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나시운(羅時雲) |
본관 | 안정 나씨 |
생몰 | ? ~ 1896년 2월 29일 |
출생지 | 강원도 평창군 |
사망지 | 경상북도 영천군 가흥면 |
추서 | 건국훈장 독립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나시운은 강원도 평창군 출신으로 알려졌지만 출생년도는 알 수 없다. 그는 1896년 안승우 의병장의 부대에 가담하여 도영장(都領將)을 맡았다. 이후 충주에서 의병 활동을 하다 병이 나서 잠시 고향에서 치료를 받았다. 이후 병에서 회복된 뒤 의병에 가담하려 했는데, 집안 사람들과 친지들이 모두 말렸다. 그러자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이미 죽기로 다른 사람과 약속하였는데, 병을 빙자하고 집에 있으면 어찌 의리라 하겠는가."
그는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의병대에 가담한 뒤 활동을 전개했다. 이후 가흥 전투에서 일본군 2명을 전사시켰지만 적탄이 어깨를 관통하는 부상을 당한 후 체포되었다. 이후 그는 칼로 살을 저미는 등 가혹한 고문을 당했지만 조금도 굴하지 않고 일본인 형사를 꾸짖었다.
“너는 일본사람이니, 우리가 건너가서 너를 해칠 까닭이 없는데, 어찌하여 화친한다는 명목을 빙자하고 저들 적신을 유인하여 음험하고 교활한 흉계를 꾸며 국모를 시해하고 임금을 겁박하여 우리나라를 오랑캐로 만들려 하느냐. 이러고도 벌을 받지 않으면 하늘의 이치가 없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싸움에 패하여 죽는 마당에 무슨 말을 하겠느냐.”
1896년 2월 29일, 나시운은 가흥에서 처형되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일본군은 다른 의병들의 시체는 묻었지만 그의 시체만은 불태웠다고 한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나시운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