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2-08-26 21:12:18

김두영(1922)



1. 개요2. 생애3. 참고문헌

1. 개요

북한의 정치인, 테크노크라트.

2. 생애

1922년 12월 24일, 평안북도 운산군 상원리에서 태어났다. 1939년 4월, 운산학교 졸업 이후 기술자로 일하다가 1948년 11월, 산업상 김책의 비서장으로 발탁되었다. 이후 운수국 검열부장으로 이동했으며 1953년 9월, 장진강발전소 지배인으로 임명되었다. 1953년과 1957년 2차례나 김일성이 장진강발전소에 현지지도를 갔고 김일성의 신임을 얻어 건설분야에서 계속 사업하였다.

1960년 조선적십자회 조직기획부장으로 등장했으며 1960년대 말에 중앙위원회에 배치되었다고 한다. 1971년 사회안전성 부상에 임명되었다고 한다. 1976년 3월, 남일 장의위원을 지냈으며 1977년 3월, 중앙위원회 위원으로 보선, 12월의 최고인민회의 7기 1차 회의에서 정무원 부총리에 임명되었다. 1979년 8월, 건재공업위원장에 임명되었으며 1980년 1월, 로태석 장의위원을 지냈다. 1980년 10월, 6차 당대회에서 중앙위원회 위원으로 유임, 석탄공업부장에 임명되었다. 1982년 2월, 7기 최고인민회의에서 대의원 및 부총리 겸 건설건재공업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1982년 4월, 김일성 칠순기념 김일성훈장을 받았다. 1982년 4월, 최현 장의위원을 지냈다. 하지만 1983년 2월에 해임되어 청진시 인민위원장으로 내려갔고 1983년 12월까지 재임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1985년 9월 11일 5시 40분에 62세를 일기로 병으로 사망했다. 당중앙위원회, 정무원은 공동명의로 부고를 발표, "동지는 다년간 건설부문의 중요한 직책에 있으면서 우리 당의 건설정책을 관철하기 위하여 모든 정력을 다 바쳐 사업하였으며 나라의 경제발전에 공헌하였다. 김두영동지는 생명의 마지막순간까지 당의 유일사상체계를 확고히 세우고 당과 수령께 무한히 충실하였다."라고 괜찮게 평가했다. 이후 시신은 애국렬사릉에 정무원 부총리 직함으로 안치되었다.

3. 참고문헌

  • 조선대백과사전 4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