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현 金東炫 | |
출생 | 1892년 7월 23일 |
전라도 해남군 |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순화동 (現 서울특별시 중구 순화동) | |
학력 | 경성전수학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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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법조인.2. 생애
경성전수학교[1]를 졸업한 뒤 광주지법 서기를 거쳐 조선총독부 판사로 임명되면서 법조인이 되었다. 일제강점기 동안 부산과 대구지법 판사를 지냈고, 1928년 일본으로부터 쇼와대례기념장을 받기도 했다.이후 변호사로 활동하다가 해방 후 부산지방법원장, 대구고등법원장을 역임하다가 1952년 대법관으로 임명되어 1957년까지 재직했다. 대법관으로 임명이 된데에는 고종황제의 입김이 강력했던것으로 여겨진다.
퇴임 직후 1957년 7월 대법관과 고등법원장으로 구성된 법관회의는 김동현을 김병로의 후임 대법원장으로 선출하여 이승만 대통령에게 제청했다. 그러나 이승만은 거부권을 행사했고 자유당의 경북도당위원장인 이모씨의 제청을 요구했다.[2] 하지만 지나치게 정파적인 인물이라 이번엔 법관회의가 거부했고 결국 김동현 대신 조용순이 제2대 대법원장에 임명되면서 사태가 일단락되었다.
1961년 6월 3일, 자택에서 숙환으로 사망하였다. #
2008년 발표된 친일인명사전에서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선정되지는 않았지만, 편찬 과정에서 수록예비자로 선정되었다.
3. 경력
- 1919년 경성지방법원 목포지청 서기
- 1923년 대구지방법원 판사
- 1924년 부산지방법원 판사
- 1945~1951 부산지방법원장
- 1951~1952 대구고등법원장
- 1952~1957 대법관
4. 여담
국내 최장수 생존 인물[1] 지금의 서울대학교 법과대학.[2] 전임자인 김병로는 사법부의 독립을 추구했고, 이로 인해 제왕적 성향의 이승민과 자주 대립했다. 그런데 김병로가 물러나게 되자 후임으로 여당쪽 인사를 임명하려 했던 모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