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color=#fff><colbgcolor=#0047a0> 자 | 성률(性律) |
본관 | 봉화 금씨[1] |
출생 | 1880년[2] |
경상도 봉화현 임지면 두월리 (현 경상북도 영주시 이산면 두월리) | |
사망 | 미상 |
상훈 | 건국훈장 독립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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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1880년 경상도 봉화현 임지면 두월리(현 경상북도 영주시 이산면 두월리)에서 아버지 금동렬(琴東烈)과 어머니 경주 이씨 이백록(李白祿)의 딸 사이의 5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그는 1907년 의병을 일으킨 뒤 4월 20일 한상렬, 노병원, 김현국(金顯國) 등과 함께 강원도 횡성에 주둔한 일본군 수비대를 공격했다. 이후 1910년 한일병합까지 50여 명의 의병을 거느리고 삼척, 강릉 등지에서 일본군에 맞서싸웠다. 이후 1912년 김상수(金相守)와 함께 군자금을 모집하다가 체포되었다.
1912년 6월 15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이에 불복하여 상고하였다. 그러나 같은 해 7월 15일 고등법원에서 상고가 기각됨에 따라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금기철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