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시엘로

3년 전쟁은 그에게 아무것도 남겨주지 않았다. 최전선에서 무모하리만치 앞장서 싸운 그라시엘로였지만, 부도, 명예도, 작위도, 모든 것이 그라시엘로를 비껴갔다. 전쟁이 그에게 준 것은 오직 두 가지. 지워지지 않는 얼굴의 상처와 야수의 본능. 전쟁이 끝난 후, 그라시엘로는 비슷한 처지의 불한당들과 어울려 폭력과 난동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았다. 그러나 아무리 폭력을 휘두르고, 거리에 불을 질러도 가슴 속에는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이 있었다. 3년 전쟁 당시에 느꼈던 오싹한 자극과 스릴을 다시 느끼고 싶다! 얼마 후, 그라나도 에스파다로 떠나는 이민선 중 한 척에 불타는 듯한 머리를 가진 한 명의 남자가 올라탔다. 욱하는 성격으로 매우 다혈질이다. 뭔가 말로 해결하기 보다는 힘으로 해결하려고 드는 경향이 있으며, 그런 자신이 틀렸다고 생각해 본 적은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다. 강하면 모든 것이 자연히 따라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대로 행동하지만 딱히 천성이 악한 것은 아니다.