로 쓰는 경우도 많다.
또한 대부분의 딥펜촉에 진하오 x450 만년필 피드의 크기가 적절하게 들어맞아 이 피드를 이용해 펜대를 개조하여 더 많은 잉크를 머금을 수 있게 만들 수 있다. 대신 세척이 매우 힘들어질 수도 있다. 닙에 따라 녹이 슬 수도 있으니 조심하자.
이 때문에 레저부아를 사용하지 않는 일반적인 경우, 가스 라이터를 사용해서 펜촉을 한 번 지진 후 쓰라고 권장하기도 한다. 가스라이터의 불꽃이 새 펜촉의 기름기를 날려 주기 때문이다. 즉 지포 라이터를 사용해서 지지면 안 된다.(...) 이후 도기(막자사발, 밥그릇 등) 아래쪽의 거칠거칠한 면에 살짝 갈아쓰는 게 포인트.
펜촉이 벌어졌을 경우에도 라이터를 사용해서 지지면 모아진다.
[1] 스타일러스 펜과 동음이의어다.[2] 마루라는 것이 일본어로 '둥글다'는 의미의 '마루이'(丸い, まるい)에서 따왔다. 실제로도 가늘기도 가늘지만 둥글게 생겼다. 촉을 정면에서 보면 둥글게 말려있다.[3] 두 종류의 펜촉을 모두 끼울 수 있는 펜대를 사용해도 된다. Tachikawa 브랜드로 나오는 나무 펜대가 스푼펜 및 G펜, 마루펜 두 종류 모두 끼워지는 대표적 모델.[4] 다른 각도의 제품도 존재[5] 다만 유럽측 제품은 대부분 중국제 OEM 글라스펜인 경우가 부지기수라 제품 퀄리티가 별로며, 한국에서 양질의 글라스펜을 얻기 위해서는 일본 등지에서 파는 수제 글라스펜을 사야 한다. 대표적인 예시로 오사카 델타 문구점이 있다.[6] 만화 원고 작업시 강점으로, 먹물은 지우개질에도 끄떡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