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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사키 료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Narasaki_Ryo.jpg

楢崎龍
(1841 ~ 1906)

1. 개요

에도 시대, 메이지 시대의 인물.

일본 근대 역사의 핵심 사건인 대정봉환을 이끌어낸 사카모토 료마의 부인으로 일본에서 최초로 신혼여행을 간 사람이다.[1] 나라사키 쇼사쿠의 딸. 통칭 오료(お龍)로 불린다.

2. 행적

교토 출생으로 증조부는 조슈번사로 어떤 잘못을 저질러 교토로 오게 되었다고 하며, 아버지가 1858년에 안세이 대옥으로 체포되었다가 풀려났지만 1862년에 죽자 나라사키 가문은 곤궁하게 되어 여동생이 오사카의 유곽에 팔아넘겨졌다.

오료는 유곽으로 가서 남자를 후려치고 화로를 집어던지면서 여동생을 되찾아 교토까지 돌아왔다고 하며, 1864년 8월에 료마와 결혼했다. 테라다야에서 여관 주인 오토세 밑에서 오하루라는 별명으로 일했다.

나카무라 한지로가 난동을 부려 심부름을 하는 사람들이 싫어하자 오료는 한지로 앞에서 눈 앞에서 술을 여러 잔 마시면서 한지로를 두려워하지 않고 대하고 오히려 한지로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1866년에 테라다야에 머물던 료마가 습격당하는 테라다야 사건이 일어난다. 오료는 이때 목욕을 하던 중이었는데 사태가 심각함을 눈치채고 나체로 욕탕 바깥으로 뛰쳐나와서 료마에게 위급함을 알렸다고 한다. 이후 사츠마 번으로 도망쳐 신혼여행을 했으며, 1867년 11월에 오미야 사건으로 료마가 죽자 토사의 사카모토 가문에 의탁했다가 교토를 거쳐 에도로 가서 료마의 조카인 사카모토 나오에게 갔다가 이제 사카모토 가문과 상관없다면서 차갑게 내치자 사이고 타카모리에게 갔다.

타카모리가 잘 대해줬지만 타카모리는 서남전쟁으로 전사했으며, 니시무라 마쓰베에(西村松兵衛)와 재혼했고 가난하게 살다가 사망한다.

대중매체에서 표현된 오료는 대개 사카모토 료마에게 강한 모습을 보이는데 이는 데라다야 사건과 료마가 오료에게 남긴 편지[2]에서 가져온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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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츠마 번(현 가고시마)의 키리시마 산 온천에 갔다.[2] 현재는 단 한 편만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