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2-10-05 23:01:52

길덕동

<colcolor=#fff><colbgcolor=#0047a0> 본관 해평 길씨[1]
출생 1914년 11월 25일[2]
전라남도 장흥군 장평면 양촌리 312-3번지[3]
사망 1948년 3월 7일[4]
전라남도 장흥군
묘소 전라남도 장흥군 부산면 유량리 양촌마을
상훈 대통령표창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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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독립유공자. 202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

독립유공자 길양수는 그의 4촌 형이고[5], 독립유공자 길인주는 그의 6촌 재종형(再從兄), 5선 국회의원을 지낸 길전식은 6촌 재종제(再從弟)이다.[6]

2. 생애

1914년 11월 25일 전라남도 장흥군 장평면 양촌리 312-3번지에서 아버지 길영순(吉永淳, 1881. 9. 27 ~ 1949. 9. 11)과 어머니 광산 김씨(1879. 6. 21 ~ 1928. 12. 1)[7] 사이의 6남 6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1932년 7월 장흥군 장평면에서 비밀결사 장평농민조합 조직에 참여하여 교육부장으로 활동하다가 1934년 체포되었으며, 같은 해 9월 기소유예 처분을 받고 출옥하였다.

그 뒤 1936년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재차 체포되어 그해 12월 28일 위 혐의에 대해 징역 1년 6개월형(미결 구류일수 통산 545일)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에는 조용히 지내다가 1948년 3월 7일 전라남도 장흥군에서 별세하였다. 사후 유해는 장흥군 부산면 유량리 양촌마을에 안장되었다.

2020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독립운동 공적을 인정받아 대통령표창에 추서되었다.

[1] 영암·장흥파 22세 근(根) 항렬. 족보명은 길용근(吉鎔根).[2] 음력 10월 8일.[3] 양촌리 312번지는 1915년 작성된 지적원도에 따르면 1915년 당시 길두전(吉斗銓)의 소유였다. 길두전이 누군지는 확인되지 않으나 다만 길덕동의 둘째 작은아버지 길영구(吉永九)의 초명이 길두현(吉斗鉉)인 것으로 보아 길덕동의 아버지 길영순(吉永淳, 1881. 9. 27 ~ 1949. 9. 11) 또는 다른 가까운 아버지 항렬인 사람의 초명으로 보인다.[4] 음력 1월 27일.[5] 길양수의 아버지 길영전(吉永銓, 1879. 5. 23 ~ 1949. 4. 21)은 길덕동의 아버지 길영순(吉永淳, 1881. 9. 27 ~ 1949. 9. 11)의 맏형이다.[6] 길덕동과 길양수의 조부 길성진(吉聖鎭, 초명 길성돈吉聖敦, 1857. 10. 30 ~ 1916. 9. 22)은 길인주길전식의 조부 길봉진(吉琫鎭, 초명 길봉택吉琫宅, 1865. 7. 8 ~ 1923. 4. 26)의 셋째 형이다.[7] 김태섭(金兌燮)의 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