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러시아의 시인이자 소설가인 알렉산드르 푸시킨의 1836년작 소설. 1773년에 일어난 예멜리얀 푸가초프의 반란 사건을 다룬 역사 소설이다.이 당시 이 사건에 관심을 가진 푸쉬킨은 반란을 진압했던 수마로코프의 전기를 쓰고 싶다는 거짓말을 해 국가 기밀 문서를 볼 수 있었고 『푸가초프 반란사』를 펴냈으며 이후에도 현지 답사와 고증을 거쳐 소설로 나온 것이 이 책이다.
이 작품은 주인공 표트르 안드레예비치 그리뇨프와 미로뇨프 대위의 딸 마리아의 사랑을 푸가초프의 반란이라는 사건과 융합시켜 역사성, 사상성, 문학성을 동시에 성취함으로써 19세기 러시아의 리얼리즘 문학에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고 평가를 받는다. 푸시킨은 이 작품을 통해서 역사의 질곡을 넘어서려는 민중의 힘과 전제주의 비판, 그리고 순수한 인간성에 대한 옹호를 잘 나타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2. 줄거리
예카테리나 2세 치하의 러시아 제국에서 지방 귀족의 아들로 태어난 그리뇨프는 사베리치라는 충복과 프랑스에서 온 가정교사[1]로부터 여러 가지 교육을 받았고, 열일곱 살이 되어 변방의 요새 벨로고르스크에 육군 보병 소위보[2] 계급을 달고 장교로 부임한다.임지로 가는 길에 눈보라 때문에 길을 잃고 방황하던 그는 우연하게도 건장한 농부를 만나 그의 안내로 길을 찾게 되었다. 그리뇨프는 고마움 때문에 그에게 술을 대접하고 자신의 토끼가죽 코트를 줬다.
요새에 도착한 그는 그곳의 사령관인 이반 미로노프 대위의 가족과 친해졌고 대위의 딸인 마리아 이바노브냐와 사랑에 빠진다. 그런데 앞서 그녀에게 구애했다 거절당한 선임 장교 쉬바브린 중위는 둘의 관계를 질투하여 온갖 방해를 한다. 마침내 그리뇨프가 쓴 시를 쉬바브린이 보고 중요 시어가 마리아를 연상시킨다고 몰아대자 참다 못해 결투를 신청하는 걸로 폭발한다. 처음에는 그리뇨프가 우세했으나 그의 늙은 하인이 도중에 그를 불러 그리뇨프의 시선이 하인으로 쏠린 틈을 타 쉬바브린이 그에게 부상을 입힌다. 이로 인해 요새는 발칵 뒤집어지나 다행히도 두 사람이 어찌어찌 화해하여 큰일 없이 잘 넘어 갔다.
그러던 어느날 푸가초프의 반란이 일어나고 반란군에게 요새가 함락되어 미로노프 대위와 그의 아내와 장교들은 모두 사형에 처해진다. 그런데 반란군의 지도자인 푸가초프는 다름 아닌 일전에 그리뇨프에게 길을 가르쳐 주고 토끼가죽 옷을 받았던 그 농부였고, 그때의 일을 기억한 푸가초프는 그리뇨프의 목숨을 살려주고 떠나보낸다.[3] 목사의 집으로 피신했던 마리아는 누구냐고 묻는 푸가초프에게 목사 부인이 자기 조카라고 둘러대서 다행히 위기를 넘기고, 내통자 쉬바브린은 벨로고르스크 요새의 새 지휘관이 된다.
오렌부르크로 피신해 있던 그리뇨프는 마샤로부터 쉬바브린이 결혼을 강요한다는 밀서를 받고 단신으로 그녀를 구출하러 가다가 푸가초프의 부하들에게 잡혀 푸가초프에게 끌려가게 된다. 여기서 그리뇨프는 푸가초프에게 그간의 사정을 말하고 마리아 이바노브냐를 풀어달라고 하고 그를 인간적으로 좋아했던 푸가초프는[4] 쉬바브린에게서 그녀를 풀어내 보내준다.
그 후 그리뇨프는 반란 진압군이 되어 수많은 전투를 치렀고 반란은 진압되었지만 요새 함락 사건 때 왜 혼자만 푸가초프의 사면을 받았냐는 의혹으로 조사를 받게 되었는데, 부역한 죄로 투옥되어 있던 죄수 쉬바브린은 그리뇨프에 대한 증오 때문에 그가 푸가초프의 간첩이었다고 거짓 증언을 했다. 그리뇨프는 고관인 아버지의 신분이 참작되어 사형은 면하고 대신 시베리아 종신 유배에 처해지게 되지만[5] 마리아 이바노브냐가 예카테리나 여제에게 직접 상소하여 진실을 밝힘으로 풀려난다.[6]
훗날 푸가초프는 처형장의 군중 속에서 그리뇨프를 찾아내 그에게 머리를 끄덕여 보이며 마지막 인사를 하고 그리뇨프는 마리아 이바노브냐와 결혼해 행복한 가정을 꾸렸으며 그 자손들이 러시아 심비르스크에 대대로 살고 있다고 언급하며 막을 내린다.
[1] 다만 작품 속에서 매일 술만 찾는 무능한 주정뱅이로 묘사되어 있다. 그래서 사베리치는 그를 가리켜 "그 망할 무슈, 저주받은 이교도 놈"이라며 미워한다(...) 무슈는 프랑스 남자를 가리키는 멸칭이고, 이교도는 프랑스인이 가톨릭을 믿었기에 러시아 정교도인 사베리치가 그를 이교도라고 불렀던 것이다.[2] 제정 러시아 때만 존재한 지금의 준위급 계급으로 이 계급을 받은 일부 군인들은 시작을 소위로 진급하여 임관하기도 했다. 현재는 아르헨티나군이 장교가 준위로 임관하여 이와 비슷하게 임관한다.[3] 좀 더 자세히 설명하면, 푸가초프는 자신이 차르, 즉 러시아 황제라고 말하면서 절을 하고 손에 키스를 하라고 그리뇨프한테 강요했는데, 엄연히 진짜 황제인 예카테리나 여제한테만 충성을 맹세한 그리뇨프가 차마 그렇게 할 수가 없어서 머뭇거리자 사베리치는 목숨을 건지려면 어서 푸가초프한테 절을 하고 키스하라며 재촉했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푸가초프는 "살아난 게 너무 기뻐서 정신이 나갔나 보군. 그냥 놔둬."라고 지지자들 앞에서 시치미를 떼면서 그리뇨프를 사면해 준다.[4] 푸가초프의 부하들은 그리뇨프가 정부군의 첩자이며 염탐을 하러 왔으니, 쉬바브린과 같이 교수대에 목을 매달아버리라며 재촉했으나 푸가초프가 그들의 제안을 모두 무시하고 그리뇨프를 살려준다.[5] 이반 대위의 딸인 마리아를 구하기 위해서였다고 말하면 쉽게 혐의를 벗을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그녀를 불러다 온갖 불편한 질문을 할 것 같아 결국 입을 다물어 버렸다.[6] 마리아는 자신에게 소환장이 오지 않은 것에 그리뇨프가 끝내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아서라고 판단하고 전전긍긍하다 공원에서 산책하는 귀부인을 발견하고 그녀가 황실과 가까운 사람이기를 바라면서 사연을 털어놓았는데, 그리뇨프라는 이름이 나오자 불쾌한 기색부터 보이던 귀부인은 이반 대위라는 이름과 그의 딸이라는 마리아의 신분을 듣고 얼굴과 목소리가 갑자기 변한다. 그리고 여제에게 당신을 꼭 만나보라고 청하겠다면서 돌아갔는데, 바로 그날 오후 궁전에서 보내온 마차를 타고 가서 여제를 알현할 수 있었다. 고개를 들라는 말에 마리아는 여제의 얼굴을 보는데,공원에서 만났던 귀부인이 바로 여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