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06 23:57:50

기갑교도사단

기갑교도사단
Panzer-Lehr-Division
파일:기갑교도사단 엠블럼.svg
<colbgcolor=#000> 창설일 1943년 12월
해체일 1945년 4월 15일
소속 독일 육군
병과 기갑
규모 사단급
14,699명(1944년 6월 기준)
참전 제2차 세계 대전

1. 개요2. 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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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기갑교도사단(機甲敎徒師團, Panzer-Lehr-Division, 판처레허디비지온)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 육군의 기갑사단이다.

전선이 밀리고 인적 자원의 감소로 인한 어려운 상황 속에서, 1943년에 독일 각지의 기갑학교에서 자원을 모아 편성한 교도사단이다.[1][2]

240여대 가량의 전차 및 돌격포, 사단 예하 보병연대 4개 장갑척탄병 대대가 전원 기계화로 완편된, 독일 국방군 전체를 통틀어 보기 드문 정예 전력으로, 당시 독일의 상황으로 볼 때 육군 최강의 전투력으로 평가되었다. 당시 독일군의 정예부대는 대부분 무장친위대 부대들이었고, 육군의 정예부대라곤 그로스 도이칠란트 사단 외엔 거의 없었기 때문. 하지만 이 부대의 역사를 보면 제공권을 상실한 상황 하에서 연합군의 공중 폭격으로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하고 막대한 손실을 입어 패주하는 것으로 점철되어 있다.

강력한 전력인 것은 맞으나, 기갑교도사단의 출현 자체가 독일의 패망의 전조이기도 했다. 기갑교도사단의 전투병들은 대부분이 유럽과 북아프리카에서 실전을 거치고 훈장까지 받은 역전의 용사들이었고, 새로이 편성될 기갑부대의 교육을 위해 본토에 남아있던 이들이었다. 그런 이들로 전투사단을 꾸렸으니 전투력이야 뛰어나겠지만 새로운 기갑부대를 훈련시킬 고급 교관급 인적 자원들이 다수 사라져 버렸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다른 국가에선 이렇게 훈련 임무를 맡을 위치와 능력을 가진 교관, 조교들을 전투부대로 편성하지 않는 것이다.

더군다나 1943년에서 1944년이면 히틀러 본인이 전군의 지휘권을 쥐고 있었고, 기갑교도사단은 전략예비대로 히틀러가 직접 명령을 내리지 않으면 투입이 안되는 탓에, 정작 노르망디에 연합군이 상륙한 첫날에는 전투에 참가하지 못하는 등의 실책도 많았다.

아르덴 대공세 이후, 기갑교도사단은 독일 루르에서 미군과 영국군에게 포위 당한 후, 1945년 4월 15일 기갑교도사단장이 미군에 항복하여 기갑교도사단은 해체되었다. 기갑교도사단의 항복으로, 기갑교도사단 소속 제654중구축전차대대도 항복한다. 이 구축전차대대는 야크트판터로 최초로 무장한 대대로 많은 전공을 쌓은 부대이다. 여담으로 티거2가 주력인 제9기갑사단소속 제506중전차대대도 루르포캣에서 항복하였고, 제9기갑사단, 제116기갑사단 등, 인지도가 높은 사단들도 루르 포위전에서 항복하였다.

이처럼 루르 포위전은, 프랑스에서 벌어진 팔레즈 포위전의 뒤를 이어서 독일 기갑사단에 대한 마지막 사형선고라 볼 수 있다.

2. 미디어



[1] 학교에서 자원을 모았다는 말이 교육을 받는 후보생이나 교육생들을 모았다는 말이 아니다. 사관생도, 학도병과 같이 이름에 (무리 도)자가 들어가 있어 학생들을 모아 만든 사단이라는 뜻으로 오해하기 쉽지만, 기갑교도사단은 반대로 조교교관들을 모아 만든 부대에 가까웠다.[2] 독일어를 알면 더 이해하기 쉽다.Lehr는 가르치다라는 뜻의 동사 Lehren의 어간이다.즉 가르치는 사람들이 모였다는 뜻이다. 가르치다의 반대어인 배우다는 Lernen이라고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