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16 09:28:50

도미닉 시릴로

<colbgcolor=#000><colcolor=#fff> 도미닉 시릴로
Dominick Cirillo
파일:도미닉 시릴로.jpg
출생 1929년 7월 4일
미국 뉴욕 주 뉴욕 시 이스트할렘
사망 2024년 1월 14일 (향년 94세)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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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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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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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마피아
신체 178cm

1. 개요2. 생애3. 여담4.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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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권투 선수 출신으로 미국 뉴욕 시의 5대 마피아 조직 중 하나인 제노비스 패밀리의 두목급 간부가 된 인물.

일명 과묵한 돔(Quiet Dom)[1]

빈센트 지간테의 심복이자 대리인으로, 자신의 아들을 살해하라고 지시했다는 의혹이 있는 인물이다.

2. 생애

도미닉 시릴로는 뉴욕 시에서 프로파치 패밀리(현 콜롬보 패밀리) 행동대장(Caporegime) 알폰세 시릴로의 아들로 태어났다. 한평생 마피아로 살며 단 한차례의 체포 경력도 없었던 그의 아버지는 1963년에 사망했다.

도미닉 시릴로는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약 1년간 미들급 권투 선수 활동을 했다. 그는 라이트헤비급 선수였던 빈센트 지간테의 스파링 파트너이기도 했다. 5전 1승 3패 1무 1KO의 최종 성적표를 받아든 시릴로는 지간테와 함께 루치아노 패밀리(현 제노비스 패밀리)에 가담했다.

1953년 도미닉 시릴로는 하루 평균 2만 달러(현대로 환산하면 약 20만 달러)를 벌어들인 헤로인 밀매 사업의 총책으로 인정되어 약 4년간 복역했다.

출소 이후 행동대장(Caporegime)이 된 도미닉 시릴로는 승승장구했고 1981년에 제노비스 패밀리의 두목(Boss)으로 추대되는 빈센트 지간테의 심복으로 활동했다.
파일:빈센트 지간테, 도미닉 시릴로.jpg
빈센트 지간테와 함께 걷는 도미닉 시릴로
'과묵한 돔' 시릴로는 제노비스 패밀리의 다른 간부들인 '뱃사람 돔' 도미닉 디콰르토(사진), '뚱뚱한 돔' 도미닉 알론지(사진), '대머리 돔' 도미닉 칸테리노(사진)와 함께 두목을 보좌하는 '4인의 돔(The four Doms)' 중 하나로 악명을 떨쳤다. 실제로 빈센트 지간테의 딸 리타 지간테는 가족들과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던 외부인으로 시릴로를 꼽았다.
리타 지간테가 도미닉 시릴로(Quiet Dom)를 언급하는 인터뷰
리타 지간테에 의하면 시릴로는 가끔씩 아버지를 위한 요리를 했고 그를 필두로 5~6명의 외부인들이 항상 곁에 있었는데, 그들은 성탄절 외식이나 새해 전야 외식까지 함께 하는 제2의 가족이었다고 회상했다.[2] 특히 시릴로는 빈센트 지간테존 고티의 갈등이 최고조로 올라온 1988년 담판에서 그를 수행했다.[3]

1997년 빈센트 지간테가 유죄판결을 받고 수감되자 도미닉 시릴로가 그의 대리인이 되어 패밀리의 두목 대행(Acting Boss)을 맡았다. 당시 FBI 간부 존 프리처드는 뉴욕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시릴로는 모든 패밀리를 감독하는 위원회의 지도자이며 미국에서 가장 중요한 마피아 수괴라고 설명했다. 반면 시릴로 본인은 수십 년간 자그마한 집에 살고 검소한 자동차를 타고 다니며 이웃 주민들에게 자신을 권투 선수에 도전했다가 실패한 후 건설업계에 종사하다 은퇴하여 월 510달러의 사회 보장 연금으로 생활하고 있는 사람으로 소개했다.

당시 도미닉 시릴로의 아들 니콜라스 시릴로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1974년에 4만 달러를 주고 구입한 평범한 집에 거주하는 우리 아버지가 어떻게 마피아 수괴냐고 반문했다. 이러한 시릴로의 처세는 과거 19년 동안 패밀리의 두목(Boss)으로 모든 사업을 총괄하며 막대한 재산을 축적했던 카를로 감비노가 대외적으론 자그마한 집에 거주하며 소박한 생활을 한 것과 비슷하다.

1998년 도미닉 시릴로는 심장마비를 겪고 두목 대행(Acting Boss)직에서 물러났다. 당시 뉴욕 타임스는 수감 중인 빈센트 지간테를 대신하여 제노비스 패밀리의 사업을 감독하는 새로운 두목 대행이 로렌스 덴티코(사진)라고 보도했다.

도미닉 시릴로는 회복 직후 즉시 패밀리 지도부에 복귀했는데, 이 사실은 1998년 가을에 NYPD 조직범죄 수사관들이 사업가 앤서니 네그리와 노조 자문위원 마이클 크리미가 교외 레스토랑에서 시릴로와 세 차례나 회동을 가지며 공사 마감일과 노조 인건비에 대해 논의하는 것을 포착한 일화를 통해 잘 알 수 있다. 이 회동이 이루어진 시기는 시릴로가 갓 퇴원했을 무렵이었다. 네그리는 사설탐정•경호원•장갑 자동차를 제공하는 익스플로러라는 보안업체의 사장으로, 그 회사는 1996년에 뉴욕 시 재무부 사무실을 경비하는 300만 달러짜리 공공계약을 체결했다. 1999년에는 400만 달러짜리 재계약을 따냈다. 기록에 의하면 네그리의 회사는 재무부에 6년간 근무한 대가로 총 750만 달러를 받았다. 당초 범죄조직과의 연계가 의심되어 그를 내사•미행하던 수사관들은 극도로 조심한데다 사람을 가려만나는 걸로 유명한 제노비스 패밀리의 지도자 시릴로가 회동에 나타나자 전율에 휩싸였다. 이들과 동석한 크리미라는 사람 역시 마피아•지붕 건설업자•노조 간부 사이를 이어주는 중개인이었다. 한편, 세 사람이 평범한 사업가들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것은 경찰뿐만이 아니었다. 시릴로의 얼굴을 알아본 한 레스토랑 손님은 그가 자리를 뜨자 "저 사람이 혼자 걷고 있는데 누가 총을 쏘지 않는 게 다행이야."라고 일행에게 말했다. 당시 NYPD의 수사는 생각대로 되지 않았고 훗날의 기소 명단에는 셋 중 누구도 없었다.

2000년 도미닉 시릴로는 패밀리 최고 간부 3명과 함께 자신과 가까운 인물을 폭행한 2명의 남자를 살해하는 계획을 논의했다. 당시 두목 대행(Acting Boss) 로렌스 덴티코, 행동대장(Caporegime) 존 바르바토(사진), 행동대장 앨런 롱고(사진)가 회동에 참석했다. 그들은 암살을 실행하기로 결정했고 FBI 정보원도 그 사실을 감지했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계획은 중간에 취소되었다.

도미닉 시릴로는 빈센트 지간테의 형 마리오 지간테(사진)가 약 4년의 복역을 마치고 2001년에 출소하기 전까지 로렌스 덴티코와 더불어 제노비스 패밀리 내에서 가장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여겨진다.

2004년 뉴욕 시 펠햄 베이에 위치한 부동산 사무실에서 도미닉 시릴로의 아들 니콜라스 시릴로가 마약에 취한 채 현장에 있던 보난노 패밀리 행동대장(Caporegime) 도미닉 시칼라, 보난노 패밀리 추종세력(Associate) 빈센트 바시아노 주니어와 언쟁을 벌이는 일이 발생했다.[4] 당시 부두목(Underboss)이 밀고자가 되어 두목(Boss)이 체포된 보난노 패밀리의 어수선한 분위기를 노리고 니콜라스 시릴로가 보난노 조직원들을 모욕했다는 것이 핵심이다. 니콜라스 시릴로는 그 일이 있고 2주일 뒤 실종되었다. 이후 차량은 발견했지만 시신은 발견하지 못했다. 패밀리 추종세력 이하 일반인이 마피아 정규조직원(Made Member)을 모욕하거나 폭행하면 처형될 수 있다는 규율이 있고# 평소 도미닉 시릴로는 아들이 마약 중독자라는 점을 한심하게 생각해 부자관계가 썩 좋지 못하다는 이야기가 파다했다. 니콜라스 시릴로 실종 직후 아버지 도미닉 시릴로는 수색에 협조해달라는 경찰의 요청을 거부했고 보난노 패밀리에 대한 제노비스 측의 보복도 없었다.

니콜라스 시릴로 실종 7개월 뒤 보난노 패밀리 추종세력(Associate) 랜돌프 피졸로가 살해된 채 발견된다.
파일:랜돌프 피졸로.jpg
살해된 랜돌프 피졸로
피졸로는 7발의 총격을 당했고, 주머니엔 1000달러가 넘는 돈이 그대로 들어있었다. 그는 살해되기 전 니콜라스 시릴로 암살 작업에서 본인이 맡은 역할을 여기저기 누설했다고 알려져 있다.

랜돌프 피졸로 암살로부터 1년 3개월 뒤 보난노 패밀리 두목 대행(Acting Boss) 마이클 맨쿠소(사진)가 피졸로 살인을 지시한 혐의로 기소되어 유죄판결을 받는다.[5] 한 정부 당국자는 "피졸로 암살은 다른 마피아 조직원들에게 입을 닫으라는 일종의 경고 메시지로 보인다."라고 밝혔다.

2005년 연방정부는 도미닉 시릴로를 대상으로 수년간 수사 중이었던 공갈 혐의로 기소했다. 체포 당시 시릴로는 FBI 요원에게 옷을 갈아입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곧이어 그는 회색 정장을 입고 옷에 잘 어울리는 중절모와 스카프를 하고 나타나 수갑을 찼다. 이후 치러진 재판에서 약 48년간 법망을 피해온 시릴로는 징역 4년과 배상금 7만 5천 달러의 유죄판결을 선고받았다. 시릴로 수사에 참여한 어느 관계자는 "그는 말수가 아주 적은 정통 마피아다. 우리가 감시하는 내내 누군가의 귀에 속삭이기만 했다. 체포 과정이 이루어지는 동안에는 단 2마디도 안 했다."라고 밝혔다. 특히 수사관들은 시릴로 딸의 집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부엌 식탁에 올려진 입단 명부를 발견했는데, 그 명부에는 이미 사망한 마피아 정규조직원(Made Member)들의 이름 옆에 그들을 대체할 후보들의 이름이 짝을 맞춰 쓰여있었다.

2008년 약 3년의 복역을 마치고 출소한 도미닉 시릴로는 패밀리의 상담역(Consigliere)을 자처했고 빈센트 지간테가 사망한 조직 내에서 원로가 되었다.

2011년 어느덧 정부 측 증인이 된 보난노 패밀리 두목(Boss) 조셉 마시노(사진)는 "도미닉 시릴로가 어머니의 날(Mother's Day)인 2004년 5월 9일에 아들을 살해하라고 지시했다."라는 증언을 했다. 이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니콜라스 시릴로 암살은 전적으로 제노비스 패밀리의 소행이고, 그 정점엔 아버지 도미닉 시릴로가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연방정부는 대대적인 재수사에 들어갔지만 도미닉 시릴로의 살인교사 혐의를 입증할 유의미한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고 기소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2019년 90세를 맞은 도미닉 시릴로의 사진이 공개되었다. 시릴로의 최근 모습을 담은 일부 사진들이 지인들을 통해 간간이 인터넷에 올라오는 것으로 보았을 때 이젠 일선에서 물러나 조직 일에는 거의 손을 뗀 것으로 보인다.

2024년 1월 14일 사망하였다.

3. 여담

  • 1998년에 시릴로가 겪은 심장마비 사건은 드라마 소프라노스 속 필 레오타도가 심장마비를 겪은 후 두목 대행(Acting Boss)직에서 물러나는 각본의 모티브로 추정된다.
  • 빈센트 지간테의 정신질환이 법망을 피하기 위한 속임수였듯, 도미닉 시릴로의 심장마비 역시 같은 목적의 속임수였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당시 지간테 재판으로 제노비스 패밀리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이 높아진 상황이었고 그 관심을 뿌리칠 필요가 있었다. 더구나 시릴로의 퇴원 이후 행적을 봐도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다. 69세 때 심장에 큰 손상을 입었다는 사람이 90세가 넘도록 정정했기 때문.
  • 도미닉 시릴로-니콜라스 시릴로 부자의 이야기는 2013년에 제작된 미국 드라마 바디 오브 프루프 시즌 3 4화 각본에 영감을 제공한 것으로 보인다. 작중 자신의 마약 사업을 위해 뉴욕 최대 마피아 패밀리의 수괴인 아버지에 대항하다 살해당하는 아들의 이름이 니콜라스 루소기 때문. 에피소드 제목은 마피아 정신(Mob Mentality)이다.

4. 관련 문서



[1] 돔은 도미닉의 애칭이다.[2] 일본 야쿠자 야마구치구미의 3대 두목 다오카 가즈오의 딸 역시 가족이 아닌 외부인들이 항상 집에 있었다는 비슷한 고백을 한 적 있다. 관련 영상.[3] 빈센트 지간테 문서의 여담 참고.[4] 니콜라스 시릴로는 마피아 정규조직원(Made Member)이 아니다. 도미닉 시칼라는 2007년에 정부 측 증인이 되어 역대 보난노 패밀리 행동대장 중 4번째로 밀고자가 되는 인물이다. 빈센트 바시아노 주니어는 당대 보난노 패밀리 두목 대행(Acting Boss)의 아들이다.[5] 맨쿠소는 13년을 복역하고 2019년에 출소했다. 그는 수감 중에 보난노 패밀리의 두목(Boss)으로 추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