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14 02:21:36

녹색평론

1. 개요2. 관심사3. 비판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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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철을 발행인 및 편집인으로 하여 생태주의자들이 발간하는 격월간시사지. 국내외 생태주의자들의 기고를 모으는 형태이며 창간부터 지금까지 항상 하얀색 종이 표지를 일관되게 유지해 왔다. 좌우노선을 막론하고 가장 급진주의적이고 전위적 그룹. 이들은 문명자체를 넘는 사고를 하고있으니까. 종말론적 주장이기도 하지만 피할 수 없다.

2012년 11월의 127호까지, 생태주의자들의 전폭적인 지지, 구독, 후원을 바탕으로 꾸준히 발행되고 있다. 녹색당이 처음 생길 때에 발행인 김종철이 주도적 역할을 한 것은 물론이요, 많은 독자들이 자발적으로 가입하였다.

2. 관심사

"격월간 녹색평론은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 사이의 분열을 치유하고, 공생적 문화가 유지될 수 있는 사회의 재건에 이바지하려는 의도로 발간되는 집지입니다. 우리는 모든 생명체들과 이 지구를 공유하고 있는 형제자매들입니다. 이러한 진리를 받아들이고, 그에 부합하는 비폭력적 삶의 방식을 모색하는 일은 사회적 분열과 생태계의 파손이 극에 달한 오늘날 무엇보다 절박한 과제가 되었습니다."

주된 내용은 석유로 지탱되는 물질문명의 종말 후 찾아올 "소농사회", 즉 근대화 이전 전원일기에 나오는 것 같은 고만고만한 농부들이 모여 부족하지만 서로 정을 나누고 살았다는(?!!) 시대에 대응하고자 하는 것이다. 석유는 수량이 제한된 자원이기 때문에 21세기 문명국가가 누리는 그 문명이라는 것의 폭망은 그 시기가 언제 도래하건 언젠가 반드시 올 것으로 본다. 포스트 석유시대의 모델은 극단적 독재국가(북한), 대외침략적 제국주의(일본제국주의), 무정부 상태, 소농사회(쿠바). 요렇게 4가지 외에 있을 수 없다. 석유없는 시대의 토대위에 민주주의적 가치를 실천 한다면 그것은 다같이 가난한 삶을 영위하는 것외에 다른 대안은 없다.

2013년 즈음부터 기본소득제를 적극 옹호하면서 기본소득제야말로 인민들을 필요소득보다 더 적은 임금을 주면서 착취하는 자본주의 체제를 전복시킬 수 있는 기적의 제도라고 주장하고 있다. 기본소득제 자체야 알파고를 통해서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된 인공지능의 발달로 수십년 이내에 대부분의 일자리가 소멸될 것이 분명해졌으니 시일이 어찌 되든 도입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이 현실이다.

LETS [1]을 좋아한다. 전세계적 거래가 안 되므로 지역에서 벌어들인 자산을 지역 내에서 쓰니 지역 경제에 좋고, 금융소득을 벌어들이지 못하니 빈부격차를 해소할 수 있다고 본다.

3. 비판

1. 녹색평론에서 좋아하는 "소농사회"는 유토피아이지 현실에는 없었다. 국가의 착취를 제쳐두더라도 농촌사회가 드라마에서 보는 것 같이 정다운 사회가 절대 아니다! 귀농, 닫힌 사회 문서를 참조바람. 수십명의 사람들이 폐쇄적인 환경에서 살기 때문에 장애인 같은 약자들은 평생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무시당하면서 살 확률이 매우 높다. 섬노예같은 인간으로서의 자격을 상실한 범죄가 계속 같은 지역에서 발생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2. 산업 및 기술이 극도로 고도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들이 원하는 대로 예전의 농업사회로 돌아가게 된다면 생산력 부족 및 이로 인한 기술력 퇴화로 인하여 기본소득 자체는 물론이고 인류문명이 지금까지 이룩한 성과가 무너져 버린다는 중대한 모순이 생긴다. 이렇게 되면 자신들이 그렇게 소중하게 생각하는 환경 역시 파괴될 것이다. 현대문명이 환경을 많이 훼손시킨 건 맞지만 70억이라는 인구를 부양하는 것을 감안하여 계산하면 오히려 전근대보다 환경을 덜 파괴시키면서 극단적인 빈곤을 벗어나게 했다는 성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다시 전근대로 돌아가게 된다면 사람들이 어떻게든 살려고 그나마 남은 산림을 파괴할 것이 자명한데 이렇게 되면 살아남은 대파괴 시대 이후의 후손들은 희망이 없게 된다.

산업 및 기술이 극도로 고도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들이 원하는 대로 예전의 농업사회로 돌아가게 된다면 생산력 부족으로 인하여 70억 인류 인구를 도저히 유지할 수 없다. 결국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전 인구수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데 그러면 현존 인구의 90% 가량이 굶주림, 식인, 약탈로 인해 사망할 것이다. 환경을 소중히 생각한다면서 수십억명의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건 외면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지 의문.

3. 식인과 약탈을 막고 평화롭고 아늑한 전원생활을 즐길 수 있으려면 경찰이 총 들고 치안을 유지하면서 생태주의자들의 안전한 삶을 위협하는 사람들을 체포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살아남은 사람들이 이룩하게 될 사회는 생태주의보다는 생존주의/치안 부재에 가까운 삶의 형태를 띄게 될 가능성이 높다. 열심히 농사지으려 시도하는 사람이 있으면 총 든 약탈자가 농부를 죽이고 식량을 빼앗고, 농부들은 이 때문에 잠도 자지 못하고 불침번 세워가며 경비를 하고, 뭐 그런 사회. 초기 농경사회가 바로 이런 모습이었는데, 폭력을 강제적으로 중재할 권력 및 무력을 갖춘 국가가 없었던 관계로 이 시기 농경사회는 앞의 석기 시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석기시대 역시 평화로운 시대였다는 일반적인 이미지와는 정반대로 환경 및 장소에 따라 달라지긴 하지만 성인남성 1/4이 분쟁에 휘말려 죽었던 살벌한 시대였다.) 부족 간 다툼이 극심하여 인류역사상 사망률이 가장 높았던 시기이기도 하다.

4. 사람이 굶주려서 죽어가지 않을 정도의 생산력을 유지하려면 개량된 종자, 화학 비료, 관개 시설, 살충제, 가축용 항생제가 필요할 것인데, 이런 것들을 모두 누리면서 동시에 생태주의를 누리는 것은 가능할 것은 불가능하다.

5. LETS 체계는 현재는 어디까지나 화폐경제를 보완하는 의미에서 지역 사회의 사람들과 유대감을 늘리기 위한 즐거움의 수단 정도로 쓰이고 있다. 그렇다 보니 LETS에 참여하는 사람들 역시 대체로 선한 마음을 가지고 참가하고 있다. 이 수준을 넘어서 대부분의 상거래를 대안화폐로 하게 될 경우 문제가 발생한다.

공동체 내에서 '극도로 이기주의적이고 착취적인 사람이 나타난다면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의 문제가 뒤따른다. 왕따를 시켜서 거래를 못 하게 만들 것인가? 현대처럼 취미 정도라면 단체에서 탈퇴하는 걸로 적당히 끝날 일이지만, 생계가 좌우된다면 반발은 그 정도로 끝나지 않는다.

반대로, 현재처럼 주된 상거래는 화폐에 넘기고 대안화폐를 이용한 경제활동은 영원히 취미로 남긴다는 선택지가 있지만, 그걸 바라지 않고 점차 화폐를 대체해나가길 원하는 사람들이 있으므로 두 분파 사이에서 갈등이 일어날 수 있다.

6. 결국 위와 같은 수많은 폐해를 억누르고 이들이 원하는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들의 평화로운 상상과는 달리 북한을 능가하는 철저한 독재체제, 통제경제로 흑화하든지, 아니면 혼돈의 무정부상태로 떨어지는 수밖에는 없을 것이다. 공산국가들이 하나 같이 살벌한 일당독재체제를 유지했던 것도, 되지도 않을 불가능한 이상을 억지로 현실화시키려니 곳곳에서 모순과 파열음이 불거져 나와서 결국 하나하나 일일이 통제하고 자신들의 이상에 맞지 않는 사회구성원들은 숙청, 격리시키는 방법 외에는 체제를 유지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들이 주장하는대로 근대화 이전 소농사회로 돌아가려고 했던 실험이 과거에도 있었으니, 캄보디아 독재자 폴 포트가 벌인 킬링필드가 그것이다. 폴 포트가 이끄는 크메르 루주는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 시민들을 시골농촌으로 강제 이주시켰으며, 이들은 집단농장에서 공동으로 일하면서 공동식당에 나와서 식사해야 했다. 캄보디아의 화폐 제도는 폐지되었고 물물교환 경제로 사회를 운영했으며 크메르 루주는 보란듯이 프놈펜 중앙은행을 폭탄으로 폭파시켰다. 이 당시 외국어 구사자, 공무원, 교수, 의사, 약사 등 전문직들과 부유층 등 자본주의, 근대문명적 요소를 가진 이들은 무조건 처형해야 할 대상[2]이었다.


[1] 비화폐적 경제. 단체를 만든 뒤 그 안에서 동조자끼리 노동, 자원 등을 화폐 없이 물물교환하는 제도(약속)[2] 심지어 안경을 썼거나 손에 굳은 살이 없다는 이유만으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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